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전 아삭한 배추전과 부추전
김지호
명절 음식은 꼬박 이틀을 부엌에서 쪼그리고 앉아 채소를 다듬고 꼬치를 만들고 만두소와 만두피를 만들어 만두를 빚는다. 거기에 색색의 전을 부쳐야 한다. 어머님은 음식을 만드실 때 친척분들 한분 한분 누가 뭘 좋아하고 잘 먹는지 기억하시면서 즐겁게 요리하신다. 맛있게 먹는 모습에 흐뭇해하시고 돌아가는 길에 꼭 음식을 챙겨 보내신다.
언제부턴가 음식 포장을 하실 때면 "워낙 식혜를 좋아해서"라며 멋쩍어하셨다. 당신이 힘들게 만드시는 동안 옆에서 덩달아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쪼그려 앉아 있던, 며느리에게 미안하셔서 그러셨던 걸 알고 있다.
여전히 혼자 명절 음식 준비는 자신 없지만, 척하면 척 어머님이 뭘 원하시는지 알아서 척척 챙겨드리는 완벽한 보조 역할은 자신 있다. 요리는 못하지만, 어머님이 만드신 명절 음식을 제일 맛있게 먹는 며느리다.
명절 기름 냄새, 대신 여행을 떠나요!
요즘은 집에서 차례상을 차리는 대신 산소를 찾아 성묘 후 부모님 모시고 여행길에 오른다.
처음 명절에 여행 얘기를 꺼냈을 때는 부모님 반대가 심하셨다. 조상님 모시는 날 무슨 여행이냐며 아버님은 크게 역정을 내셨다. 남편은 모두가 행복한 명절을 보내고 싶다며, 매년 명절이면 같은 화두를 꺼내어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오랜만에 가족, 친지들 만나 덕담 나누고 흥겹게 보내는 삼시세끼는 누군가의 희생과 배려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했다. 그 주인공은 어머니와 며느리 몫이었다. 종일 음식을 하고 차례상을 차리고 설거지와 동시에 다시 술상이 차려지고, 저녁을 준비해야 했다.
명절이면 최소 이틀에서 삼 일은 이런 반복적인 행위로 인해 명절 후유증이 생기고 다시 일상으로의 복귀는 쉽지 않았다. 시댁과 친정을 오가며 소모되는 체력 또한 시간이 갈수록 버거웠다.
남편의 끈질긴 설득에 아버님이 백기를 드셨고, 2022년 9월 추석에 처음으로 신안 보라섬으로 가족 여행을 떠났다. 어머님도 모처럼 노동 없는 명절을 즐기셨다.

▲부모님과 함께 떠난 명절 여행 첫 여행은 신안 보라섬 (보라색 옷을 입고 떠난 여행)
김지호
그 여행이 계기가 되어 이제는 명절이면 녹진한 기름 향기 대신 홀가분한 마음으로 여행길에 오른다. 온몸이 욱신거렸던 명절이 부모님과 돈독해지는 추억 여행이 되기까지 쉽지 않았지만, 불량한 장손, 장남 며느리는 남편에게 시댁 가자고 조르는 철없는 며느리가 되었다.

▲명절 가족여행 기름 냄새 대신 여행을 즐기는 어머니와 며느리
김지호
며느리는 딸이 될 수 없고, 시부모님은 친정 부모님이 될 수 없다. 그러기에 너무 잘하려 애쓰지 않고 너무 못나게 굴지 않는다면, 부모 자식의 도리에 얽매이지 않고 조금은 편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넉살 좋고 똑 부러진 며느리는 아니지만, 아버님 적적하실 때 옆에 앉아 도란도란 술친구 되어 드릴 수 있고, 어머님 푸념 사심 없이 들어 줄 수 있는 나는 장손 며느리다.
'내향인으로 살아남기'는 40대 내향인 도시 남녀가 쓰는 사는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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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느끼는 세상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20년 차 직장인에서 나로 변해가는 오늘을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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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때마다 "여행 가자"는 남편에게 역정내던 시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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