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 들고 싶은 동네' 저자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의사(왼쪽)와 유여원 살림의원 전무이사가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정민
기존의 의원과 다른 길을 가기로 한 살림에는 위기의 순간도 많이 있었다. 두 저자가 대표적으로 꼽은 일화는 HIV 감염인의 임플란트 수술 과정이다. 새로 만들어진 살림치과 직원들이 HIV 감염인이라는 이유에서 임플란트 수술을 꺼린 것이다. 회의와 인권 교육을 수차례 진행하고도 좀처럼 모든 의료진의 마음이 모이지 않자 당장 수술이 어렵다는 사실을 전했다. 이 일로 인해 살림의원은 HIV 감염인 인권단체로부터 항의 서한을 받았다. 두 저자는 이를 "살림 역사상 마음고생 톱 5 안에 들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여성주의 진료를 내 건 의원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 뒤로 살림의원은 감염인 당사자 단체와 직원들, 이사회가 같이 참여하는 회의를 열고, 다같이 HIV 감염인을 진료하는 국립중앙의료원 치과 진료실을 견학하고, 여성주의와 인권 교육을 계속했다. 유 이사는 이 시간을 떠올리며 "멱살을 잡아도 그 멱살 잡은 손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아무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나갔다"고 말했다. 추 원장은 "당장 임플란트 수술에 들어가지 못하는 의료인일지라도 장애인 진료에서는 다른 의원에서 하지 않을 진료를 하고 있었다. 직원들을 믿고 있으니 끝까지 같이 해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살림의원은 그로부터 10개월 뒤 HIV 감염인의 임플란트 수술을 시작해 이어가고 있다.
"노력의 결과 임플란트 수술이 마침내 이뤄졌다. (...) 그 뒤로 살림에서 의견 차이, 지향과 관점의 대립, 이해 관계로 얽힌 갈등이 일어날 때면 우리는 늘 이 사건을 떠올린다. (...)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욕을 먹더라도, 갈등으로 인해 사건,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달라질 것이란 믿음이 있었고 그런 믿음을 지닌 동료가 있었다. 어느 날엔가 우리 조직이 HIV 감염인을 차별 없이 진료할 수 있의라고 믿고 다 함께 노력했다." - <나이 들고 싶은 마을> 204쪽
어쩌다 보니 의사 5명 중에 3명이 한 번에 그만둔 순간도 있었다. 이들은 여기서도 '돌파'를 택했다. 조합원을 상대로 한 경영 회의를 열었다. 유 이사는 "원래 조합원을 위해 경영 교육을 하려고 잡아두었는데, 생각해보니 (이곳의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이상의 당면한 경영 교육이 뭐가 있을까 싶더라. 날 것의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자리를 일부러 만들었다"라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지금은 웃을 수 있지만 당시 상황의 녹록지 않았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날 경영 회의에는 70여 명의 조합원이 참여했다. 때로는 '상황이 이런 줄도 모르고 안식월을 다녀왔느냐'는 날선 말도 오갔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하니 이 또한 살림을 향한 조합원의 관심이었다. 유 이사는 "조합원들도 현재 상황을 말하고 싶었던 거다. 나중에 소감을 들어 보니 이렇게 다 꺼내놓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살림의 자신감이고, 조직 운영이 투명하게 느껴졌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그날 이후 살림은 진료 과목을 다양하게 만들어 여러 의사가 한 명의 환자를 보는 '팀 주치의 제도'를 도입했고, 매년 경영 회의를 열고 있다. 그 덕분일까. 현재 살림에서는 가정의학과, 부인과, 정신건강의학과, 치과, 한의원 치료가 가능하고 총 12명의 의사가 함께 하고 있다.
"뜻 있는 의사는 어디나 있다"
이들은 전공의 집단 사직 등으로 격화된 소위 '의정 갈등'에 대해서도 특유의 시선을 놓지 않았다. 추 원장은 "뜻 있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라며 "전공의 파업 시기에 전국에 있는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 전공의들이 찾아와서 방문 진료를 같이 다니기도 했다. 이 시기에 다른 의료를 경험하고, 주민들과 만나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살림에도 의대 학생들이 실습을 오는데, 주민들이 '좋은 의사가 되어달라'고 응원도 한다. 좋은 의료인이 많이 양성돼야 의료협동조합에서 일할 수 있는 인력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의사가 늘어나야 의료 서비스의 절대량 자체가 늘어난다. 그런데 한국 같은 행위별 수가 체계에서는 의사가 수요를 만들어낸다. 의사 숫자는 늘게 하면서 불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줄여야 한다. 환자에게 어떤 의료 서비스가 필요한지 아닌지를 전문가가 붙어서 의논하고 함께 결정해야 한다. 지금은 의사가 그렇게 시간을 쓸 수 없으니, 새로운 의료 서비스든 치료법이든 의료비가 늘어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추혜인)
유 이사는 "어떤 의사가 늘어나느냐가 (의정 갈등의) 핵심인데, 통합 돌봄의 전문성이 있는 주치의가 많이 늘어났으면 한다"라면서 "의사는 (많은 질병과 다양한 환자를 경험하다 보니) 여러 자원을 연결해 복잡한 문제를 푸는 선수들이다. 돌봄 의료나 지역 자원을 연계해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의 문제를 푸는 의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 복막 투석 경험도 타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 '나이 들고 싶은 동네' 저자 유여원 살림의원 전무이사가 '건강이웃' 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정민
살림의원은 올해부터 '건강이웃'이라는 사업을 새로 시작했다.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는 이들을 둘씩 짝 지어 하루에 두 가구를 방문해 근력 운동과 인지 활동을 위한 프로그램을 함께 하는 것이다.
"건강이웃으로서 어르신 댁에 가서 운동과 인지 활동만 진행하면 되는 줄 알았더니...... 웬걸, 운동을 같이할 어르신을 찾아오란다! 아니, 이것도 일인데 직장에서 알아서 딱딱 일거리를 줘야지, 나더러 직접 찾아오라니! 처음엔 황당했지만 이게 건강이웃의 진짜 취지라고 하는 게 아닌가." - 책 <나이 들고 싶은 마을> 16쪽
유 이사는 복막 투석을 시작하게 된 한 조합원의 이야기를 전했다.
"복막 투석의 세계로 처음 들어오시는 조합원이 무서움을 많이 느끼셔서 다른 조합원에게 복막 투석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자기가 복막 투석하는 게 남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자기가 아픈 게 남에게 도움이 된다니 기분이 좋으신 거다. 몇 년 투석을 해보면서 몇십 종류의 테이프를 써보고 매일 교체해도 피부가 벗겨지지 않는 테이프의 종류를 알고 있다고 하시더라. 이런 건 의사에게 받을 수 있는 종류의 조언이 아니다. 이미 테이프를 수십 개 사놔서 그걸 '투석 후배'에게 나눠주고 싶다고 하셨다." (유여원)
유 이사는 "이렇게 사람이 약이 되는 경우는 너무너무 많다. 사람은 남을 돕고 싶어 한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추 원장도 유 이사의 말을 거들었다. 추 원장은 "진료실에서 환자들에게 이것저것 물었던 걸 기억해둔다. 한글 문해 교육을 해주실 수 있는 분에게 한글을 배우고 싶은 분을 연결해드리는 것"이라며 "(교육 등을) 해주실 수 있느냐고 물어보면 흔쾌히 좋다고 말씀하신다. 그런 기회를 잘 포착해 적절하게 연결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뭐라도 도우려고, 하려는 마음은 감동적"이라고 두 사람은 입을 모은다. 유 이사는 "우리는 '모두의 주치의'라고 생각한다. '건강이웃' 사업을 1년 간 해보니 실제로 참여하신 분들이 많이 건강해지셨다"고 힘주어 말했다.
"누군들 나이 들고 아플 미래가 두렵지 않을까. 나도 너도 누구나 다 그런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 여기에서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조금씩 함께 해보는 거지.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협동조합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조금씩 서로를 닮은 평범한 우리들의 지지고 볶는 기록들이 살림을 만들어왔다." (3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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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일에 관심이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오마이뉴스 유지영입니다. alreadyblue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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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은 약이 돼요" '함께' 해서 가능했던 살림의원의 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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