▲한국대학생진보연합 학생들의 트럼프 반대 시위 지난달 11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압박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에 나선 대진연 학생들. 황선 씨의 연년생 두 딸은 대진연 활동으로 여러 차례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황선
용산경찰서, 남대문경찰서, 성북경찰서, 서초경찰서, 양천경찰서. 최근 몇 해 사이에 연년생 딸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이라는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연행된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내가 쫓아다닌 경찰서다. 그야말로 사방팔방이다.
올해만 해도, 다양한 수작으로 윤석열의 내란을 비호하는 미국에 항의하다 미 대사관 앞에서, 유력 대선주자에게 유죄 취지 파기 환송을 내리며 대선에 개입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은 조희대에게 항의하다 대법원 현관에서 체포 연행됐다.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난 뛰어다녀야 했다.
연년생 두 딸의 체포 연행 소식
체포, 구금, 영장실질심사. 이런 일들이 나의 일이 아니라 자식의 일이 되니, 훨씬 마음이 복잡했다. 한편으로는 대견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안하고 근심스러웠다. 어머니, 아버지의 삶과 인생관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이어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인정과 존중이라 정말 고마웠지만, 동시에 미안한 마음도 컸다.
그 미안함은 '우리의 투쟁이 부족해서 이렇게 험한 일을 당하게 한다'라는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하필 '윤석열'이라는, 이 시대 가장 저질스러운 정치검사 부부에게 정권을 내준 아둔한 세대의 죄책감도 아니었다. 애초에 수배자와 결혼하고, 수배와 감옥살이를 끝낸 남편이 집에 돌아온 것은 아이들이 10살 남짓 되었을 때였다. 사춘기 초입에는 집 앞까지 기자들이 진을 치고 종북몰이를 해대더니 엄마가 구속되는 일을 당하기도 한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 피해의식에 지배 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만도 내겐 제법 큰 기도였다.
'너희에겐 투쟁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좋은 세상을 물려줄게'라는 허튼 소망, 자만심 가득한 소망은 없었다. 제 시대에 필요한, 제 몫의 투쟁을 하는 것이 역사적 개인의 사명이다. 이 책임감을 알아 억울함 없이 투쟁하며 보람있게 살기를 바랐다. 그랬으니 유치장에 갇힌 아이들을 보며 든 미안함은 투쟁하게 해서 미안한 마음이 아니라, 그 투쟁을 안아주고 보듬어 줄 여력이 없는 우리 세대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국가보안법폐지 지난 2008년 2월 28일 황선씨가 어린 두 딸과 함께 국가보안법 폐지 시위에 참석해 남편(윤기진)의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20년이 흘러 두 딸은 부모의 뒤를 이어 학생운동에 적극 참여해 여러 차례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황선
남편의 세 차례 구속, 나의 세 차례 구속을 견뎌낸 힘
1970년대에 태어난 여성으로 수배와 감옥생활을 반복하면서도 생활의 행복과 활동의 가치를 하나도 유실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내 삶의 안팎에 '어머니'들이 계셨기 때문이었다. 안으로는 우리 부부의 삶을 이해하고 어떻게든 도와주시려는 양가의 어머니가 계셨고, 밖으로는 진보단체의 원로 선생님들, 특히나 민가협 어르신들이 계셨다. 집 밖의 어머니셨다.
남편의 세 차례 구속도, 나의 세 차례 구속도, 별일 아닌 듯 부딪히고, 견디고, 마침내 무탈하게 지나쳐 온 것은, 유치장-구치소-교도소로 인간 세상 막장이라면 막장일 곳으로 옮겨 앉는 내내 따라다니며, 죄수복을 입은 내게는 응원과 지지를 보내고, 제복을 입고 법복을 입은 저들에게 호령하고 혼쭐을 내던 카랑카랑한 어머니들이 계셨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더 춥고 옹색한 독방에 내던져졌을 때, 아닌 척해도 내심 떨리고 주눅 들어 하던 나에게 접견실에 찾아오신 민가협 어머니들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무 죄 없다. 장하다. 네 뒤에는 우리가 있고, 민족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
이렇게 단단히 일러주신 덕에 나는 마음이 느긋해지고 배포가 생겼다. 그런 특혜 속에 자란 우리와 달리, 우리 자녀 세대에는 학생운동도 드물고, 원로도 드물다. 그 옛날 어둑한 접견실에서 큰 소리로 힘과 용기를 주시던 어머니들은 이미 돌아가셨거나 여든 줄, 아흔 줄의 연세로 거동이 어려우시다.

▲국가보안법철폐 지난 2008년 2월 28일 황선씨의 남편인 윤기진씨(범청학련 남측본부 의장)의 석방을 요구하는 기자회견. 재야단체의 원로들과 민가협 어머니들이 함께 했다.
황선
국가보안법의 피해자, 민가협의 수혜자
2030의 자녀를 둔 우리 세대가 그때 그분들처럼 밀어주고 내세워주고 아낌없이 보듬어줘야 하는데, 우리는 아직도 마냥 '어머니'가 그립다. 아직도 나름의 짱돌과 꽃병을 들고 거리를 헤매고 있다. 누군가의 뒷배가 되고 누군가를 아늑하게 하는 품이 되기에는 여력이 없다.
그래서 미안하다. 어머니들을 고생시킨 세대, 어머니를 여의고, 아직 어머니 노릇을 할 처지는 못 되는데, 아직도 국가보안법도 집시법도 족쇄인 시대. 어미를 보고 배운 후대들은 겁 없이 '투쟁의 한 길로' 내달린다. 유혹이 더 많고 각박한 시절이라 어쩌면 더 외로울 오늘의 젊은이들이, 큰 박수를 받았던 선배 세대보다 더 뜨겁게 민중을 믿고 사랑하는 것을 보면 미안하다.
좀처럼 열리지 않는 경찰서 유치장 담벼락을 향해 아이들의 석방을 호소할 때마다, 한 어머니일 뿐인 나는 '민가협'을 생각한다. 그때, 우리에게는 민가협이 있어서 얼마나 좋았던가! 그때, 우리 가족들도 민가협이 얼마나 힘이 되었던가! 국가보안법 피해자였지만, 민가협의 수혜자였던 나와 우리 가족이었다.
지금도 나와 딸들이 촛불 현장과 미대사관 앞 농성장을 늘 서성이는 것은 그 옛날 받았던 응원 덕분이기도 하다. 그런 어머니들을 제대로 모시지 못하는 자식들이자, 자녀에게는 우리가 받은 따뜻한 사랑을 채 전하지 못하는 중간세대로서 늘 내적 갈등이 상당하다.

▲불안한 외출 부부가 각각 세 차례나 구속된 황선, 윤기진 부부의 사연을 다룬 다큐멘터리 <불안한 외출> 포스터.
다큐창작소
민가협을 대신해 경찰서 앞을 지켜준 촛불 시민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런 민망함과 부끄러움을 도닥여주고 빈자리를 채워주는 분들이 나타났다. 부랴부랴 아이들 옷가지를 싸 들고 유치장으로 면회를 가면, 그 앞에 이름도 모르는 촛불 시민들이 나보다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학생들을 석방하라고 외치는 것도, 아이들이 나올 때까지 카메라를 켜고 밤을 지새우며 기다리는 것도, 꽃을 사 들고 달려오는 것도, 농성장에 밥을 해 나르는 것도, 혈육이 아니라 촛불과 응원봉으로 하나 된 촛불 시민들이었다.
그렇게 민가협의 정신은 새로운 촛불에까지 깊고 넓게 뿌리 내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민가협 정신이란 홍익인간, 상부상조, 측은지심, 가장 아름답고도 당연한 인지상정의 총합이 아닌가. 여전히 '우리는 언제 민가협 어머니가 되어 우리 후대들에게 힘이 될까?' 초조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어머니 '민가협'은 어디에나 '맹렬하게!' 뿌리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지막이 외치며 다짐한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투쟁하자.'
[민가협 40주년 기념사업 주요 내용 및 일정]
11월 5일 사진집 <엄마의 보랏빛 꿈> 발간(인터넷서점 판매 중)
11월 13~21일 사진전 '엄마들의 보랏빛 꿈' 서울 인사동 아지트미술관
11월 27일 오후 2시 심포지엄 '민주와 인권을 향한 40년, 어머니의 위대한 여정' 국회의원 회관 8간담회실
12월 13일 오후 4시 특별헌정공연 '어머니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 한양대 올림픽체육관
기념도서 <민가협 40년, 그 보랏빛 여정> 12월 초 발간 예정
미니다큐 '민가협을 기억하다'(총 20편) 민가협 40주년 유튜브 채널 <민가협40년>에 공개
민가협 관련 자료는 온라인기록관 민가협 40년 기록관에서 볼 수 있으며, 민가협 40주년 기념사업 내용은 홈페이지 민가협 40주년 기념사업위원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민가협 40주년 헌정공연 제작 후원 https://www.socialfunch.org/mkh40
문의: 안영민 상임운영위원장(010-8010-7013), 이병인 사무국장(010-3786-3535)

▲민가협 40주년 심포지엄 민가협 40주년 기념 심포지엄이 11월 27일(목)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8간담회실에서 열릴 예정이다.
민가협40주년기념사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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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12월 창립된 민주화실천기족협의회(민가협)의 40주년을 맞아 민가협의 활동과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한 한시적인 조직입니다. 12월 13일 민가협 40주년 특별 헌정 공연 '어머니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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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년생 두 딸의 체포 소식... 경찰서 앞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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