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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로 뺨 때리고, 보안사가 사표 강요... '끔찍한' 직장

[정진동 평전] 주식회사 한우 노동자 탄압 그리고 깨어난 노동자들

등록 2025.02.09 17:13수정 2025.02.10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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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동을 아십니까. 농촌선교(1958~1971)에서 도시산업선교(1971~2004) 활동까지, 정진동은 충북 지역 민주화운동의 어른이었습니다. 정진동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그가 꿈꿨던 공동체 사회, 민주주의와 인권의 소중함, 민중해방의 사상을 살펴봅니다.[편집자말]
'짝짝'하는 소리에 뒤를 돌아본 김태평은 기겁하는 줄 알았다. 반장이 신발 밑창으로 조아무개 뺨을 때리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태평을 더욱 당혹스럽게 한 것은 아무도 반장을 말리려 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가 "반장님 왜 이러세요"하자, "너는 뭐야 이 XX야"라는 악담이 되돌아올 뿐이었다. 신입사원인 그로서는 더이상 뭐라 할 수 없었다.

신발 밑창으로 뺨을 때리다

arwanod on Unsplash

1985년 2월 22일 주식회사 '한우'에 입사한 김태평은 입사 초기에 황당한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다. 작업속도가 늦다며, 불량품이 나왔다며, 출근이 늦다는 등의 이유로 생산과장이 신발 밑창과 빗자루로 노동자의 뺨과 몸을 때리는 것이 다반사였다.

한 여성은 생산과장의 발길질에 엉덩이가 차여 2~3일 동안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폭언과 폭행은 1980년대 중반까지 (주)한우의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근무시간 내에 그날의 생산량을 다 채우지 못하면 2~3시간 초과근무를 해야 했다. 잔업수당 없이 말이다.

1일 12시간 교대였지만 12시간 근무하는 날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초과근무가 밥 먹듯이 행해졌다. 30분 일찍 출근하는 것은 거의 불문율처럼 되었다. 출근 시간 수십 분 전에 현장에 있지 않으면 관리자들은 "집에 가서 애나 봐!"라며 폭언을 일삼았다.

휴식 시간이라고는 겨우 10분 주어졌는데, 국수가 나왔다. 국수를 10분 동안 먹어야 하니, 후루룩 들이켜야 했다.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기면 국수 그릇을 들고 다니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일을 못 한다는 트집을 잡아 감봉시키고, 물건이 없어지면 도둑 취급을 했다. 작업 중 산재를 당해 2~3일 출근하지 못하는 노동자와 몸이 아파 하루만 쉬게 해달라는 노동자에게 "먹고 살고 싶으면 출근해"라고 하거나 함부로 해고시켰다. 도란스(트랜스=변압기)가 고장 나면 "네 돈으로 고쳐 와"라며 억지를 부렸다.

거꾸로 관리자의 맘에 든 노동자에게는 180도 다른 처우를 했다. 퇴직한 지 며칠 지난 노동자에게 병가처리를 해주고 다시 취업시켰다. 노동자들은 월차수당과 생리 수당이라는 말조차 들어보지 못했다. 2~3평의 사글세 방에서 생활하는 노동자들에게는 공장이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이러한 노동환경으로 인해 1971년 4월 5일 설립한 (주)한우는 1년에 100여 명이나 이직을 했다.


김태평은 입사한 지 한 달 뒤 관리자에게 여성들의 생리수당을 지급할 것을 건의했다. 관리자는 햇병아리가 까분다는 조롱조의 눈빛을 하며, 김태평을 해고했다. 김태평은 그날 신탄진에 있던 청주도시산업선교회에서 조순형에게 조언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해고당하면 공장 노동환경이 개선되냐? 잘못했다고 하고 다시 취업해!" 조순형의 말을 듣고 나서야 김태평은 자신이 성급했다고 판단했다. 조순형의 권고대로 김태평이 (주)한우에 다시 입사한 것은 1985년 4월이었다.

서로 공돌이·공순이로 부르다가... '노동자'로 깨어나다

(주)한우 노동자들이 그해 4월 말부터 하나둘 신탄진 청주산선에 놀러 왔다. 조순형은 그들에게 음식을 사주기도 했다. 5월에는 소풍을 갔다. 신탄진 강가 모래밭에서 기타를 치며 종일 '깔깔깔' 웃으며 즐겁게 보냈다. 그렇게 친해지자, 조순형의 "공부 좀 해볼까?"라는 제안에 노동자들이 선뜻 고개를 끄덕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근로기준법과 노동법, 노동가요를 배우고 '실질임금이란 무엇인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 '노동자의 사회적 역할과 자세' 등의 내용을 함께 공부했다. 1일 12시간 맞교대였기에 오전과 오후에 퇴근 노동자 5~6명을 대상으로 교육이 진행됐다.

노동자들의 의식은 먹을 빨아들이는 습자지와 같았다. 교육은 주로 조순형이 맡았지만 청원군 미원면 옥화대에서 '하나의 집'을 운영하고 있던 조지송 목사와 청주도시산업선교회 정진동 목사가 특강을 해주기도 했다.

교육을 통해 노동자의 권리의식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무엇보다도 노동자들의 자존감이 높아졌다. 이전까지는 공돌이·공순이로 서로를 부르던 것이 '노동자도 인간이다'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동료들이 관리자들에게 신발과 싸리 빗자루로 맞아도 '나 몰라라' 했던 노동자들이 함께 분노했다.

생산량으로 인해 무급 잔업이 빈번할 때는 서로를 불신하고 '저 XX 때문에 우리도 퇴근이 늦는다'라고 원망하는 마음을 품었다면, 교육을 통해 회사의 횡포가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노동자들의 관계는 현격히 변화했다. 서로를 감시하고 미워하던 마음에서 따듯한 동지애로 바뀐 것이다. 신억균은 조순형에게 "우리끼리 분위기 좋아진 것만도 너무 좋아요"라며 울먹였다. 동료 의식을 통해 회사 측의 성과급제 도입을 물리쳤다.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지다

수련회 하나의 집에서 수련회를 하는 한마음회
수련회하나의 집에서 수련회를 하는 한마음회청주도시산업선교회

현장 분위기가 좋아지면서 생산능률이 향상됐다. 노동자들 사이에서 '노동자의 권리는 단결된 힘만으로 가능하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50여 명이 모여 친목 모임 '한마음회'를 결성했다. 강장식이 회장을 맡았고 김태평이 총무를 맡았다. 현장의 애로사항을 수렴하기 위해 부서마다 운영위원을 뒀다.

'한마음회'는 현장의 노동환경 실태를 조사해 다음 사항을 사측에 건의했다. 관리자의 폭행과 폭언 금지, 환풍기를 설치해달라, 남녀 화장실을 분리시켜라, 생리휴가·월차수당·잔업수당을 지급하라, 잔업과 특근을 노동자 자유의사에 맡겨라 등이었다. 너무나 당연한 요구였지만 사측에서는 '빨갱이들의 선동에 의한 행위'로 간주했다.

회사 노무관리팀에서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핵심 주동자와 배후조종자를 조사했다. 회사 내의 친목 모임 '한마음회'의 실체를 파악하고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 사측이 작성한 블랙리스트 장부 중 김태평에 관한 사항은 다음과 같았다.

김태평. 1957년생으로 본적은 충남 금산군 진산면 행정리, 주소는 충남 대덕군 신탄진읍 석봉리, 한성고등학교 졸업(1977년), 1985년 2월 22일 (주)한우 입사, 그리고 가족관계가 기록되어 있다. <한마음회> 회원 전체가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보안사가 나서다

한마음회 (주)한우 민주노조운동을 추진했던 한마음회
한마음회(주)한우 민주노조운동을 추진했던 한마음회청주도시산업선교회

문제는 사측의 노동 감시에만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보안사(국군보안사령부, 현재 국군방첩사령부)가 전면에 나선 것이다. 원래 보안사는 대한민국의 군내 방첩 업무 및 군인과 군사기밀에 대한 보안 감시를 하는 국방부 직할부대이다. 그런데 보안사는 1990년대 초반까지 국내 민간인 사찰을 했으며, 이를 통해 정치, 노동 문제에 깊숙이 개입했다. 이러한 행태 속에서 (주)한우 노동 문제에도 불법적으로 개입했다.

1986년 3월 20일 야간에 출근한 김태평에게 검은 그림자가 다가왔다. "김태평씨 잠시 같이 갑시다." 누구인지 물어봐도 대답이 없었다. 시내를 빙빙 돌더니 눈가리개를 풀었는데, 그곳은 대전 보안사였다.

김태평에겐 예비군복이 입혀졌다. "한마음회 주동자가 너냐?" "도시산업선교회는 언제부터 나갔냐?" "근로기준법은 그냥 법일 뿐 회사의 사칙이 우선이다."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구타와 조사가 진행됐다. 이어서 강장식, 권태보, 이철훈, 방기문이 끌려왔다. 보안사의 핵심 요구는 '한마음회 해체'였다.

3월 24일 대전 보안사와 회사 관리자들이 보는 앞에서 '한마음회'는 해체됐다. 회사는 처음에 '한마음회'를 해체하면 아무일도 없는 것으로 해주겠다는 약속을 뒤집었다. 사표를 종용했다. 김태평을 위시로 몇 명이 거부하자 보안사가 다시 한번 나섰다. 4월 2일 보안사에 끌려간 김태평은 본격적인 고문을 당했다.

보안사 요원들은 김태평의 무릎 사이에 각목을 끼워 짓밟았다. 천장에 거꾸로 매달아 몽둥이찜질을 가했다. 밤새 내내 고문이 가해졌다. 고문 사실을 세상에 알리면 복수하겠다는 보안사의 협박이 뒤따랐다. 김태평은 고문에 못 이겨 사표를 썼다.

해고된 김태평은 보광금속에 입사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청주산선의 활동 입지는 더욱 위축됐다. 신탄진에서도 산업선교회 간판을 달지 못했지만 1986년 4월 대전 와동으로, 1987년 4월 대전역 삼성동으로 이사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86년 '한마음회'가 해체된 후에는 청주산선 사무실에서 모일 수조차 없었다. 그렇게 해서 조순형이 짜낸 묘안이 시내에서 만나는 것이었다. 칼국수 집에서 만나고 이후에는 노동자 자취방에서 모임을 했다.

서너 살 아이들도 투쟁

가족투쟁 한우 정문에서 북을 치며 농성하는 가족들. 아이도 참여했다.
가족투쟁한우 정문에서 북을 치며 농성하는 가족들. 아이도 참여했다.청주도시산업선교회

1987년 6월 항쟁은 오랜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노동자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6월 민주화운동을 경험한 노동자는 그해 7~9월 노동자 대투쟁에 참여한다. (주)한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8월 12일 노동자들은 1일 8시간 노동제, 임금인상, 퇴직금 누진제 실시, 상여금 차등제를 폐지하고 연간 400% 지급, 작업 환경·식사 개선, 블랙리스트 철폐와 해고노동자 복직을 주장하며 농성에 돌입했다. 농성 나흘 째인 8월 15일 사측은 관리자와 구사대를 동원해 농성자들을 해산시키고 18명(1공장 5명, 2공장 13명)의 노동자를 해고했다.

8월 17일부터 노동자와 가족들은 회사 정문에 텐트를 치고 농성에 들어갔다. 회사 정문은 쇠로 된 체인으로 둘둘 감아 출입할 수조차 없었다. 사측은 다시 농성단에 폭력을 저질렀다. 8월 19일 3~8세의 어린이와 여성들의 목을 조르고 머리채를 잡고 끌고 갔다. 농성단 해체에는 대전경찰서 대공계도 참여했다. 8월 15일에는 부산의 납품업체 트럭을 동원해 아이들이 자고 있는 천막을 "밀어붙이겠다"고 협박했다.

대전경찰서와 관내 파출소는 순식간에 난장판이 됐다. 3~4세 아이들은 대공과와 정보과 책상 위를 뛰어다니고, 심지어 책상 위에 오줌을 싸기도 했다.

<사노라면> 노래 한 곡 때문에 벌어진 일

밀반출 부산의 화물차를 동원해 한우 생산품(신발 밑창)을 밀반출 하려는 모습. 노동자들이 화물차 기사와 몸싸움하고 있다.
밀반출부산의 화물차를 동원해 한우 생산품(신발 밑창)을 밀반출 하려는 모습. 노동자들이 화물차 기사와 몸싸움하고 있다.청주도시산업선교회

(주)한우 2공장에서 근무하던 민경준(1963년생)은 졸지 않기 위해서 <나는 행복한 사람> <보고 싶은 여인>을 불렀다. 작업 도중 노동자들이 노래를 부르는 것은 관행이었다. 심지어 사측은 노동자들의 졸음 방지를 위해 라디오를 크게 틀기도 했다.

그런데 민경준이 당시 금지곡이었던 <사노라면>을 불렀다. 상황은 달라졌다. 사측은 사규 위반이라며 열흘간 출근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민경준은 이에 불복해 매일 출근투쟁을 벌였다. 그런데 회사는 징계 기간이 끝났는데도 원직에 복직시키지 않았다. 민경준은 오랜 기간 원직 복직 투쟁을 벌여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주)한우 투쟁은 1987년 18명의 해고노동자를 남기고 마무리됐다. 투쟁의 상처는 깊었다. 해고노동자와 가족들의 아픔도 아픔이려니와 김태평과 조순형 전도사가 '제3자 개입금지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그렇지만 투쟁이 상처만을 남긴 것은 아니었다. 투쟁에 참여했던 강장식·김태평이 충남노동자협의회 설립에 참여했고, 일부 노동자들은 이후 부평 등지의 노동운동에 관여했다. 투쟁 속에 의식이 성장하고 노동운동이 발전한다는 진실이 (주)한우에서도 발현됐다. 조순형은 1988년 1월 대전 활동을 마무리하고 청주로 돌아왔다.
#국군보안사령부 #한우 #블랙리스트 #한마음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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