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방하라청주산선 정문에 걸린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는 프랜카드
청주도시산업선교회
조순형의 옥살이가 시작된 지 얼마 뒤, 그 방에 환자가 발생했다. "사람이 죽어가요!" 같은 감방에 있는 이들이 아우성을 쳤다. 잠시 후에 의사가 도착했다. 교도관이 감방문을 열며 "OO번 나와"라고 했다.
"왜 나오라고 하냐? 의사가 왔으면 여기 와서 치료하면 되지!" "의사는 절대 감방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 조순형이 항의하고 교도관이 답했다. 환자가 발생하면 복도에서 진료를 받는 것이 당시의 관행이었다. 그런 사실을 들은 재소자들은 더욱 흥분했다. 똑같은 사람인데 재소자라고 감방 안에서 진료를 받지 못하는 것이 있을 수 있냐는 것이었다.
조순형과 재소자들은 의사가 감방에 들어와 진료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환자를 둘러싸고 재소자들과 교도소 간의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결국 교도소 측이 백기를 들었다. 청주교도소 역사상 처음으로 의사가 감방에 들어와 환자를 진료했다. 의사는 환자에게 링거를 꽂았다.
작은 승리를 경험한 조순형은 감방 안의 일상생활과 수용 환경에 눈을 돌리게 됐다. 재소자들과 함께 현재의 수용 환경과 문제점을 하나씩 열거했다. 우선 비누, 치약, 화장지 등 생필품을 일주일에 1회밖에 살 수 없다는 점이 불만으로 제기됐다. 이 문제가 이야기되자 너도나도 다른 문제들을 언급했다.
"감기약이나 소화제는 한 달에 한 번밖에 살 수 없어요." 사람이 갑자기 아플 수밖에 없는데, 의약품 구입을 매일 할 수 없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또한 재소자들은 생계란만 구입할 뿐이어서 삶은 계란은 구경도 할 수 없었다.
운동은 매일 30분씩 하게 돼 있는데, 실제는 15~20분밖에 시간이 허용되지 않았다. 운동시간을 늘리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규정 시간을 준수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세수와 빨래, 목욕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식사 문제였다. 밥은 가다밥으로 틀에 찍은 밥이었다. 반찬으로 콩나물국이 주로 나왔는데, 콩나물이 아니라 소위 '콩나무'가 나왔다. 그만큼 콩나물이 크고 억세, 나무를 씹는 기분이었다. 멸치를 넣은 국물은 짜고 군내가 나서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운동과 의약품, 생필품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식사는 매일 하는 것이고 재소자 모두에게 해당되는 문제였다. 조순형은 '재소자도 인간'이라는 생각으로 교도소 환경 개선 투쟁을 벌여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런데 교도소 처우 개선 투쟁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재소자들의 의식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강력한 우군(友軍)이 등장했다.
환자치료 문제를 성공리에 끝내고 교도소 처우 개선 투쟁을 고민하고 있던 조순형에게 나타난 우군은 이영자였다. 이영자가 법정 모독죄로 재판장으로부터 감치 10일을 받아 기결수 방에 수감된 것이다. 이영자가 감치 10일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법정 모독
"당신 같은 판사 때문에 나라가 시끄러운 거야. 이 똥만도 못한 더러운 재판에 똥이나 싸야겠다!" 이영자는 재판장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폭탄 발언을 했다. 당황한 재판장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방청석 맨 앞줄에 앉아 있던 이영자는 바지를 내렸다. "끙"하며 힘을 주었지만 대변은 나오지 않고 소변이 나왔다. 사색이 된 재판장의 "이영자. 감치 10일!" 소리에 법원 정리(廷吏)들이 분주해졌다.
사법사상 전무후무한 사건이 벌어진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영자 딸의 교통사고 건 때문이었다. 임신부 장인순(이영자 딸)은 어린 딸의 손을 잡고 청주에서 볼일을 봤다. 진천에 도착해서 덕산행 버스를 타고 마을에서 하차할 때였다. '부릉'하는 소리와 함께 버스가 출발했다. 장씨의 "어어!" 하는 소리는 만원 버스의 엔진소리에 묻혔다.
옷이 버스 문에 끼인 장씨는 100미터쯤 끌려갔다. 임신부 여성이 100미터 정도를 끌려갔으니 양다리가 멀쩡할 리가 없었다. 청주의 남궁병원으로 긴급히 후송돼 치료를 받았지만 환자는 회복되지 않았다.
환자 가족들이 진천교통에 "서울대학교 병원으로 보내달라"고 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러자 환자 아버지 장석주가 버스회사에 강력히 항의했다. 사측은 "장석주가 딸을 볼모로 돈 많이 받으려고 거짓말을 한다"며 악담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사측은 장석주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장석주는 구속됐다.
이영자가 대한민국 사법사상 전무후무한 행동을 벌인 것은 남편 장석주의 재판 때이다. 임신부 딸은 일어나지 못하는데, 남편이 억울하게 재판을 받고 있으니 울화가 치밀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검사와 판사가 남편을 마치 중죄인 다루듯 하니, 울컥 화가 치민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영자는 감치 10일을 받아 청주교도소 여사(女舍) 기결수 방에 수감됐다.
단식농성

▲한길녀운천동 주민투쟁을 증언하는 한길녀
청주도시산업선교회
이영자가 감방문을 열고 조순형과 한길녀와 반갑게 인사했다. 이영자 딸의 교통사고 건 이후 청주산선에서 만났던 터였다.
"재소자도 인간이다." "콩나무는 싫다. 콩나물을 달라." "운동과 목욕 시간을 보장하라!" 조순형이 구호를 외쳤다. 이 구호는 옆방으로 이어졌다. 한길녀와 이영자가 있는 방뿐만 아니라 모든 여사에 일파만파 퍼졌다.
교도소 당국자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졌다. 그런데 교도소 당국을 더욱 긴장시킨 일이 발생했다. 여사 수감자 전원이 단식투쟁에 돌입한 것이다. 보통 단식투쟁은 정치범만 했는데, 이번에는 여사에 수감된 40~50명의 재소자가 한꺼번에 동참한 것이다.
여성 재소자 모두가 행동하다 보니 무기징역수도 단식을 하게 됐다. 무기징역수가 "굶어 죽으나 평생을 감방에 있다가 죽으나 마찬가지"라고 한 말은 오랫동안 청주교도소에 회자됐다. 교도소장이 실태 파악을 해보니 운동·빨래·목욕 시간이 규정대로 준수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식사도 규정대로 준수되지 않고 형편없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청주교도소장은 청주도시산업선교회 정진동 목사를 찾아갔다. "목사님. 재소자 요구를 모두 들어줄 테니 단식을 풀게 해주세요." 정진동은 조순형 면회를 통해 교도소장의 의견을 전달했다. 그 시간부로 단식투쟁은 중단됐다. 재소자들의 요구는 100% 관철됐다.
가다밥이 주걱으로 푸는 밥으로 바뀌었다. 계란은 재소자들이 원하는 만큼 삶아서 나왔다. 운동시간과 빨래, 목욕 시간도 규정대로 지켜졌다. 생필품 구매는 일주일 1회 구입에서 매일 구입으로, 의약품은 한 달에 1회 구입에서 일주일에 1회로 바뀌었다.
살아있는 교육장
"맹섭아. 청주산선에 가자"라며 1985년 당시 청주시 율량동에 있던 영광교회에 다니고 있던 최맹섭의 손을 이끈 이는 충북EYC 상임총무 이주형. 그는 1984년 가을에 청주YMCA의 통일 특강에서 몇몇 후배들을 만났다.
이들과 함께 학습 소모임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EYC 활동에도 함께했다. 이주형은 그때 최맹섭을 만났다. 아직 정치의식이 미숙했던 최맹섭이 청주산선의 기도회에 참여하고 내덕동·송정동·운천동 주민투쟁 현장에 참가하면서 의식의 혁명적 변화가 왔다. 1984년에는 주로 EYC를 매개로 한 기독 청년들이 주민투쟁에 참여했다. 청주제일교회, 봉명교회, 우암교회, 청북교회, 동부교회, 제일감리교회 청년들이다.
1985년 들어서는 대학교별로 학생운동이 활발해지면서 학습 소모임과 학번별 조직체계가 형성되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1학년에게는 청주 3개 지역 주민투쟁 현장이 부담스러웠다. 대신에 2~3학년에게는 최고의 사회과학 의식 교육장이었다.
각 대학교 선배들이 2~3학년들을 청주산선과 주민투쟁 현장에 참여시켰다. 이때 참가한 이들이 충북대의 김인수(82), 유영길(83), 오맥균(84) 등이고 청주대의 유수남(83) 등이었다.
유수남은 그때까지 비폭력 평화시위에 대한 믿음이 절대적이었다. 그런데 주민투쟁 중에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을 목격하고 정당방위적 폭력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경찰의 폭력으로 얼굴이 만신창이가 된 이주형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는 비단 유수남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충북대, 청주대, 청주사범대학(현 서원대학교)의 저학년 학생들에게 모두 해당됐다. 물론 기독 청년들도 마찬가지였다.

▲걸개 그림청주산선에서 농성중인 주민들. 좌측 상단에 공주대학교 미술교육과 학생들이 그린 걸개그림이 있다.
청주도시산업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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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재소자 전원 단식농성, 무슨 일이었느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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