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가협 양심수 석방 농성 양심수 석방을 요구하며 농성 중인 민가협 회원들. 맨 오른쪽에 앉은 이가 민가협 초대 공동회장을 역임한 장수향 어머니다.
안영민
"민가협을 결성하면서 제일 먼저 구속자들의 명칭을 '양심수'라고 바꿨어. 그전에는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사람이라고만 여겼는데, 자유를 빼앗기면서까지 지키고자 한 양심과 신념을 부각한 것이지. 처음 양심수란 말을 들었을 때, 나도 괜히 당당해지고 자신감이 생기더라."
어머니는 민가협과 함께 아버지의 석방운동에 적극 나섰다. 1987년 6월 항쟁을 거치며 양심수 문제는 민주화의 핵심 과제가 됐다. 양심수 석방을 요구하는 민중들의 거센 압박에 노태우 정권도 양심수를 석방할 수밖에 없었다. 1988년 12월이었다. 이때 아버지를 비롯한 남민전 사건 구속자와 재일동포 유학생 사건 구속자들도 모두 석방됐다.
엄마들이 앞장서고 젊은 아내들은 밀어주고
민가협의 선두에는 '엄마'들이 있었다. 모성을 앞세운 엄마들은 자식을 석방시키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안기부, 대공분실, 구치소, 교도소, 검찰청, 법무부 등 어디든 쫓아갔다. 가로막으면 길바닥에 드러누워 싸웠다. 엄마들의 투쟁은 곧 민가협의 상징처럼 되었다. 오죽하면 경찰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존재가 민가협이 되었을까.
민가협에는 재야인사,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 조작 간첩 사건 등으로 잡혀간 양심수의 아내들도 많았다. 민가협 초창기에는 주로 젊은 아내들이 총무나 간사로 실무를 맡았다. 당시 민가협에는 유명한 삼총사가 있었다. 인재근(민청련 사건 김근태의 아내), 조무하(민통련 사건 장기표의 아내), 유시춘(서울대 민추위 사건 유시민의 누나), 이렇게 세 사람이었다.
이들은 투쟁을 기획하고 준비하면서 민가협을 꼼꼼히 챙겼다. 민가협이 결성 초기부터 빠르게 영향력을 확대해나갈 수 있었던 데는 '삼총사'의 역할이 컸다. 엄마들은 거침없이 앞장서 싸우고, 젊은 아내들은 그런 엄마들을 뒤에서 열심히 챙기고 밀어주었다.

▲김수환 추기경과 기념사진 1983년 명동성당에서 열린 견진성사 때 김수환 추기경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장수향 어머니와 작은딸 안소영, 작은아들 안영민. 오른쪽은 재일동포 유학생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무기로 감형된 이철씨의 장모인 조만조 선생(민가협 초대 공동회장).
안영민
한날은 어머니가 다른 가족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고 한다.
'남편이 구속된 아내와 자식이 구속된 엄마 중 누가 더 힘들까?'
당시 어머니는 아내가 더 힘들다고 강조했다. 가장의 역할을 대신해야 하는 경제 문제, 자식들을 올바로 키우는 교육 문제,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옥바라지, 이 모든 걸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아내의 신세가 더 고통스럽다고 했다. 그에 비하면 엄마들은 남편이 돈을 벌어다 주지 않는가, 자식의 감옥 뒷바라지에만 전념하면 되지 않는가, 이렇게 반박했다는 것이다.
남편 감옥 바라지에 애들까지 챙겨야 하는 고달픈 아내
교도소 항의 방문이나 농성 때 저녁이 되면 아내들은 발을 동동 구른다. 빨리 집에 가서 애들을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들은 전혀 동요가 없다. 끝장을 볼 때까지 싸울 기세다. 결국 아내들은 하나둘씩 집으로 가고 엄마들만 남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양심수의 아내들한테는 남편 감옥 뒷바라지보다 집에 있는 어린 자식들 챙기는 게 더 큰 문제였어. 대신 애를 봐줄 사람이 없으면 민가협 활동은커녕 남편 뒷바라지도 버거웠지. 그런 게 엄마들하고는 처지가 달랐어."
고달픈 아내의 처지는 어머니에게도 큰 짐이었다. 어머니는 1979년 10월에 아버지가 구속된 뒤, 한창 커가는 4남매를 홀로 키우느라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러니 당연히 아내가 더 힘들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막상 어머니가 직접 당하고 나니 아니었다. 자식의 구속은 남편의 구속과는 비교가 안 됐다. 1990년 3월에 내가 시위에서 연행돼 구속된 일이 있었다. 아버지가 출소한 지 불과 1년 여가 지난 때였다. 그때 어머니는 남편이 구속됐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고통을 느꼈다고 한다.
"남편이 구속됐을 때는 힘들다는 생각뿐이었어. 친척들도 외면하고, 경제적으로도 너무 힘들었으니까. 근데 아들이 구속되니까 그냥 아프더라. 몸도 마음도 정말 아프더라..."

▲김대중 대통령 만나는 민가협 1998년 2월에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도 양심수 출신으로 민가협과는 오랜 인연을 맺어 왔다.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장수향 어머니.
안영민
남편의 구속은 고난(苦難)의 세월이었지만, 아들의 구속은 하루하루 고통(苦痛)의 날들이었다. 살을 베는 듯한 아픔이 뭔지 실감하게 했다. 그런데 1994년에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남편과 아들이 동시에 구속됐으니… 아내와 어머니로서 겪어야만 했던 이중의 고통은 마음속 깊이 상처로 남았다.
자식의 구속은 차원이 다른 고통의 날들
구속된 남편을 10년 만에 간신히 감옥에서 끄집어냈더니 그다음에는 아들이 구속되고, 다시 몇 년 뒤에는 남편과 아들이 동시에 구속되는 경우는, 수만 가지 사연이 있는 민가협에서도 유일했다. 30년간 고난의 세월과 고통의 날들을 번갈아 하다, 끝내는 한꺼번에 겪어야만 했던 어머니는 2009년 1월, 일흔다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의 장례식에 오신 임기란 민가협 회장님께서 영정 사진을 보며 넋두리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임기란 회장님은 어머니의 포항여중 선배로 민가협 활동을 하면서 각별한 정을 나누었다.
"수향씨, 고생만 하다 이렇게 떠나는군요. 남편 옥바라지에 아들 옥바라지까지, 또 남편과 아들이 함께 잡혀갔으니 얼마나 애통했을까. 이제 한 많은 세월 다 내려놓고 편하게 떠나세요. 민가협에서 함께 했던 날들을 나도 잊지 않을게."

▲금강산 관광 2000년대 중반 남편인 안재구 교수와 금강산을 찾은 장수향 어머니. 무기수로 두 차례나 복역했던 남편의 15년 감옥살이 끝에 모처럼 얻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안영민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2년 여가 지난 뒤, 나는 다시 민가협의 신세를 졌다. 2011년 7월에 민족21 사건으로 국정원으로부터 압수수색을 받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것이다. 나는 2018년 최종 판결이 나올 때까지 꼬박 7년을 시달려야만 했다. 그 세월 동안 민가협은 내게 다시 응원군이 돼 주었다.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대신해 민가협 어머니들이 내 곁을 든든히 지켜준 것이다.
그리고 민가협 40주년을 맞는 2025년, 이번에는 내가 어머니들의 곁을 지키고 있다. 팔순 잔치도 못 하고 세상을 떠난 '장수향 어머니'를 생각하며 민가협 40주년 잔치를 준비하고 있다. 피 끓는 청년 시절 감옥살이를 한 우리는 사회로 나와 직장을 얻고, 결혼해 아이를 낳고, 그렇게 나이를 먹어 갔다. 사는 게 바쁘다고 민가협을 잊고 있는 동안 어머니들은 40년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켜왔다. 이제는 잊고 있던 그 세월을 함께 돌아보고 되새겨봐야 하지 않을까. 내가 민가협 40주년 기념사업을 책임지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가협 40주년 기념사업 주요 내용 및 일정]
● 사진전 '엄마들의 보랏빛 꿈' : 11월 13~21일(인사동 아지트미술관)
● 심포지엄 '민주와 인권을 향한 40년, 어머니의 위대한 여정' : 11월 27일(금) 오후 2시 국회의원 회관 8간담회실
● 특별헌정공연 '어머니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 : 12월 13일(토) 오후 4시 한양대 올림픽체육관
● 사진집 '엄마의 보랏빛 꿈' : 11월 5일 발간(인터넷서점 판매 중)
● 기념도서 '민가협 40년, 그 보랏빛 여정' : 12월 초 발간 예정
● 미니다큐 '민가협을 기억하다'(총 20편) : 민가협 40주년 유튜브 채널 민가협40년 - YouTube에 공개
● 민가협 관련 자료는 온라인기록관 민가협 40년 기록관에서 볼 수 있으며, 민가협 40주년 기념사업 내용은 홈페이지 민가협 40주년 기념사업위원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민가협 40주년 헌정공연 제작 후원 https://www.socialfunch.org/mkh40
● 문의 : 안영민 상임운영위원장(010-8010-7013), 이병인 사무국장(010-3786-3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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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12월 창립된 민주화실천기족협의회(민가협)의 40주년을 맞아 민가협의 활동과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한 한시적인 조직입니다. 12월 13일 민가협 40주년 특별 헌정 공연 '어머니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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