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nsplash Image
chiara_01 on Unsplash
이산화탄소 발생을 줄인답시고 천 장바구니(에코백)와 머그 컵이 생겨났는데 이제는 이게 쓰레기가 되었다. 행사 때마다 하나씩 나눠 주니, 그걸 들고 다니면 기후위기범에서 면책이라도 되는 듯이 너도나도 집에는 십수 개씩 쌓아놨다. 깜빡하고 못 가져가면 또 비닐봉지와 일회용 종이컵을 쓴다. 천 장바구니 하나가 비닐봉지 130개 분량의 이산화탄소를 만든다니 완전 거꾸로다. 의식 있는 인간이 하는 짓도 이렇다.
언젠가 우리 집 장계에서 충북 단양에 강의가 있어서 가는데 8번 갈아탔고 9시간 걸렸다. 시내버스, 택시, 시외버스, 기차 등 인터넷으로 다 살펴봐서 갔는데 그랬다. 전혀 힘들거나 답답하지 않았다. 책을 두 권 읽었고 오가며 각 지역의 많은 풍경을 감상했다. 두 시간 강의하고 1박을 했지만 마냥 좋았다. 이런 걸 사람들은 별난 사람이 하는 별난 짓으로 여긴다. 그게 문제다. 기후 위기는 딱 한 가지다. 소비 때문이다. 과잉 소비, 과잉 생산, 과잉 폐기, 과잉 이동 때문이다. 모든 게 상품이 되어버리는 시장 만능 때문이다. 시장 사회는 잉여 생산을 그 본질로 한다.
화석연료를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써야 한다. 그래서 알이백(RE100)이라는 세계적인 캠페인이 등장했다.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만을 100% 사용해서 공장을 돌리겠다는 선언이다. 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에 60%, 2040년에는 90%를 달성해야 한다. 구글, 애플, 지엠, 이케아 등 세계적인 기업들이 다 가입했고 우리나라도 현대모비스, 케이티, 엘지이노텍 미래에셋증권, 에스케이그룹 등 21개 기업이 참가하고 있다. 세계 4번째로 많다. 한국 참 대단하다.
신재생에너지? 알이백(RE100)? 에이아이(AI)?
정말 알이백이나 신재생에너지가 답이 될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현대문명은 딱 한 마디로 숲을 잡아먹고 커왔다. 알이백이나 신재생에너지도 숲을 잡아먹는다. 똑같다. 태양광 산업으로 산과 농지가 전부 태양전지로 뒤덮이는 현실이 그렇다. 태양은 영원하고 바람은 늘 불고 지구 내핵은 태양 표면보다 뜨겁다. 그러나 지열이나 태양광, 태양열이나 풍력을 이용하는 재생에너지 단지도 꾸준히 손을 보고 에너지를 공급하지 않으면 기계는 녹슬고 내구연한이 있어 부속은 망가진다. 영원하지 않다. 태양광 전지도 수명이 25년에 불과하고 초기 제품들은 사용 연한이 다 되어 엄청난 환경오염 쓰레기로 변한다. 눈가림하는 기후산업일 뿐이다.
편리하게 살려는 욕망의 열차에서 더 과속으로 달리고자 하는 잔꾀에 불과하다. 이는 민중의 적정기술, 생활 기술을 무시한다. 이런 기후산업은 민중의 자생력을 파괴한다. 정치적 민주주의를 내 걸면서 경제적 집중과 독점은 더 심해진다.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약자인 이에스지(ESG)를 내세우는 기업들이 도입하는 경영 방식. 내 눈에는 잘 키워서 잡아먹으려고 사료를 듬뿍 주는 양식장의 양식업자의 모습으로 비친다.
지금의 국가는 껍데기다. 우리 삶을 규정하고 우리를 울고 웃게 하며 많은 시간을 들이게 하는 것은 이커머스(전자 쇼핑몰), 넷플릭스, 유튜브, 초고속 이동 네트워크, 공산품이 된 식품, 공산품이 된 의료일 뿐이다. 구글, 테슬라, 삼성, 구글. 애플. 쿠팡 등은 세계 어느 국가보다 영향력이 크다. 우리는 쿠팡 노동자들이 가혹한 노동환경에서 과로사하고, 택배 현장에서 숨진다는 뉴스를 보면서도 몇십 원 싼 맛에 쿠팡을 찾는다. 몇십 원이 없어서가 아니다. 소비의 마취 상태, 정신적 음주 상태라서 그렇다.
생태 영성-차원 상승과 야생의 삶

▲ 태양광 발전 시설
pixabay
저탄소 경제, 재생에너지. 소비 절약만으로 기후 대재난과 기후 난민, 전쟁, 파시즘의 등장을 피할 수 없다. 우리 체온이 1~2°C만 올라도 우리는 일상을 유지하지 못하고 드러눕는다. 설사가 나면 안 먹어야 한다. 지사제를 먹고 계속 상한 음식을 먹으면 만성병에 걸려 죽는다. 수직 빌딩 농사. 고층 아파트, 스마트 농업. 대도시 등은 온실가스를 풍풍 뿜는다. 기후재난으로 통신, 에너지. 도로가 끊기면 끝이다. 일찍 벗어나야 할 감옥이다.
우리는 기후위기라고 부른다. 그건 인류 문명의 관점이다. 지구 님께서는 뭐라고 할까? 지구는 이런 현상을 자연순환이라 할 것이다. 지구 시선으로 보면 인간도 자연의 한 조각에 불과하니까. 그러니 호들갑 그만 떨고 적응해야 한다. 자연주의 삶으로! 야생 살기로 가야 한다. 문명을 철거해야 한다.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상승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영성은 나와 세계는 하나라는 것이다. 영성은 네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네가 있다는 것이다. 한 뿌리에서 잎도 나고 열매도 나고 꽃도 핀다는 사실. 꽃을 찾아오는 곤충과 새들도 그렇다 같은 뿌리의 다른 형상들이라는 것이 영성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그렇게 사는 것이다.
"봄에는 가볍게 걸어라, 어머니인 지구가 임신 중이다"라는 말은 내가 휴대폰 프로필에 적어 놓는 북미 원주민 '카이오와 족'의 속담이다. 자연은 그렇게 대하는 것이다. 나나 돌멩이나 벌레 한 마리도 다 지구에 깃든 세입자라는 것이다. 생존의 범위 안에서 순리에 따라 먹고 먹히는 삶을 아름답게 사는 게 새로운 차원의 삶, 개벽 세상, 물병자리 시대라고 본다.
야생으로 살기. 화석연료와 비료 없이 농사하기. 생필품 스스로 만들어 쓰기, 전기 없는 삶. 몸 에너지 활용. 먼 길 교역이 아닌 가까운 마을 장터. 에너지 필요 없는 집 짓기 등은 차원이 다른 파동에너지의 삶으로 넘어가는 길목이 될 것이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줄인다. 체험의 영역, 신성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웰다잉을 얘기하며 연명치료 거부 사전의향서를 쓴다. 유언을 미리 해 둔다. 인류는 유언을 써 둘 때다. 연명 조치는 그만둘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 빼기를 해야 한다. 눈에, 어깨에, 머리에 과도한 힘을 뺀다. 병원에 가도 다리가 부어 있거나 탈진해 있으면 침도 안 놓고 수술도 않는다. 부기가 빠지고 기력을 회복하고 나서 시술을 한다. 그것처럼 지구에서의 삶에 있어서 인류는 먼저 이완하고 정화하고 치유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인류 유언장을 쓰고 자청해서 안락사를 준비하는 인류가 된다면 비로소 희망이 있겠다. 그것이 생태 영성의 길이다.
자연과 연결되고, 자연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인식하며, 이를 통해 내면의 평화를 찾는 길. 자연 속에서 느끼는 감동과 경외감을 통해 더 나은 자신을 발견하고, 한발 더 나아가는 삶이 희망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농(農)을 중심으로 연결과 회복의 삶을 꾸립니다. 생태영성의 길로 나아갑니다. '마음치유농장'을 일굽니다.
공유하기
죽어가는 작물... 기후위기 막는 방법은 하나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