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의 탈시설화가 필요하다

[진료실에서 보내는 편지] 요양병원 야간 당직 한의사의 이야기

등록 2025.01.21 10:45수정 2025.01.21 10:45
0
요양병원에서 야간당직의로 일한다는 건 어떻게 의료를 경유해서 이 공간이 사람을 수용하는 시설이 되는지 그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하는 일이었다. 야간당직의는 진료에 대한 책임을 지기보다는 보완적인 역할을 하고, 특히 한방병원이 아닌 이상 한의사인 내가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지는 더욱 제한된다. 그런 영향인지, 나는 그 공간에서 행위자라기보다 주로 목격자 또는 관찰자의 위치에 있다고 느꼈다. 요양병원에서 느낀 점을 나눠보고 싶다.

'시설'로서의 병원

우선, 공간의 구성 자체가 입원한 사람들의 존엄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급성기 병상과는 달리 장기요양 병상은 수년 이상 장기 입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요양병원은 질병의 치료와 관리를 위한 의료적 처치를 하는 공간일 뿐 아니라, 입원한 사람들에게는 일상생활을 하는 거주공간이기도 하다.

의료법 시행규칙에는 요양병원의 시설기준과 요건을 정하고 있지만, 이는 의료적 공간이라는 기준에서 최소한의 규정일 뿐, 거주공간의 성격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물론 입원비가 아주 비싸고 시설이 좋은 고급 요양병원들은 1인실 비중이 높고, 생활공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설비들이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다인실이 기본이고, 커튼이 있어도 관리상의 이유로 대부분 커튼을 열어 놓고 생활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공간도 없다. 외출과 외박도 자유롭지 않다. 환경에 따라 옥상이라도 있으면 바람 쐬러 갈 수라도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실내 공간에 계속 있어야만 한다.

 요양병원에 장기 입원한 환자도 많지만, 생활공간으로서의 고려는 매우 부족하다.
요양병원에 장기 입원한 환자도 많지만, 생활공간으로서의 고려는 매우 부족하다. pixabay

또한, 요양병원은 좋은 돌봄의 공간도 아니다. 다인실에는 간병인이 있지만, 간병인은 1명이 여러 명의 환자를 담당한다. 식사가 어려운 사람들의 식사보조를 하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대소변 체크를 하고, 상태변화가 있을 때 이를 간호사에게 전달하는 등 기본적인 일을 하는 것만으로 간병인의 하루는 다 간다.

요양병원은 인력기준도 종합병원 또는 병원에 비해 느슨하다. 의료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종합병원과 병원은 입원환자 20명당 1인의 의사, 2.5명 당 1인의 간호사를 두도록 되어 있지만, 요양병원은 입원환자 40명당 1인의 의사, 6명 당 1인의 간호사를 두도록 되어 있다. 간병인은 별도의 기준이 없다. 인력 부족은 입원한 사람들의 인권을 적절히 보장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귀결된다.


예를 들면, 입원 초기에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워서 "집에 가고 싶다"고 반복적으로 여러 번 말씀하시거나, 밤에도 주무시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런 경우 병원에 따라서는 그저 '얌전하게 만들기 위해' 정신질환이 없는데도 할로페리돌 등 향정신성의약품을 쉽사리 처방하곤 한다. 이런 순간들을 목격할 때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끼고, 내가 계속 요양병원에서 일을 해도 괜찮은 건지 회의감이 많이 생기곤 한다.

더욱이, 요양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가족, 친구 등 친밀한 사람들과 관계가 단절되고, 외출이나 외박이 제한되며, 병원 내에 활동할 만한 환경이 조성되지 않아서 급속도로 무기력해지시고 상태가 안 좋아지시는 경우도 많다. 이는 WHO가 이야기하는 '활력 있는 노화(Active Aging)'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여전히 요양병원은 수용되어 있다가 죽음을 기다리는 '시설'의 성격이 강하다. 입원하는 사람도, 보호자나 직원들도 모두 입원한 사람이 치료되어 퇴원할 걸 기대하기보다 계시다가 돌아가실 거라 여기니 더욱 무기력해지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여러 회의감으로 인해, 더는 요양병원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실제로 한동안 하지 않다가 지금은 급성기 병원에서 또다시 야간당직의를 하고 있다. 존엄한 삶과 죽음이 보장되지 않는 '시설'로서의 병원은 일하는 사람에게도 입원한 사람에게도 건강한 환경이 아니다.

'시설'로서의 일터

무엇보다도 나에게는 인권침해적인 상황들을 마주할 때의 무력감이 컸다. 입원한 사람들에게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환경은 일하는 사람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특히, 규모가 작고 소수 인력을 갈아서 운영하는 병원은 더하다. 사실 야간당직의는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있다. 근로기준법에서는 연장근로 포함 노동시간이 주 52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야간 당직의 근로시간은 보통 이를 넘는다.

환자들에게 별일이 없으면 잠을 잘 수도 있지만, 언제든 입원한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일어나야 하므로 휴게시간이 아니라 대기시간의 성격을 지닌다. 계약서상에서는 이를 휴게시간으로 두는 곳도 있고 근로시간에 포함하는 경우도 있었다.

모두 민간병원이다 보니 병원장 또는 재단의 방침에 따라 직원들의 노동조건도 천차만별이었다. 한 요양병원에서는 전 직원이 3개월 단위로 계약갱신을 했었는데, 4개월 만에 해고당했다. 그 당시에 의료법에서 요양병원의 경우는 200병상당 당직의 1인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는데, 법이 개정되어서 300병상당 당직의 1인이 있으면 되게 되었다. 그 병원은 200병상~300병상 사이 규모여서, 법 개정과 동시에 해고를 당한 것이다.

처음에는 나를 불러서 위로금으로 얼마를 줄 테니 나가달라고 했고, 2개월 남은 계약기간은 채우겠다고 했더니 다음 날 바로 당직실 모니터를 가져갔다. 당시 한의사 커뮤니티에서 요양병원들 중 직원을 내보내기 위한 압박 용도로 공간을 열악한 곳으로 바꾸거나 모니터를 치우는 일이 일어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결국 며칠 새 다른 일자리를 구하고 퇴사하겠다고 했더니, 법 개정으로 인한 해고임에도 '개인 사유'라고 적으라고 강요당했다.

몇 년 전에, 유럽의 일차 의료와 관련된 보고서를 검토했던 적이 있었다.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일차 의료 당직의가 있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집에 있다가 야간이나 주말에 누가 갑자기 아프면 전화를 할 수 있는 곳이 있고, 그러면 의사가 전화 상담을 하거나 집으로 찾아가거나 하는 식이었다.

야간노동인 건 매한가지지만, 적어도 지역사회에서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게 아픈 사람이나 일하는 사람이나 더 낫다고 생각한다. 지역사회 통합 돌봄 사업이 몇 년째 이루어지다가 또 사업 예산이 삭감되는 등 여러 우여곡절을 겪고 있다. 존엄한 삶과 존엄한 돌봄은 어떤 공간에서 누구와 같이 있느냐가 중요하고, 좋은 공동체를 잘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존엄한 삶과 죽음, 돌봄을 위해서는 지역사회에서 좋은 공동체를 잘 만들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 일터 1월호에도 실립니다.이 글을 쓴 이도연님은 한의사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입니다.
#시설사회 #요양병원 #돌봄 #요양원
댓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모든 노동자의 건강하게 일할 권리와 안녕한 삶을 쟁취하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입니다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삼전·하이닉스 비켜! 우리 가족의 엄청난 '성과급' 삼전·하이닉스 비켜! 우리 가족의 엄청난 '성과급'
  2. 2 니카라과 '백마 탄 여인'의 감동 스토리... 한국인이었다 니카라과 '백마 탄 여인'의 감동 스토리... 한국인이었다
  3. 3 대학 교직원 관두고 택한 이 직업 "나만의 해답을 찾았어요" 대학 교직원 관두고 택한 이 직업 "나만의 해답을 찾았어요"
  4. 4 수양대군 후손들도 칭송한, 단종의 시신 수습한 남자 수양대군 후손들도 칭송한, 단종의 시신 수습한 남자
  5. 5 이 대통령 입에서 끝내 나오지 않은 말, '위험한 신호'다 이 대통령 입에서 끝내 나오지 않은 말, '위험한 신호'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