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응노, <고향집>, 1950년대
전사랑
"고향집이 기와집이네, 우리 집은 초가집이었는데..."
이응노의 <고향집> 앞에서 아버지가 말한다. 아버지의 집은 아마도 변관식이 그린 허름한 동네에 초가집과 비슷했을 터였다.
"아빠, 이 시대 화가들은 대부분 지방 유지의 자제들이야."
내가 말한다. "그럼,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을 때인데..." 아버지가 응수한다. 한국에서보다 프랑스에서 자리 잡은 이응노 화백이기에, 당대 많은 '유학파' 화가들처럼 당연히 부잣집 아들이 아닐까 짐작했다.
돌아와 찾아보니 홍성의 유학자 가문에서 태어난 이응노는 화업을 반대한 집안에서 17세에 가출, 상엿집 칠장이도 하고 신문 배달을 하며 일본 유학 생활을 했고, 프랑스로 떠나 화가로서 자립한 그대로 자수성가의 표본이었다.
궁색하기 그지없었던 파리에서도 그의 작품들을 보면 기필코 이뤄낸 그의 열망과 강인함이 그대로 묻어나 있다. 나라가 망하고 전쟁이 일어나 두 동강이 났어도 그의 필치는 수그러듦 없이 꼿꼿하다. 그러던 그가 동백림사건으로 무고하게 귀국길에 체포되어 1심에서 무기징역을 받았고 1969년 프랑스 정부와 예술가들의 탄원으로 특별사면되었다.
이후 그는 한 번도 조국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 이응노이기에, 그의 고향집이 더욱 애잔하게 느껴진다. 이번 전시의 이응노가 그린 홍성, 수덕사, 공주,그리고 고향집은 쉼 없는 한국의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화가가 다시는 눈에 담지 못했던 풍경이다. 이응노는 파리에 묻혔고 그의 작품들만 한국 땅으로 돌아왔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에는 실향민에 비할 수 없을 것이다. 거기엔 떠나온 땅 뿐 아니라 떠나온 가족, 잃어버린 가족에 대한 말로 어찌할 수 없는 슬픔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 전화황, <나의 생가>, 1957.
전사랑
전화황의 <나의 생가>를 보자.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나 제일조선인 화가가 된 그는 특히 향수 어린 고향을 그렸다. 한국전쟁과 분단으로 가족을 잃은 그에게 고향집은 그 고통 어린 향수를 그대로 체감하게 한다. 집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와 그 주변을 에워싼 어둠의 기운은 마치 작가의 내면으로 스며드는 폭력과 상흔 같다.

▲ 박성환, <망향>, 1971
전사랑
박성환의 <망향>은 또 어떤가. 황해도 출신 실향 화가인 박성환은 고향을 그렸다. 가 볼 수 없는 고향을 그려서인지 지역적 특성보다는 마음속 따스하고 아련한 그리고 어느새 희미해지는 고향을 붙잡고 있는 것 같다. 섬세한 붓질보다는 마티에르를 발라 오묘한 색감을 이룬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헤어 나올 수 없이 빠져든다. 겹겹이 쌓아 올린 유화 물감의 질감은 세월 속에 퇴적된 그리움의 층위를 닮았다.

▲ 윤중식, <봄>, 1975.
국립현대미술관
걸출한 작가들이 그린 고향
윤중식은 월남해서도 대동강의 석양을 그리며 마음을 달랬다. <봄>을 보고 있으면 피난 중 헤어져 생사도 확인하지 못한 부인과 큰딸에 대한 그리움이 전해져 온다. 그가 유달리 새를 많이 그렸던 것도 휴전선 따위는 상관없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유에 대한 열망이었을 것이다.
실제로도 그는 "내 일생이란 게 그저 고향 가고 싶은 생각과 헤어진 딸을 보고 싶은 생각"이라며 실향민과 이산가족으로서의 처절함을 언급한 바 있다. 그에게 봄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가족에게로 돌아가는 평범한 저녁의 풍경이었을 것이다.
이번 전시는 모두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걸출한 작가들이 그린 '고향'을 한자리에 모았다. 통영의 전혁림, 제주의 변시지, 김환기의 신안, 유영국의 울진 산 자락, 박상옥의 서울까지.
각자의 고향이 서로 다른 풍경과 색을 지니고 있지만, 그 안에는 모두 상실의 정서가 공명한다. 그리고 화가들이 재현한 고향의 모습 속에서 굴곡진 한국의 현대사의 상흔을 느낄 수 있는 전시이기도 했다.
또한 아버지가 호남의 화가 허건과 허백련의 그림 앞에서 반가워하셨듯이, 한국 현대사를 겪어낸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이 전시 어딘가에서 자신의 뿌리를 발견할 것이다. 전시를 보고 자문해 보았다. 나의 고향은 어디일까. 어린 시절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특색 없는 계획도시 속 아파트 단지가 떠오른다. 가져본 적 없는 향수라는 감정 앞에서 왠지 모를 허전함이 밀려온다.

▲ 허건, <풍속도>, 1945.
전사랑
[전시 정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2026년 2월 22일까지
입장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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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을 공부하러 영국에 갔다 미술에 빠져서 돌아왔다. 이후 미술사를 전공하고 미술에 관련한 글을 쓰고 있다.
srjun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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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집'에 살았던 50년생 아버지가 한참 들여다 본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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