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와 서울대 정진성 교수팀은 2017년 중국 운남성 송산(松山)에 포로로 잡혀있던 위안부 7명을 촬영한 18초짜리 흑백 영상을 공개했다.
서울시·서울대 인권센터 제공=연합뉴스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형성된 일본인 개항장에 조선으로 건너온 일본인 남성을 위한 성매매 집결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부산의 나카고메루(中米樓)라는 업소는 일본 요시와라에 본점을 두고 있었는데, 이곳의 단골인 구로다 기요타카(黒田清隆)가 뒤를 봐주었다. 그는 강화도조약 당시 일본의 전권대신이었다. 그리고 1881년 일본의 개항장인 부산과 원산에 성병 관리 법령이 제정되었다.
조선인 여성에 대한 성병 검사가 시작된 것은, 통감부 하의 대한제국 위생경찰이 탄생한 직후인 1906년 2월이었다. 검사의 방식은 "일본인의 주장으로 기계를 가지고 하문(下門, 성기)을 검사"하는 것이었는데 "이 일이 처음이라 계집들이 놀라고 두려워 얼굴빛을 잃고(驚惶失色) 우는 자가 많았다" 한다('창부 조사', <제국신문> 1906.2.8.). <대한매일신보>는 성병 검사의 방식이 "인류의 대우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비판했다(1906.2.16.). 검진 대상이 된 여성들은 크게 반발하였으며, 가게를 폐쇄하거나 기생업으로 바꾸거나 도망가거나 자살하는 것으로 대응하였다.
1910년 조선이 강점되면서 위생경찰의 권한은 더욱 커졌다. 성매매 관리 제도가 조선 전역에서 일원화되는 것은 1916년의 일이다. 조선에 일본군의 상주사단이 창설되기 시작하는 시점이었다. 이해 3월 31일 경무총감부는 가시자시키(貸座敷, 합법 성매매 업소), 요리점 및 음식점, 예창기, 작부에 관한 법령을 공포하고 각 도마다 달랐던 관련 법령을 통일했다. 이로써 조선총독부는 "성병 검사(檢黴, 검미)의 기초를 확립"하고 "조선의 검미 사무에 신 기원을 이룩하기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
중일전쟁이 시작되고 1938년 전시체제가 시작되면서 일제는 시국에 어울리지 않는 접객업을 폐업, 또는 전업(轉業, 업종 변경)시키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접객업자의 쇠락을 강제하기까지 악화"된 상황에서, 합법 성매매 업소만큼은 "별유천지"로 "흑자 홍수"였다. 병사의 이용이 늘면서 상당한 성업을 보인 것이다.
반면, 기존의 정치적 세력권을 넘어, 일본군이 새롭게 진출한 곳에는 '위안소'가 개설되었다. 두루 알려져 있듯이, '위안소'의 개설 목적은 병사에 대한 성병 예방과 '성적 위안', 그리고 일반 여성에 대한 강간 방지를 포함한 전쟁터의 치안 유지였다.
1938년 초 상하이파견군의 병참병원에 근무하고 있던 군의관 아소 테츠오(麻生徹男)는 군특무부의 호출을 받았다. 곧 개설되는 '육군 오락소'를 위해 상하이의 어느 소학교 건물에 도착하여 대기 중인 여성 100여 명의 신체검사를 하라는 명령이었다. 대략 조선인 80명, 일본인 20명이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소 테츠오는 1939년 6월 '화류병의 적극적 예방'이라는 제목의 글을 작성하였다. 병사의 건강을 위해 '위안부'가 전장으로 가는 마지막 항구에서, 그리고 군용 위안소에서 군의 성병 관리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1944년 7월 사이판에서 연합군의 포로가 된 일본 해군의 군의관은 해군의 성병 관리 프로그램 덕분에 해군 병사들의 성병 발생 정도가 낮다고 믿었다. '위안부'는 5일마다 검진받았으며, 질병이 발견되면 치료를 위해 즉시 격리됐다. 사병들은 성병에 걸리면, 강등되거나 물가에 가는 것이 금지되었다. 이들을 감염시킨 여성이 누구인지 확실해지면, 그녀는 벌금을 내야 했다. 장교는 성병에 걸리더라도 처벌받지 않았다.
군의 성병 관리란 당사자에게 어떤 것이었을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면담할 때, 반드시 듣게 되는 이야기가 '성병'에 관한 것이다. '여공'이나 '간호부', 또는 식당 등에 '허드렛일' 정도를 하는 줄 알고 따라갔다가, 자신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의 정체를 감지하는 것은, 주로 강제 성병 검진을 처음 당할 때였다.
'위안부'라는 말을 미리 들었다 하더라도, 생경한 그 말의 뜻을 비로소 실감하는 순간도 성병 검진 때였다. 그 순간에 관한 피해자의 이야기는 주로 몸의 괴로움과 마음의 수치심, 그리고 공포심과 절망감이 어우러져 구성되고는 한다. 이야기 중에는 자신을 검진했던 군의관이 밤에 찾아왔다는 내용이 많다. 그리고 대부분 폭행이 동반된 강간이 이루어졌다. 심한 성병에 걸려 고생하거나 삶을 놓아버린 동료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 일본군' 위안부' 피해여성의 성병 관련 기억 |
일본 군의관이 우리를 검사했다. 군의관은 내게 아랫도리 옷을 전부 벗고 나무판 위에 올라가서 다리를 벌리라고 했다. 생전 다른 남자 앞에서 옷을 벗어본 적이 없는 나는 너무나 놀라고 무서웠다. 이게 무슨 일인가 알지 못했다. (...) 군의관은 강제로 내 옷을 벗기고 아래를 검사했다. (...) 그 첫날밤에 방에서 쉬고 있는데, 그날 낮에 우리를 검사한 군의관이 내 방으로 들어왔다. (1941년 즈음 중국 광둥)
일주일에 한 번씩 검사를 하러 병원에 갔다. 병원은 군 병원이었고 일본인 군의관 한 명과 일본인 간호부 두 명이 있었다. (...) 병에 걸려 입원하면 주인은 펄펄 뛰고 난리가 났다. 이렇게 한 달, 두 달 동안을 병원에 있으면서 어떻게 빚을 갚으려고 그러느냐고 야단이었다. 빚을 갚지 못하면 기한이 자꾸 늦어졌다. (1936-1942년, 팔라우)
사용하지 않으려는 군인에게는 내가 나쁜 병이 있으니 옮지 않으려면 콘돔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판에 병에 걸리면 무슨 대수냐고 하면서 막무가내로 덤비는 사람이 많았다. 이럴 때 나는 성병에 걸릴까 봐 환장할 지경이었다.(1938년, 상하이)
위안소의 작은 방에는 세면기가 있었다. 크레졸과 과망간산칼륨을 희석시켜 일을 끝낸 다음 소독했다. 옆 위안소에 있는 19살 여성이 크레졸 원액을 화장실에서 마시고 자살했다.(1938년, 중국 우창 '세계관' 위안소)
진료실에는 문이 달려 있지 않았다. 우리를 더욱 참혹하고 황당하게 한 것은 다른 일본인 남성들이 늘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 이런 검진은 강간만큼이나 끔찍했다.(1944년, 인도네시아 스마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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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축섬의 조선인 여성들을 돌려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축섬의 귀환자들 1946년 1월 17일 축섬에서 귀환선에 오르는 조선인 여성들 축 및 중앙 캐롤라인 제도 점령군 본부, 「G-2, G-3 트럭 및 중앙 캐롤라인 제도 점령군 작전일지 보고서」, 1946.1 .
미군
박정미(충북대 교수)가 검토했듯이, 미군 또한 성병 관리에 골몰했다. 미군은 제1, 2차 세계대전기 성병으로 인한 병력 손실을 예방한다는 명분으로 민간인 여성을 가혹하게 통제했다. 미군은 일본군과 달리 성병 예방을 위해 성매매를 금지했다는 인식도 있었으나, 야전사령관들 상당수는 이를 충실히 따르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일본과 부딪힌 전쟁터에서, 미군은 일본군이 패전으로 물러난 자리에 남은 '위안부'를 발견했다. 그리고 미군 병사가 성병에 걸릴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중부 태평양 지역의 많은 섬들 가운데 하나인 축(Chuuk)은 과거 오랫동안 '트럭', '트루크', '도락쿠'라고 불려 왔다.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축섬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며 주요한 군사기지로 활용했고, 일본군 '위안부'도 배치했다. 1944년 2월 미군은 대대적인 공습으로 일본군을 궤멸시켰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축섬을 점령했다.
그 후 축섬에 머물렀던 이들을 귀환시켰는데, 이에 관해 보고한 미군의 작전일지에 귀환자에 포함된 조선인 여성들에 대해서도 기록하였다. '위안부'로 끌려왔다가 전쟁이 끝나고 현지에 남은 이들이었다. 기록은 '의료 활동'이라는 소제목 하에 작성되었고, "대부분 위안부였던 조선인 여성에 대한 철수(evacuation)는 미군 병사들 사이에 성병의 가능성을 낮췄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이 여성들은 조선에 돌아가는 것은 두려워했다. 1946년 3월 2일 자 뉴욕타임스는 이 여성들이 축섬에 남기를 원했다는 미군 장교의 말을 전했다. 일본군의 '위안부'로 있었다는 이유로 다른 조선인들이 자신들을 바다에 빠트릴까 걱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교는 결국 돌려보냈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작전 일지의 성병 우려 내용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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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젠더, 탈식민주의 관점으로 역사 보기. 여성사. 일본군'위안부'. 미군'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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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성병 검진'의 참혹함... 피해 여성들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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