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딸이 좋아하는 아이돌 응원봉
김지호
대책 없이 맑은 딸의 행동이 종일 조바심 냈던 내 모습과 상반되어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퇴근하고 조용히 대화를 나눠볼까, 맛있는 저녁을 먹으면서 데이트할까? 편지를 쓸까? 이런저런 걱정을 안고 퇴근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딸의 모습에 그저 헛웃음이 나왔다.
불까지 꺼놓고 뭐하냐고 타박하려다 조용히 거실 불을 켰더니 "아, 불 꺼줘" 하며 나를 응시한다. 곱게 화장하고 있는 딸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다. 입가에 퍼진 미소를 놓칠 리 없는 딸은 곧장 하고 싶은 말을 이어간다.
"엄마 나 마라탕 시켜줘. 매운 국물이 땡겨, 아니다 매운 닭발 먹을까? 엄마도 같이 먹자, 오늘 우리 아들 컴백했잖아."
"내가 모르는 내 아들이 있었냐?"
좋아하는 아이돌 컴백 때문인지 마라탕을 시켜줘서 신이 났는지 딸은 식탁에 앉아 요즘 학교생활과 친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엄마, 내가 하고 싶은 말도 많고 그 친구한테는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걸 있는 그대로 다 말하면 상처받을 것 같고, 또 내가 사회성이 떨어져 보일 것 같아서 꼭 필요한 말만 하고 있어' 한다.
"그래서 엄마한테도 꼭 필요한 말만 하는 거야"?
"에이 그건 아니지, 근데 엄마는 나를 이해하니까, 엄마랑 나는 성격이 정말 다른데 잘 맞아."
"너 내 딸이거든."

▲ 사춘기 딸의 행복한 시간
김지호
우리에게 필요한 건 기다림
자기 입으로 99% 아빠를 닮았다는 딸은 잘 안긴다. 키도 나보다 훨씬 크지만, 여전히 내 품을 파고들고 어리광을 부린다. 엄마는 단순해서 좋다는 칭찬 같지 않은 말을 종종 하지만, 요즘 부쩍 좋아하는 책을 읽고 좋아하는 문구를 따라 쓴다. 빼곡하고 정갈하게 정리된 노트를 자랑하며 안방 침대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졌다.
엄마랑 같이 필사하자고 하면, "싫어"로 응수했던 딸이 어느날부터 필사를 시작했다. 좋은 문구에 색깔을 입히고 나란히 누워 이야기를 나눈다. 같이 하자고 다그쳤을 때는 저만치 멀어져 남처럼 행동하더니, "안 먹어", "상관없어" 그 말들은 같이하고 싶지만 어색해서 방법을 모르겠어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의 의미를 담고 있음을 이제는 안다.
감정을 숨기기보다 건강하게 표현하는 딸이 고맙다.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딸의 외향적인 모습이 버거웠다가도 어느 순간 흐뭇하다. 갱년기 엄마도 사춘기 딸도 처음 겪어보는 감정이라 혼란스럽지만, 함께하면서 답을 찾아가는 감정 친구가 되어가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내향적인 엄마의 갱년기와 외향적인 사춘기 딸의 감정 표현이 묘하게 닮아가고 있다.
'내향인으로 살아남기'는 40대 내향인 도시 남녀가 쓰는 사는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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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조금씩 친해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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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차 직장인에서 나로 변해가는 오늘을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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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 사춘기 딸과 48세 갱년기 엄마의 요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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