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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때문에 나선 주민들, 막은 경찰... 그 뒤 벌어진 끔찍한 일

[정진동 평전] 내덕동·송정동·운천동 토지 및 주택 강제수용 사건

등록 2024.12.25 10:53수정 2024.12.25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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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동을 아십니까. 농촌선교(1958~1971)에서 도시산업선교(1971~2004) 활동까지, 정진동은 충북 지역 민주화운동의 어른이었습니다. 정진동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그가 꿈꿨던 공동체 사회, 민주주의와 인권의 소중함, 민중해방의 사상을 살펴봅니다.[편집자말]
장아무개(가명)는 충북도청 옆 법원에 증명서를 떼러 갔다. 자신의 집을 팔기 위해서였기에 신청서의 매도(賣渡)용에 동그라미를 쳤다. 공무원이 건네준 증명서를 받아 본 그는 깜짝 놀랐다.

자신의 집이 1년 전에 청주대학교 시설부지로 지정돼 매매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법원 공무원에게 물어봤으나 그가 알 턱이 없었다. 장씨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집의 용도가 변경된 것을 안 것은 1983년 6월.

청주시청에 몰려간 여성들

안덕벌 주민예배 안덕벌 주민들이 예배를 보면서 투쟁방향을 논의하고 있다. 맨 좌측이 정진동
안덕벌 주민예배안덕벌 주민들이 예배를 보면서 투쟁방향을 논의하고 있다. 맨 좌측이 정진동청주도시산업선교회

장씨 상황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내덕동 안덕벌(안터벌) 주민 150여 세대의 주택과 토지가 청주대학교 시설부지로 편입된 사실도 알게 됐다. 주민들은 낭패감에 빠졌다.

집을 고치거나 새로 지을 수도 없거니와 매매가가 시세의 1/2에~1/3에 불과하다는 것. 하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주민들이 주택과 토지를 팔려고 복덕방에 내놔도 전혀 거래가 안 된다는 점이었다.

울화통이 터지기 직전인 안덕벌 주민 김용성 등이 전 신흥제분 노조위원장 김성배의 소개로 청주도시산업선교회를 찾은 것은 1983년 7월 1일이었다. "목사님. 사립대학교가 주민들 땅을 강제로 수용할 권한이 있습니까?" 주민의 질문에 정진동은 청주대학교가 아무리 사립대학교라지만, 교육용 부지의 수용권은 국가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 후에 말을 덧붙였다. "아무리 강제 수용이라고 하지만 공청회를 열지 않거나, 주민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사실 내덕동은 청주 외곽에 있는 지역으로 영세민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대부분 허름한 집이 자신의 유일한 재산이었다. 그러한 상황에 처해 있는 그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쫓겨나면 당장 생계가 막막할 수밖에 없었다.

실내 집회 안덕벌 주민들이 청주도시산업선교회서 집회하는 모습
실내 집회안덕벌 주민들이 청주도시산업선교회서 집회하는 모습청주도시산업선교회

주민들은 곧바로 주민대책위원회를 조직했다. 주민 108명이 서명해 그해 7월 11일 건설부, 교육부, 충청북도, 청주시, 청주대학교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자신들의 집과 토지를 시설부지에서 제척(제외)해 주던지, 현 시가대로 보상을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청주대학교가 서로에게 책임을 떠미는 모습이었다.


화가 치민 주민 80명이 7월 21일 청주시청과 충북도청을 찾아갔다. 평소에 관공서 문턱 넘는 것을 꺼리던 주민들이 용감하게 행동했다. 시장과 도지사를 만나서 자신들의 주장을 당당하게 말했다. 주민들의 기세에 놀란 시장과 도지사는 주민들에게 각서를 써줬다. "지금부터 가옥, 토지, 전답을 학교시설 부지에서 즉각 해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의기양양한 주민들은 내친김에 충북도교육청도 방문했다. 이날 청주시청과 충북도청, 충북도교육청을 순례해 자신들의 의사를 적극 피력한 주민들은 모두 여성이었다. 이 사건은 이후 지역 MBC, KBS, 충청일보 등에 보도되면서 공론화됐다.

그러자 관계기관이 한발 물러섰다. 청주대학교 시설부지에 편입된 총 21만 평(63만㎡) 중에서 주택 밀집 지역 1만 평(3만3000㎡)이 토지수용에서 제외됐다. 주민들의 부분적 승리였다. 하지만 영세민들이 주로 살고 있던 내덕동 안터벌은 상황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

백지 서명이 동의서로 둔갑하다

"주민들 다수가 철거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따르겠습니다." 8개월 전 운천동이 택지개발지구로 묶여 속수무책으로 자신의 터전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운천동 대책위원회 주민들이 항의를 하자 돌아온 답변이었다.

그 자리에는 당시 민주정의당 소속 정종택 국회의원과 청주시 부시장이 있었다. 그들은 대책위 주민들에게 "택지개발지구에서 운천동 해제를 바란다"는 진정서를 관계 당국에 제출하겠다고 했다. "진정서에 서명하세요." 벼랑 끝까지 갔던 자신들의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 기대감에 들뜬 주민들이 진정서에 모두 도장을 찍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984년 2월 23일의 일이었다.

그런데 그때 주민들은 서명 용지에 제목이 없다는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즉 무엇을 위한 서명인 줄도 모르고 서명을 한 것.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백지 서명지는 주민 스스로가 자신의 땅에서 떠나겠다는 철거동의서였다. 택지개발을 둘러싼 정치인과 청주시의 야합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양희왕, '땅을 뺏는 자들·땅을 지키는 사람들', 청주도시산업선교회, <청주도시산업선교회 뿌리>, 1986).

황당한 백지 서명 사건이 있게 된 데에는 주민들의 동의 절차를 거치지 않는 행정당국의 일방적 택지개발지구 지정이 있었다. 청주시는 1983년 6월 25일 도시 주택난 해소와 균형된 도시발전이란 명분하에 건설부 고지 제211호로 운천동 일부를 택지개발 예정지구로 지정했다.

이로 인해 운천동 3통 300여 세대 주민들은 청주시나 토지개발공사가 고시한 가격에 자신의 주택과 토지를 강매당하게 됐다. 운천동 주민들이 성명서를 배포하고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1984년 3월이었다.

정사관 청주시 송정동 정사관 마을 경로당에 붙여진 프랜카드
정사관청주시 송정동 정사관 마을 경로당에 붙여진 프랜카드청주도시산업선교회

송정동 정사관 마을에도 날벼락이 떨어졌다. 송정동은 청주 공업단지 중심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1968년 이 지역이 공장부지로 지정되면서, 주민들은 경작지를 당시 시가에 못 미치는 평당 200~300원에 강매당했다.

이준영 당시 청주시장은 주민들이 매각을 거부하자, 이 지역이 공업단지로 조성되면 주민 전부를 공단에 취업시켜 주겠다는 등 감언이설로 토지 매매를 강요했다. 주민들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문전옥답을 1~2차에 평당 200~250원, 3차인 1978년도에는 1000~6000원씩 헐값에 강매당했다.

그런데 1983년도에 정사관 마을을 포함한 송정동과 향정동 5만9000평(19만4700㎡)이 공단부지로 지정됐다. 청주시는 1983년에 3공단 조성을 위해 정사관 마을을 포함한 송정동 2만9000평을 원풍산업과 한영스크린, 한도통상에, 향정마을을 포함한 향정동 3만 평을 럭키에 각각 입지를 지정했다.

이렇게 상황이 진전되도록 청주시는 주민들과 어떠한 사전협의도 거치지 않고, 청주시가 정한 보상가를 따를 것을 일방적으로 강요했다.

"돌려다오 안터벌을~ 땅주인 주민들에게~"

청주 시내 내덕동·송정동·운천동 3개 지역이 택지개발지구와 교육용지, 산업단지로 묶이면서 강제수용과 헐값 매각 강요가 결정된 것은 1983년. 내덕동은 1983년 7월부터, 송정동과 운천동은 1984년 2~3월에 '주민대책위원회'가 구성됐다.

정진동의 발걸음이 분주해졌다. 3개 지역 주민들의 도움 요청에 적극적으로 응했지만 주민들의 이해와 요구는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즉 주민들 구성이 여유 있는 사람, 가난한 이, 공무원, 직장인, 노동자, 실업자, 자가(自家) 소유자, 세입자 등으로 다양해 그들의 입장이 모두 다르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최소한의 공통분모를 갖고 주민들을 조직했다. 그것은 택지개발지구와 교육·공단 부지에서의 해제였다. 이런 요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주택과 토지의 현시세 수용 및 매매 보장을 요구한 것이다.

정진동은 일주일에 한 차례씩 한 지역을 방문했다. 즉 일주일에 3일 저녁을 각 마을을 방문한 것이다. 1984년 8월 24일에는 내덕동 주민 신현수씨 집에서 예배를 드렸다. 찬송가와 <우리 승리하리라>는 노래를 불렀다. 정진동이 "불의한 자들과 맞서 싸우는 것이 예수의 정신"이라고 설교를 했다. 이어서 조용필이 부른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개사한 <돌아와요 안터벌에>를 합창했다.

꽃피는 안터벌에 봄이 왔건만 / 내 땅 뺏긴 안터벌엔 기관원만 얼쩡얼쩡 / 청주시청 대성학원 짜고 도는데 / 목메어 불러 봐도 대답 없는 그대들이여 / 돌려다오 안터벌을 땅주인 주민들에게

주민들의 심정을 절절히 담아낸 가사였다. 이 노가바(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의 가사를 지은 이는 충북EYC(기독청년협의회) 상임총무 박종희였다. 그는 청주제일교회 출신으로 수배 중이었던 1982년에는 서울 영등포산업선교회 지하에 숨어 있으면서 원풍모방과 콘트롤데이터 선전물과 현수막, 머리띠를 제작하기도 했다.

"이 자식 아직도 살아 있네!"

이주형 경찰의 폭행에 쓰러진 충북 EYC 총무 이주형
이주형경찰의 폭행에 쓰러진 충북 EYC 총무 이주형청주도시산업선교회

3개 지역 주민들의 토지·주택 문제 해결을 위한 진정서 제출, 기도회, 선전전 등이 한창일 때였다. 3개 지역 대책위와 청주산선이 1984년 7월 26일 오후 6시 사창동 청주도시산업선교회에서 '기도회'를 가졌다. 기도회에 참석한 기독교 청년들과 충북대, 청주대 학생들이 가두 투쟁을 시도했다.

청주산선에 이웃해 있는 중앙여고 정문에서 전경과 청년·학생들이 대치했다. 시위대열 후미에 있던 이들이 "으쌰! 으쌰!"하며 앞에 있는 이의 등을 밀었다. 그런데 선두에 있던 시위대는 전투경찰의 방패에 막혀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때 중앙여고 담벼락 위에서 이를 지켜보던 청주경찰서 정보과장 김O선이 "저 놈, 저 놈 잡아"라고 소리쳤다. 주동자를 지목한 것이다.

맨 앞에 있던 이주형(충북EYC 협동총무)이 전경의 방패 뒤에 숨어 있던 경찰에 의해 순식간 연행됐다. 최종진(충북기농 총무), 추승엽(충북EYC 회장)과 충북대학교 학생 이용일, 김인수, 민천기, 유영길 등 약 10명이 동시에 '매가 닭을 낚아채듯이' 연행됐다. 연행된 이들은 중앙여고 운동장으로 끌려갔다. 연행자들의 저항에 4~6명의 전경이 한 사람씩 맡아 양팔과 다리, 머리 등을 잡고 재빠르게 중앙여고 후문을 향해 질주할 때였다.

"민중 생존권 외면하는 폭력 경찰 물러가라"는 이주형의 구호에 경찰들의 집단린치가 가해졌다. 주먹과 발, 몽둥이세례가 쏟아졌다. "나 죽는다"라는 이주형의 비명에 "이 자식 아직도 살아 있네!"라는 경찰의 고함이 이어졌다. 마치 죽일 것처럼 이주형에게 달려든 경찰들의 폭행은 무지막지했다.

이날 이주형은 이가 1개가 뽑히고, 1개는 반이 부러지고, 4개에 금이 가거나 끝이 부서졌다. 한쪽 눈은 부어올라 앞이 안 보이고 눈자위에 마치 검은 안경을 쓴 것처럼 피멍이 들 정도였다. 갈비뼈가 부러져 허리를 옴짝달싹 못 했다. 이주형과 김인수(충북대 82학번)는 서부경찰서에 연행된 후 충북도립병원에 입원했다.

국가권력의 폭행은 이날로 끝이 아니었다. 7월 31일 3개 지역 주민 100여 명이 시장 면담을 위해 청주시청으로 향했다. 주민 25명이 시청 2층 시장실로 들어가려 할 때 공무원 100여 명이 노인과 여성들의 뺨을 때리고, 머리를 시멘트벽에 부딪쳤다.

일부 여성들에겐 목을 조르며 "이 년 죽여 버리겠다"는 욕설을 퍼부었다. 시장 비서는 "내가 공무원만 아니었다면 이 년을 죽여버리겠는데"라며 협박하기도 했다. 민중의 지팡이가 돼야 할 경찰과 공무원이 주민들의 정당한 요구와 항변에 주먹질과 몽둥이찜질을 한 것은 야만의 시대였던 1984년 7월 말이었다.

경찰 봉쇄 주민들의 항의시위를 막는 경찰
경찰 봉쇄주민들의 항의시위를 막는 경찰청주도시산업선교회

#토지수용 #안덕벌 #운천동송정도 #노가바 #E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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