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재우 대표가 서울 지도로 만든 비치타월을 들고 서있다
설재우 제공
여섯 달 만에 받아 든 지도는 그의 기대를 훨씬 뛰어넘었다.
"서촌에 오래 산 사람들만이 아는 정보들이 아주 세밀하게 담겨 있어서 놀랐어요. 외부인과 내부인의 시각이 균형감 있게 담길 수 있도록 저도 최선을 다했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서로 믿음도 쌓였죠."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서울 지도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번엔 제작비를 마련하려고 전세금을 뺐다. 그리고 2024년 8월, 작업에 들어간 지 1년 만인 지난 9월 1일 마침내 서울 지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제니의 지도를 본 게 2014년이었으니 무려 11년 만에 그의 오랜 바람이 이뤄진 셈이다.
"벅찼죠.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뻤어요. 저한테도 그렇지만 제니에게도 꽤 자랑스러운 경력으로 남을 거라고 생각해요.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나라와 서울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으니까요."
제니 스팍스는 서울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으로 부암동 환기미술관을 꼽았다고 한다. 한국에 와 본 적도 없는 그가 우리에게도 낯선 공간을 꼽은 걸 보면 그가 얼마나 열심히, 또 깊이 있게 서울을 조사했는지 알 수 있다.
서촌과 사랑에 빠진 청년, 설재우
설 대표가 이런 엉뚱하면서도 무모해 보이는 일을 벌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서촌을 떠나지 않으려고 무지 애를 써왔다"고 말하는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부터 서촌의 빛바랜 자원과 이야기를 찾아내고 기록하는 일을 꾸준히 해왔다. 서른 살 무렵이던 2012년엔 <서촌방향>이란 책을 내기도 했는데, 그때만 해도 도시가 아닌 동네를 다룬 책이 처음이라 책을 낸 출판사조차 막상 이 책을 어느 장르로 분류해야 할지 한참 고민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동네를 떠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봤어요. 서촌은 섬 같은 동네였죠. 청와대나 경복궁이 가까이에 있어 개발이 막혀있다 보니 어른들은 떠날 궁리만 했어요. 그렇게 친구들도 다 동네를 떠나갔어요."

▲ 설재우 대표가 설재우 대표가 2012년에 낸 책 <서촌방향>. 동네를 소개한 첫 책으로 꼽힌다.
설재우 제공
책이 나온 뒤로 출판사에서 독자들과의 '동네 여행'을 제안했고, 반응이 좋아 지금까지 10년 넘게 '서촌 투어'를 해오고 있다. 동네에 남아있던 마지막 오락실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듣고는 크라우드펀딩으로 돈을 모아 오락실을 인수한 일도 있었는데, 그 덕에 지금은 서촌 '옥인오락실'을 비롯해 서울 곳곳에 다섯 곳의 옛날 오락실을 운영하고 있다. 그나마 '오락실 살리기'는 생각지도 못했던 수익을 안겨줬지만, 따지고 보면 지금껏 그가 해온 일 가운데 '돈 되는 일'은 별로 없었다. '벽수산장 프로젝트'도 그랬다.

▲ 크라우드펀딩으로 되살린 서촌 옥인오락실의 모습
설재우 제공
서촌에서도 고급 주택들이 자리한, '엉컹크길'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옥인동47번지' 주변으로, 대법관에 이어 국무총리를 지냈던 이회창 전 총리도 이곳에 살았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끼리만 '엉컹크길'이라 불러왔는데, 정작 왜 '엉컹크'란 이름이 붙었는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수소문 끝에 설 대표는 이곳에 한때 UNCURK(United Nations Commission for the Unification and Rehabilitation of Korea, UN한국통일부흥회)가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그러니까 '언커크'가 언젠가부터 '엉컹크'로 불리게 되었던 것.
더 흥미로운 건 언커크 본부로 쓰던 건물이 일제강점기 대표적 친일파로 꼽히는 윤덕영이 지은 궁전 같은 별장이었다는 사실이다. 어렵게 찾아낸 흑백사진엔 마치 유럽의 옛 성을 떠올리게 하는 웅장한 건물이 산 중턱에 우뚝 서 있었다. 윤덕영은 일본 국왕에게서 받은 은사금으로 무려 7만㎡에 달하는 땅 위에 3년에 걸쳐 자신만의 성을 쌓았고, '벽수산장'이란 그럴듯한 이름도 붙였다. 벽수산장은 해방 뒤 언커크 본부로 쓰이다 1966년 화재로 2,3층이 불탄 데 이어 1973년 도로정비사업으로 사라졌다.
"문득 벽수산장 모형이라도 서촌에 하나쯤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엉컹크길'이라는 이름에 겨우 흔적이 남아있긴 하지만, 다시 십 수 년만 흘러도 그 흐릿한 흔적마저 사라져 버릴 테니까요. 그래서 이번에도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을 해보기로 마음먹었죠."

▲ 벽수산장 사진과 벽수산장을 복원한 모형
설재우 제공
그는 무턱대고 동네에 있는 건축사무소들을 찾아 다녔지만 흑백사진 한 장 말고는 제대로 된 자료조차 없는 상황에서 선뜻 나설 리가 없었다. 이번엔 다시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사람을 모으기로 했고, 다행히 건축학도였던 황대영, 백영권 두 사람이 함께 하기로 했다. 그렇게 '벽수산장 프로젝트'가 첫 삽을 떴다.
"돌이켜보면 자료 조사를 모으고 제작하는 모든 과정이 말 그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나가는 작업이었어요. 온갖 논문과 자료를 긁어모아서 조금씩 도면을 만들어 나갔고, 상상력을 더해 모형을 하나하나 쌓아 올렸어요. 몇 번 부서지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꼬박 다섯 달이 걸려 마침내 벽수산장 모형이 완성되었다. 그가 수성동계곡 입구에서 운영하는 카페 '서촌온당'에 가면 세상 하나뿐인 벽수산장 모형을 볼 수 있다.

▲ 설재우 대표가 10년 넘게 진행해오고 있는 '서촌 투어'
설재우 제공
그는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돈이 되나 안 되나를 생각하기보다는 그 일이 가진 의미와 재미를 더 깊게 생각한다"고 했다.
"지역에서 활동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거나 수입이 뒷받침 돼야 한다고 생각들을 해요. 물론 돈은 필요하죠. 하지만 제가 오랫동안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이런 '덕질'이 제 취미생활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다 보니 취미생활에 돈을 쓰는 게 아깝지 않았고, 꼭 금전적 가치로 바꿔서 일의 의미를 따지진 않을 수 있었죠."
그는 "자기 동네를 사랑하는 일은 건 결국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라고도 했다.
"저는 꼭 서촌이 아니었어도, 다른 어느 동네에서 태어났어도 지금과 비슷한 활동을 했을 거라고 믿어요. 저는 제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제가 살아온 동네의 이야기와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거든요. 그러니까 어느 지역에서 살아왔는가보다 나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지금의 저를 만들어왔다고 할 수 있죠."
<우리가 도시를 바꿀 수 있을까?>를 쓴 최성용 작가는 책에서 "'북촌이 왜 살아남았나'라는 질문에 답할 때는 '그것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라는 답이 먼저 나와야 한다"고 했다. 트렌드 따위를 섣불리 앞세우기보다 사람들의 노력을 먼저 봐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누군가 '서촌이 왜 살아남았나'라고 묻는다면 '그것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노력...'이란 대답 뒤에 '특히 설재우가 한 일을 절대 빼놓을 수 없다'는 말을 꼭 덧붙여야 한다.
설 대표는 어렵게 만든 지도들을 곧 크라우드펀딩을 비롯한 여러 방식으로 판매할 예정이라고 한다. 동네를 지키려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11년 만에 빛을 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촌과 서울 지도가 부디 많은 이들에게 전해져 값지게 쓰이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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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옆 앞 '북카페 기찻길옆골목책방'과 '문화살롱 이리삼남극장' 운영자. 최근 여행사 '한레일트래블'도 창업했다. 서울/수도권에서만 살다 2022년 전북 익산으로 이사해 지방 소멸의 해법을 찾고 있다. <로컬 혁명>, <로컬꽃이 피었습니다>, <슬기로운 뉴 로컬 생활>,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 <나는 시민기자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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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디자이너가 손으로 그린 서촌 지도, 이런 숨은 뜻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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