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임영관 삼문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후(936년), 강릉에 임영관을 세우고 수도에 준하는 동원경(東原京)으로 불렀다.
최다혜
기꺼이 성을 간 사람들
왕건의 창의력은 결혼정책에서 끝이 아니다. 그는 지방 유력 호족들에게 엄청난 선물을 줬다. 이 선물을 받으면 부와 명예, 그리고 관직까지 뒤따랐다. 그게 바로 '성(姓)'이다. 왕과 같은 왕(王)씨 성을 선물 받은 가문도 있고, 다른 성을 하사 받기도 했다. 우리 나라 성의 대부분은 고려시대 왕건이 하사한 경우가 많다. 그러니 고려 시대 때 '성을 간' 사람은 태조의 압도적인 신임을 받았다는 의미였다.
강릉에도 왕씨 성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김순식(金順式)과 김예(金乂)다. 강릉 유력 호족이었던 김순식은 왕순식(王順式)이 됐고, 신라 왕실의 후예였던 김예는 왕예(王乂)가 됐다. 그들은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는 마지막 결전이었던 일리천 전투의 최전선에 섰다. 이 전투는 아버지인 견훤을 가두고 후백제의 왕이 되고자 했던 견훤의 아들, 신검과의 전투였다. 이 때 4만 명의 마군(馬軍) 중 절반인 2만을 김순식 부대가 지휘를 했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여기서 퀴즈. 왕건의 성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왕씨지."
"땡. 정답은 '없다'! 신라 시대 때, 지방 호족들에게는 성이 없었대."
왕건의 아버지는 용건, 할아버지는 작제건이다. 그러면 설마 건(建)이 성일까? 그것도 아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3대(代)가 나란히 이름 끝에 건을 쓴 이유를 설명해주는 설화가 있다. 왕건의 할아버지인 작제건의 장인어른은 서해 용왕이었다고 한다. 서해 용왕은 작제건에게 귀띔 하나를 해줬다.
"동방의 임금이 되려면 '건(建)'자 붙은 이름으로 자손까지 3대를 거쳐야 한다."
그래서 작제건의 아들은 용건, 그리고 손주는 왕건으로 이어진다. 신라 시대 지방 호족이라 성 없이 이름 뿐이었던 왕건은 '왕'을 자신의 성으로, '건'은 자신의 이름으로 쪼갠다. 그리고 새로 시작한 자신의 성을 지방 호족들에게 하사한 것이다. 왕과 같은 성을 쓰게 되었는데 없던 충심도 끓어오르지 않겠는가.
서해 용왕의 예언처럼 왕건은 고려의 임금이 된다. 일본은 임영관을 '전근대적인 것'으로 치부하며 경찰서를 짓는 만행을 저질렀다. 다른 나라를 억압했던 일본은 결국 패망하고 역사의 죄인이 됐다. 하지만 왕건은 달랐다. 망한 나라의 사람들에게조차 넉넉히 대접하고, 따뜻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포용의 천재였다. 세계를 포용하는 K(고려, Korea)의 시작은 이토록 너그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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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성(姓)을 갈아치운 사람들, 이유가 납득이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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