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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부터 70대까지, 3대를 '떼창'하게 만든 사람

추석 연휴에 TV로 만난 조용필... 그가 노래하는 동안, 엄마는 꽃처럼 환하게 웃으셨다

등록 2025.10.10 17:52수정 2025.10.10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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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 연휴가 막바지다. 우리 가족은 고향에서의 5일을 마무리하고 드디어 집으로 올라왔다. 올라오자마자, 친정엄마께 연락을 드렸다. 무사히 도착했음을 알리자 엄마의 밝은 음성이 전화선을 타고 넘어왔다.

"엄마 좋아졌대. 운동을 꾸준히 한 보람이 있어."


우리가 올라오고 나서, 언니와 함께 산부인과에 다녀온 뒤였다. 끝이 없을 것 같던 바이러스 3개가 끈질기게 엄마를 괴롭혀 왔다. 그런데 그중 가장 위험한 바이러스 하나가 해결되었다는 진단을 받고 엄마의 기분이 하늘을 날 듯한 모양이다.

엄마의 마음이 회복된 순간

엄마의 밝은 음성에 나 역시 안도와 기쁨의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3년 전, 갑작스레 파킨슨 진단을 받은 엄마는 그 뒤로 지겨울 정도로 병원을 드나들어야 했다. 우울증 약을 처방 받아야 할 만큼 마음의 가라앉음은 심각했다.

마음이 병든 탓이었을까. 수년간 건강검진에서 깨끗하다는 진단만 받던 엄마였다. 그런데 파킨슨 진단과 거의 동시에 멀쩡하던 장기들이 하나둘 문제를 일으켰다. 위에서 종양이 발견되어 떼어내는 수술을 해야 했다. 자궁 수술도 연이어 이어졌다.

게다가 엄마에게 무릎에도 문제가 생겼다. 결국 두 번의 수술을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엄마는 인공 관절 치환술을 받아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옛말은 어쩜 이리도 딱 들어맞는지. 엄마의 건강에 위험 신호가 감지될수록 우리 형제들의 근심도 날로 깊어져 갔다.


하지만 정말 감사하게도 엄마는 우울증 약을 끊어도 될 만큼, 마음이 많이 회복되셨다. 교회에 다니시는 또래 어른들과 돈독히 지내면서 '나만 아픈 게 아니구나'를 느끼게 되었고, 약해진 몸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하셨다. '나이 들면 약해지는 건 당연하다'는 인식과 함께 엄마는 오히려 '이만한 게 다행이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게 되었다.

이런 날이 있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지난달 6일 고척 스카이 돔에서 KBS가 기획한 '광복 80주년 대기획-이 순간을 영원히 조용필' 공연이 열렸다.
지난달 6일 고척 스카이 돔에서 KBS가 기획한 '광복 80주년 대기획-이 순간을 영원히 조용필' 공연이 열렸다. KBS

마음 상태가 몸의 상태에 영향을 끼친다는 속설이 정설이라는 것을 엄마를 보며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며칠 전, 엄마네에서 '광복 80주년 한국방송 대기획-이 순간을 영원히, 조용필'이라는 콘서트 녹화 방송 프로그램을 온 가족이 시청했다. 14살 딸부터 스무 살 아들, 40대인 우리 부부, 70대인 엄마가 같이 떼창을 했다. 3대가 함께 떼창을 할 날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정말 기묘한 순간이었다. '가왕을 넘어 대왕이 아니겠냐'는 어느 인터뷰가 떠오른다.

가수 조용필 님은 1949년생 엄마보다 한 살 어린 70대이다. 그럼에도 젊은 시절 못지않은 매력적인 목소리로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그야말로 역사에 길이 남을 가수이다. 수많은 히트곡의 장르는 정말로 다채롭다. 락, 발라드, 트로트, 민요 등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거의 모든 장르를 소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들과 우리가 동시에 인정하는 가왕, 조용필의 노래를 함께 듣던 엄마는 가만히 읊조리듯 말했다.

"저이는 나이도 먹지 않나 보다. 옛날 그대로네."
"엄마랑 조용필이랑 한 살밖에 차이 안 나. 엄마도 옛날 그대로야."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이긴 했다. 그러나 엄마의 주름진 두 눈의 총명함은 내가 사랑했던 그 눈 그대로가 정말로 맞다. 가라앉은 마음일 때 정말로 탁했던 그 눈이, 다시 이렇게 맑아지기까지 엄마가 극복해 온 시간은 너무 감사하고 존경스럽다. 내 말을 듣고 엄마는 활짝 핀 꽃처럼 환하게 웃으셨다.

나이가 들어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유명인의 행보는 이처럼 선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손주와 할머니를 하나 되게 하는 힘은 아무에게나 있는 것이 아닐 테다. 유명인의 삶에 영향을 받는 것이 그리 현명한 삶의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오랜 세월 한결같은 모습으로 대중에게 다가오는 모습은 감동을 넘어 고마운 마음을 갖게 한다.

세대를 넘나들며 사랑받는 조용필님, 오래오래 노래해 주세요. 바이러스 하나 이겨내고, 여전히 운동을 멈추지 않는 우리 엄마의 웃음도 오래오래 이어졌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SNS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조용필 #세대를잇는노래 #명절이야기 #엄마의회복 #떼창의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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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평범한 주부. 7권의 웹소설 e북 출간 경력 있음. 현재 '쓰고뱉다'라는 글쓰기 공동체에서 '쓰니신나'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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