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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5.10.07 18:18수정 2025.10.07 18:18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아무도 오지 않는 집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정현순
평소 명절 당일 아침이라면 주방에서 아이들 맞이하려는 준비로 한참 바빴을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아이들이 모두 모여 왁자지껄했을 것이다.
하지만 6일 추석 아침은 달랐다. 남편은 조카 집(우리 집에서 30분 거리)으로 차례 지내러 갔고 집에는 강아지와 나 단둘이 있다. 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소파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텅 빈 집에서 아파트를 내려다봤다. 조용히 비가 내리고 있었고 설렁설렁 부는 바람에 나뭇잎이 제법 많이 떨어져 있었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날씨가 한결 시원해질 것 같다. 지나다니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적막감마저 들었다. 그런 풍경을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어제(5일) 가족들과 나누던 대화가 생각났다.
"너희들은 내일(추석) 안 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
사위 : "어머님 아버님 마음 편하신 대로 하세요."
아들 : "엄마 아빠 섭섭하지 않겠어요?"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옅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내 안에서 '무리해서라도 명절을 준비할 걸 그랬나?' 하는 약간의 갈등이 느껴졌다. 딸과 며느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혼한 지 51년, 엄마도 명절에 쉬어보자
9월 초에 감기가 찾아왔다. 언제부터인가 환절기만 되면 감기가 단골로 찾아온다. 한번 감기가 찾아오면 한 달 혹은 두 달까지도 고생한다. 이번에도 병원을 두 번이나 다녀오고 링거도 맞았지만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올 때까지 몸이 회복되지 않았다. 시장을 간다거나 음식을 준비하는 일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며칠 고민하다 결단을 내렸다. '그래, 나도 이참에 명절 휴가라는 것을 한번 가져보자'라고.
메신저 가족 단체대화방에 올리기 전에 남편과 의논을 했다. "내가 이번 명절에는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으니깐 추석 전에 가족모임은 외식으로 대신하고 명절 당일에는 나도 좀 쉬고 싶어"라고. 남편도 그러라고 한다.
의논이 끝나고 가족 대화방에 메시지를 올렸다.
"이번 추석 명절은 10월 3, 4, 5일 중 모두 모일 수 있는 날을 정해 외식으로 대신하자. 그리고 추석 당일에는 엄마 집에 안 오는 거로."

▲ 이번 가족모임 때 촬영한 사진
정현순
10월 5일, 내가 잘 먹는 고깃집으로 장소가 정해졌다. 가족 9명 중 작은 손자는 군 복무 중이라 오지 못했고 8명이 모두 모였다.
음식점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우리 집으로 다시 모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추석날 진짜 안 와도 되냐'는 질문도 나왔다. 아이들도 섭섭한 마음이 들었는지 몇 번이나 확인한다.
"엄마가 결혼한 지 51년 됐는데 처음으로 명절 음식을 안 해본다. 너희들이 어려서는 명절에 단 한 번도 큰집에 안 간 적이 없었고 너희들이 결혼해서는 새 식구들이 오니깐 명절 준비를 해야 했지. 이번에는 아픈 걸 핑계 삼아 명절에 아무것도 안 하고 쉬어보려고."
그말을 듣고 사위가 "이번에는 좀 쉬세요. 아직도 감기기운이 있으신 것 같아요" 한다. 고마웠다.
모두에게 괜찮은 시간이었길
텅 빈 집에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안 하던 짓을 하고 있으니 몸과 마음이 그다지 편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환기시키려고 창문을 열어놓자 내 몸이 다시 반응하기 시작했다. 재채기가 끊임없이 계속됐다. '쉬기를 잘했어. 무리해서 명절을 준비했더라면 감기가 더 오래 갔을 거야'라고 혼잣말을 했다.
나만 이런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아이들도 이런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모두에게 괜찮은 시간이었길.
은퇴 전후의 6070 시니어들에게는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요?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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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지 51년, 처음으로 추석에 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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