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터골 위령제2007년 분터골에서 봉행한 청주청원 합동위령제
박만순
충북대책위는 준비위원회 단계부터 피해신고센터를 운영했다. 청주와 괴산·단양·영동 등지에서 유족들의 문의 전화가 쇄도했다. 괴산군 사리면의 윤갑진·이제관은 그해 유족회를 만들어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애쓰고 있었다. 사리면 유족회 모임에 정진동과 이효신이 참석했다.
충북대책위의 공동대표 중 일인이었던 곽태영씨는 아버지가 보은군 내북면 아곡리에서 죽임을 당했다고 했다. 아버지 이야기를 할 때마다 눈시울을 붉히던 그는 아버지가 끌려가던 날을 상세히 증언했다. 그러다가 청주시 사천동 주민들이 피해신고 센터가 있던 내덕동 성당에 발길을 했다. 그들은 자신의 아버지와 형이 아곡리에서 죽임을 당했다고 했다. 이로써 청주 보도연맹원들이 보은군까지 끌려가서 학살당했음이 확인됐다.
충북대책위원회 주최로 '유족 증언대회'가 2002년 10월 10일 충북도청에서 열렸다. 단양군 영춘면에서 온 이가 마이크를 들었다. "1951년 봄, 동네 개들이 신이 났어요. 봄비가 와서 그랬겠지만 오랜만에 먹을거리(?)가 많아서였어요. 그런데 그 먹을거리라는 게 곡계굴에서 죽은 이들의 두개골과 팔, 다리였어요." KBS 드라마 <전설의 고향>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눈물 콧물 흘리는 증언자 앞에서 참석자들은 가슴이 먹먹했다.
2002년부터 거의 매년 유족증언대회와 합동위령제, 피해실태 조사 작업이 이뤄졌다. 또한 유족들과 청소년,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을 대상으로 충북도내 학살지 탐방을 진행했다. 특히 2003년도에는 3차례의 답사를 진행하면서 6개 장소에 학살지 안내표지판을 설치했다.
충북대책위는 전국의 유족회 및 시민사회단체와 공동으로 '과거사법' 제정을 위한 운동을 전개했다. 과거사법 제정을 위한 서울역 캠페인에 참여하고, 청주 시내 성안길에서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충북을 포함한 전국의 유족과 시민사회단체, 학계의 노력으로 2005년 5월 31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 제정됐다. 그해 12월 1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출범했다.
2000개 마을을 다니다

▲증언영동군 용산면 사건을 증언하는 노인과 기록하는 필자
충북역사문화연대
2005년 진실화해위원회가 출범하면서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민간차원의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운동이 중지됐다. 전국조직이었던 범국민위원회도 자신의 고유영역을 찾지 못해 이후 활동이 지지부진해졌다.
하지만 나는 국가차원의 진실규명 운동과 민간차원의 실태조사가 병행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시·군별 피해자 실태조사사업'에 참여해, 충북 청원군과 영동군 마을별 전수조사에 참여했다. 또한 사건이 있다는 제보만 있으면 영동·보은·충주·단양 그 어디에라도 달려갔다. 그렇게 다닌 곳이 충북 지역만 약 2000개 자연마을이었다.
그중 일부 면은 발이 닳도록 다닌 곳도 있다. 피해 규모가 크기도 해서였지만 증언자가 계속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구전으로 내려오던 피해자 수치에 근접해 조사한 곳도 있다. 청원군 강내면과 충주시 살미면의 경우가 그렇다. 강내면은 67명 중 63명을, 살미면은 73명 중 65명을 찾아냈다.
2002년부터 시작한 일이 2025년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2018년도부터는 대전 산내 골령골을 비롯해 전국을 다니며 증언을 수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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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만 마을 2000개 방문... 23년째 내가 이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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