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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늙는다... 혼자 사는 노인 집의 필수품

'돌봄' 정책보다 '자립' 정책이 더 많이 나오길

등록 2025.10.14 16:35수정 2025.10.14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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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인가부터 요양원에 가신 할머니 핸드폰이 꺼졌다. 엄마가 오후 6시쯤 요양원으로 전화했더니 한국말 억양이 어색한 누군가가 "전화 없어. 약 먹고 싹 자. 싹 자." 라는 말만 몇 번 반복하고 끊어버렸다고 했다. 코로나 초기라 면회도 안 되어서 엄마는 할머니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수면제는 이곳에서 공공의 이익이다?


엄마와 나는 그날의 통화로 수면제 사용을 짐작할 뿐이다. 그 요양원은 큰 방에 침대가 10개쯤 있고 커튼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그런 곳에서 섬망으로 소리를 지르거나 요란한 잠꼬대를 하면 다른 사람도 덩달아 불안해진다고 한다. 그러니 요란한 사람은 어떻게든 재워야 한다 해도 할 말이 없다.

옆 침대 할머니는 부축해 주면 화장실에 갈 수 있지만 일손 부족의 이유로 그곳에서는 기저귀를 찬다고 했다. 그게 싫다고 침대 10개를 지나 화장실에 가다가 넘어지면 큰일이니 잠들었을 때 손발을 침대에 고정한다. 이에 동의하지 않으면 입소 자체가 안된다. 출근하는 자식과 손주에게 종일 할머니 수발을 들라고 할 수도 없다. 결국 그쪽 보호자는 할머니에게 가혹하다는 걸 알면서도 동의했다고 했다.

 우리 할머니가 목소리가 컸던 이유.
우리 할머니가 목소리가 컸던 이유. carlitaux on Unsplash

우리 할머니는 목소리가 컸다. 정신은 더없이 맑은데 와상환자가 됐으니 하소연이 많았다. 자식손주 누구도 당신을 돌보지 않는다며 슬퍼하셨다. 요양원 입장에서는 목소리 크고 말 많은 할머니가 섬망 노인과 별반 차이 없었을 것이다. 할머니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잠들어야 했을지 모른다. 할머니는 요양원 가신 지 반 년 만에 엄마를 못 알아보셨다.

일본 요양시설에서는 1인실을 의무화해 사생활을 보호하고, 정신적 안정을 유도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1인실을 둘이나 셋으로 나눈 크기로 침대 하나, 화장실 하나가 전부다. 침대에서 안전바 잡고 몇 발자국 걸으면 바로 화장실에 갈 수 있다.

할머니는 아예 못 일어났으니 화장실까진 어쩔 수 없었겠지만 적어도 혼자 불평을 내뱉어도 되고, 잠드는 약을 먹지 않았다면 어땠을까라는 허망한 상상을 해본다.


혼자 사는 노인 집의 필수품, 논슬립 스티커

이번 명절에 엄마 집에 갈 때 미끄럼 방지 스티커를 사갔다. 혼자 사는 엄마집 화장실과 다용도실에 붙였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바닥 지저분하게 그런 거 뭐하러 하냐고 했는데 이번에는 노인 낙상이 제일 무섭다며 수긍했다. 다행히도 엄마 혼자 다리힘을 키우기 위한 이런저런 맨몸운동을 많이 하고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발목 스트레칭을 알려드렸다. 처음 해보는 건데 종아리까지 너무 시원하다면서 자주 해야겠노라 했다.


엄마가 집안일과 식사 준비를 혼자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집에 있는 내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노인에게 무조건 쉬라고 하는 건 절대 효도가 될 수 없다. 집안일과 식사 준비는 삶의 의욕을 유지하는 기본이다. 노인을 '돌봄'보다 '자립'의 존재로 보는 일본이 강조하는 것 중 하나다.

우리보다 20년 앞서 고령화사회를 대비한 일본은 자치구 단위로 노인을 위한 포괄케어가 정립됐다. 그 일환으로 자립을 위한 인지, 신체 운동을 매일 4-6시간씩 하는 데이케어 센터가 흔하다. '노인을 편히 모신다'가 결코 노인을 위한 일이 아니라는 게 상식이 된 덕이다.

'돌봄' 정책보다 '자립' 정책이 더 많이 나오길

 누구나 나이든다.
누구나 나이든다. mbennettphoto on Unsplash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시설보다 내가 살던 집에서 되도록 오래 살고 싶다고 응답한 노인이 절대 다수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이 건강할 때 예방해야 하지만 정책도 그렇게 가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정책은 예방보다 효율적인 시설 단체돌봄에 초점을 맞춘다. 간병이 필요 없는 노년은 어떻게 만들까? 같은 고민은 아예 배제된 답이다.

그 효율은 우리 할머니의 경우처럼 나아짐을 절대 기대할 수 없는 강제 수용과 비슷하다. 정책 만드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도 늙는다는 걸 알고 있냐고. 본인이 침대에 묶이고 억지로 재워지는 그 시설을 상상해본 적 있냐고. 물론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온전한 자립이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자립에 초점을 맞춘다면 돌봄 기간을 최대로 짧게 할 수는 있다.

누구나 나이든다. 그 당연한 사실을 전제로 정책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일본처럼 자립에 초점을 둔 정책, 집에서 오래 살 수 있도록 돕는 제도가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더불어 혼자 있는 엄마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효도는 엄마가 스스로 살아갈 힘을 잃지 않도록 응원하는 것임을 기억한다. 나는 엄마를 편히 쉬게 하는 게 아니라, 엄마가 뭐든 혼자 할 수 있게 돕는 자식이 되고 싶다.
#요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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