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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엄마가 끓여주는 된장찌개를 먹어보고 죽어야겠다

코로나와 암 치료로 미룬 만남... 6년 만에 엄마를 보러 갔다

등록 2025.11.08 17:48수정 2025.11.0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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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시어머님 살아 계실 적이면 비 오면 비 온다고, 눈 오면 눈 온다고, 바람 불면 바람 분다고 말리는 통에 친정 나들이를 자주 하지 못했다. 회사가 바쁠 적에는 엄마 디스크 수술하는 날에도 이웃 어르신께 부탁 드리고 수술실 앞을 지키지 못했다. 고작 150km 두 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를 나는 지난 삼십여 년을 자잘한 벽들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였다.

코로나 때문에 자주 뵙지 못했던 엄마를 이번엔 내 병치레 때문에 장장 몇 년을 보지 못하였다. 지난 2021년 6월 암 수술을 후 머리카락을 전부 없앤 채로 엄마 앞에 얼굴을 내밀고 싶지 않았다. 통증이 좀 가시고 움직일 수 있으면 가야지, 휘청거리는 다리에 힘이 좀 오르면 가야지, 퉁퉁 부은 붓기가 조금이라도 빠지면 가야지, 조금 더 조금 더 사람다워지면 가야지, 멀쩡해지기를 기다렸다.


6년을 보지 못한 엄마

엄마 집 앞 강 엄마와 산책하고 혼자 걷고 바람쐬기 좋은 엄마 집앞 강가이다.
▲엄마 집 앞 강 엄마와 산책하고 혼자 걷고 바람쐬기 좋은 엄마 집앞 강가이다. 김민정

더는 참지 못하고 내가 먼저 나섰다. 엄마 보러 간다고 선언을 하였다. 눈, 비 올 때마다 바닥 미끄러워 아범 운전하기 힘들다고 말리던 시어머니도 이제는 계시지 않고, 당장 일해야 하는데 자리를 비우면 어떡하느냐고 화를 내는 회사 사람도 없다. 나는 자유인이다.

김밥 일곱 줄을 싸고 유부초밥 열네 개를 만들었다. 김밥 옆구리 터지지 말라고 중량 무거운 김을 골라 샀고, 유부초밥 안에 소고기도 듬뿍 넣었다. 엄마가 김밥을 좋아하시는지 잘 모르겠다. 그저 색다른 음식을 드시게 하고 싶었다. 한우 소고기 불고기도 한 팩 준비하고 달콤한 케이크도 샀다.

엄마를 위한 김밥 재료들 색다른 음식을 드시게 하고 싶어서 준비하는 김밥재료
▲엄마를 위한 김밥 재료들 색다른 음식을 드시게 하고 싶어서 준비하는 김밥재료 김민정

지난 달 29일, 이른 새벽 일어나 김밥을 싸면서 엄마를 미워했던, 엄마를 외면했던 지난 시간들 속의 내가 보였다.

엄마 전화가 오면 바쁘다는 핑계로 서둘러 끊어버리고 명절과 엄마 생신과 어버이날 엄마와 마주 앉았다 곧장 집으로 돌아가기 재촉했었던 나. 단 하룻밤도 엄마 곁에서 엄마와 함께 지내지 않았던 나. 이제 와서 내가 엄마를 찾는 건 지독한 뻔뻔함이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삶의 길 위에서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번번이 나를 배제하였다. 나는 늘 똑같은 자리에서 엄마를 기다렸는데 엄마는 늘 내가 아닌 다른 선택을 하였다. 엄마에 대한 서운함이 서러움으로 변해가면서 나 또한 엄마를 의식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그 시간이 어느새 30년이 넘었다.

올해 2월 세 번째 암 수술을 받았다. 지금 당장 죽는다 해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병마와 싸우면서 볼품없는 몸체로 흐느적 흐느적 움직이면서도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의 전화가 기다려지고, 어렸을 적 엄마가 만들어준 볶음밥이 떠올랐다.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 한참 고생을 하던 즈음에는 엄마가 해준 밥과 반찬이 생각나 마음이 아주 어지러웠다.


엄마 밥 한 숟가락만 먹으면 거짓말처럼 벌떡 일어날 것만 같았다. 내가 급급하니 과거의 서운하고 서러운 시간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다. 지난 삼십년 동안 내가 먼저 엄마를 불러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그게 뭐 대수인가 싶은 일들이 더 많아졌다.

엄마를 볼 수만 있으면 되었다 싶다. 첫 발병 이후 세 번의 암 수술이 나에게 준 선물이다. 죽음을 앞두면 겸손해진다. 살아있는 것만으로 감사한 일들이 너무나 많다. 그걸 알게 해주고 깨닫게 해 준 것이 암이었다.

늙은 엄마가 잡은 손

김밥, 유부초밥, 찜닭, 쇠고기 불고기 1팩 김밥과 유부초밥을 싸고 찜닭을 만들고 쇠고기 불고기를 샀다.
▲김밥, 유부초밥, 찜닭, 쇠고기 불고기 1팩 김밥과 유부초밥을 싸고 찜닭을 만들고 쇠고기 불고기를 샀다. 김민정

따뜻한 김밥 일곱 줄과 달콤한 유부 초밥 열네 개를 차에 싣고, 소고기 불고기 한 팩도 차에 싣고 엄마 보러 길을 나섰다. 아프고 난 후 두 시간 가까이 차를 타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부디 내년에도 그 다음 해에도 내가 김밥과 유부초밥을 싸서 엄마 보러 길을 나설 수 있기를 기도한다.

너무 오래 먼 길을 돌아 이제야 겨우 지금에 다다랐다. 내게 남겨진 시간에 비해 잃어버린 시간들이 너무 오래다. 후회하는 것조차 부끄럽지만 앞으로 남은 시간 부디 엄마를 오래 오래 뵈었으면 좋겠다.

"아가! 엄마한테서 좀 지내다 가면 안 되겠나? 여기 공기 좋은 데서 산책하고 엄마가 된장찌개 맛있게 끓여줄게."

맛있다며 김밥을 잔뜩 드신 엄마가 나의 몰골을 보다 말씀하신다. 엄마 옆에서 엄마 밥 먹으며 좀 쉬어가라고. 엄마와 함께 잠을 자고, 밥을 먹고, 함께 걷고, 목욕도 하고, 차도 마시고 그렇게 있다 가라며 늙은 엄마가 나의 손을 잡는다.

엄마의 손이 따뜻하다. 주저앉아 엉엉 목 놓아 울고 싶을 만큼. 병원에 가야 하는 나는 엄마랑 며칠 더 있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다짐했다. 늙은 엄마가 끓여주는 된장찌개를 먹어보고 죽어야겠다고. 엄마의 따뜻한 손을 더 오래 더 많이 잡아보고 죽어야겠다고.
#엄마 #고향집 #암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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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고 글을 쓰고, 사람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많이 쓰면서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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