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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병치레 없는 79세 은퇴 교수 "당혹스러운 질문을 하세요"

선생은 질문하는 사람... 존 바우처의 '질문'

등록 2025.10.07 10:44수정 2025.10.07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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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기자말]
은퇴자의 하루

존 바우처(John Boucher) 씨의 집에 머문 지 4주가 지났다. 캐나다 포트코퀴틀람의 코퀴틀람 강가 숲 인근의 2층 주택이 그의 집이다. 밤에는 2층, 아내가 머무는 방에서 함께 밤을 보내고 낮에는 존의 침실이 있는 1층 그의 서재에서 내 시간을 보낸다. 그러니 내 시간의 많은 부분이 존과 함께이거나 존의 인근이다.

이런 사정으로 절로 서로의 일과에 익숙해졌다. 존의 하루는 거의 일정하다. 아침에 여유롭게 기상하면 고양이 벨라와 함께 2층으로 가서 짙은 커피 한 잔으로 정신을 깨운다.
예측 가능한 일상 존과 함께 생활하면서 은퇴 생활에서 새로운 일상을 설정하고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 심리적 안정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예측 가능한 일상 존과 함께 생활하면서 은퇴 생활에서 새로운 일상을 설정하고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 심리적 안정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안수

2층 그의 자리는 정원과 길 너머의 초등학교가 내려 보이는 큰 통창가이다. 그곳에서 두어 시간 음악을 듣는다. 때때로 수학 문제를 풀거나 영국의 대학 동창과 통화를 한 뒤 브런치를 한다. 브런치는 스스로 만든다. 오후에는 정원 일을 하거나 데크를 보수하기도 한다. 그가 다시 1층 서재로 들어오면 정확히 오후 4시다.

"오후의 티타임 없이 영국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요."

그가 홍차를 즐기는 것은 종교적 신념처럼 굳건한 것이다. 티백 몇 개를 넣어 5분 정도 우린다. 짙은 브라운 색이 되면 우유와 꿀을 넣어 책상에 앉는다. 사뭇 엄숙한 표정으로 맥비티(McVitie's) 다이제스티브 비스킷과 함께 차 시간을 엄수하는 것을 보면 이 티타임을 위해 하루의 다른 시간을 사는 듯싶을 정도이다. 벨라는 참치살을 즐기는 시간이다.

티타임을 끝내면 오수 시간이다. 잠에서 깨면 쓰레기 분리 등 집안일을 한 뒤 부인이 준비해 주는 저녁을 먹고 수영센터로 간다. 수영뿐만 아니라 헬스와 사우나 그리고 이웃들과 대화로 문을 닫는 시간인 밤 11시까지 3시간 정도를 할애한다. 귀가하면 코코아 음료 한 잔으로 하루를 정리한다.

긴 은퇴의 시간을 개인의 취향과 형편에 맞게 구성해 기력의 완급을 조절하면서 자존이 가능한 건강한 삶을 이어가는 것은 7년쯤 뒤 정주의 시간으로 돌아갈 내게도 중요한 과제이므로 존은 내게 본이 된다. 79세의 존이 잔병치레 없이 건강한 삶을 이어가는 것을 보면 특화된 일상을 지속하는 것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소크라테스식 질문법

존의 영역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내게 가장 즐거운 것은 존과의 대화이다. 영국에서 태어나 교육받고 스페인, 브라질, 미국 등에서 일하고 캐나다에서 노년의 삶을 살고 있는 존과의 대화는 내게 경책이 되곤 한다.

길 건너 초등학교 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아이들이 웃는 소리, 놀이를 하면서 내는 재잘거리는 소리는 나를 얼마나 행복하게 하는지..."

아이들의 소리는 아침 음악감상 시간을 풍부하게 하는 천국의 합창으로 여긴다.

시애틀의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시작해 '워싱턴 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교수로 은퇴하기까지 그의 삶에서 가장 오래 한 일이 가르치는 일이었던 만큼 좋은 선생이 되는 법을 알고 있을 것 같았다.
"오후의 티타임 없이 영국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요." 그가 정시에 홍차를 즐기는 것은 종교적 신념처럼 굳건한 것이다.
▲"오후의 티타임 없이 영국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요." 그가 정시에 홍차를 즐기는 것은 종교적 신념처럼 굳건한 것이다. 이안수

-이즘 더욱 교사들이 학생들을 버거워하고 있습니다. 좋은 선생이 되는 비결이 있을까요?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질문은 학생이 하는 것이라는 상식과는 다르군요?
"선생이 질문을 하는 것으로 학생은 진실을 스스로 찾아갈 수 있습니다. 선생이 그것을 줄 수도 없을 뿐더러 그래서도 안됩니다. 선생이 아니라 학생이 스스로 그것을 발견해 내도록 하는 것입니다. 학생 스스로가 내면에서 깨닫고 찾아내는 것이 진정한 이해입니다."

-가르치는 것이란 "알겠어요. 알아냈어요!"라는 말이 학생에게서 나오게 하는 것이군요?
"그거예요. 선생이 자신의 지식을 주입한다고 해서 학생 것이 되지 않아요. 학생의 내면에서 그것이 나오도록 해야 해요. 그것을 소크라테스식 방법(Socratic method)이라고 합니다.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고 답을 찾도록 유도하는 대화법은 소크라테스뿐만 아니라 플라톤도 같은 교육 방법을 공유했습니다. '당혹스럽게 만드는 질문(Puzzling questions)이 소크라테스식 질문법(Socratic questioning)의 핵심입니다."

- 자신의 사고를 발전시키도록 돕는 역할인 것이죠?
"그래, 있잖아, 그거 생각 못 해봤어, 아, 그거 흥미롭네, 음, 한번 생각해 볼게...라고 생각을 부추기는 거죠. 암기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도록 해야 해요. 이해하면 외울 필요가 없거든요."

질문을 해주세요. 나는 질문을 좋아해요

- 동양에서 교육받은 저는 선생님을 대화의 상대로가 아니라 공경의 대상으로 여겨온 때를 살았습니다.
"제가 강의실에서 만난 학생들은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학생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대체로 질문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질문을 해주세요. 나는 질문을 좋아해요. 여러분이 질문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라서요'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주로 침묵을 택했습니다. 해서 나의 거듭된 이런 요청도 크게 효과를 보지는 못했습니다."

- 문화란 참 바뀌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저도 거의 교실 한 벽 전체를 차지하는 큰 칠판 가득한 선생님의 판서를 받아 적고 다음날은 그것을 외웠는지 회초리를 든 선생님의 확인을 받곤 했었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저는 외우는 것이 공부라는 정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큰 문제이고 좋지 않은 일이에요. 또한 동아시아 학생들이 '이해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실례라고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은퇴교수, 존 바우처 그는 선생은 질문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진정한 이해는 학생 스스로가 내면에서 깨닫는 것에서 이루어지므로 선생이 질문을 하는 것으로 학생은 진실을 스스로 찾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은퇴교수, 존 바우처 그는 선생은 질문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진정한 이해는 학생 스스로가 내면에서 깨닫는 것에서 이루어지므로 선생이 질문을 하는 것으로 학생은 진실을 스스로 찾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안수

- 유교 문화권에서 어른에게 질문이나 반론을 제기하는 것을 '말대답'으로 간주해 예의 바른 행위가 아닌 것으로 여겨왔던 때가 있었습니다. 영어권 대화에서는 자주 '그거 좋은 질문이야 That's a good question'이라고 말하곤 하더라고요.
"그것은 새로운 관점에 대해 질문했다는 의미보다 '나는 그 질문에 대해 답을 모른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좋습니다."

- 최근 존이 질문하고 싶은 것이 있나요?
"미국에서 교육 연금을 받고 있는데 워싱턴 주 올림피아에서 보낸 그 증서가 든 우편물을 받았습니다. 수령지인 이 집 주소가 정확히 적혀있는데 미국에서 발송한 우편물이 한 달 3일 만인 오늘 도착했어요. 뒤에 찍힌 우편물 소인 이력을 보니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로 갔다가 이곳으로 온 거예요.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왜 이 우편물이 이슬라마바드로 갔느냐?'"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존이 서재로 내려왔다. 플라스틱 카드를 꺼냈다.

"이것은 실물이 아니죠. 그냥 약속일뿐이에요. 지금 이것으로 실물을 사서 올 겁니다."

자전거를 가지고 도로로 나섰다.

"자동차가 더 편하지 않나요?"
"자전거보다 자동차를 타는 일이 더 우둔한 일이에요. 아직 내게는..."

자전거를 타고 슈퍼마켓으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가 돌아오면 던질 또 다른 질문이 생각났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모티프원의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은퇴생활 #교수법 #밴쿠버 #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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