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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 없는 '위장 결혼식'... 날아온 '계엄법 위반 공소장'

[정진동 평전] 1979년 11월 정진동의 구속과 시련

등록 2024.12.12 12:17수정 2024.12.16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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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동을 아십니까. 농촌선교(1958~1971)에서 도시산업선교(1971~2004) 활동까지, 정진동은 충북 지역 민주화운동의 어른이었습니다. 정진동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그가 꿈꿨던 공동체 사회, 민주주의와 인권의 소중함, 민중해방의 사상을 살펴봅니다.[편집자말]
영문도 모른 채 새벽에 불청객의 방문을 받은 한천동은 잔뜩 겁에 질렸다. 지프차에 실린 그가 도착한 곳은 청주지방검찰청사. 청주지방검찰청이란 간판 앞에 선 한천동은 다리가 후들거렸다. A검사실 문이 열렸다. 새파랗게 젊은 검사는 한천동에게 대뜸 반말부터 했다.

"한천동이, 청주도시산업선교회에 처음 간 게 언제야?"

이제까지 누구한테 반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한천동으로서는 당황했다. 하지만 그는 억압적인 분위기에 위축됐다. "작년 봄입니다." 검사의 질문에 답하는 한천동은 불과 1년 전의 일이 한참 오래된 이야기처럼 생각됐다. 자신이 겪었던 일들이 흑백 사진으로 파노라마처럼 스쳐 갔다.

국가로부터 불하받은 청주시 남일면 평촌리 땅 약 10마지기(2013평)가 문제가 돼 1978년 청주도시산업선교회 정진동 목사의 도움을 얻어 땅을 되찾는 싸움을 했다. 청주산선에서 단식농성에 참여하면서 사건의 진전이 있는 듯했다. 그렇지만 청주시는 사건의 근본적 대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대토(代土)를 주겠다고 했다.

한천동은 완강하게 거부했다. 부당하게 빼앗긴 자신의 땅 대신에 다른 곳의 땅을 얻으면 제2의 피해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즉 다른 국유지나 시유지의 땅에서 농사짓고 있는 사람이 자신처럼 하루아침에 경작권(점유권)을 상실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결국 한천동은 오랜 단식농성 투쟁에도 불구하고 땅을 되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경험을 통해 더불어 사는 공동체적 가치를 발견했다. 그것을 계기로 그는 청주도시산업선교회의 열렬한 신도가 됐다.

"도산(都産)이 들어오면 도산(倒産)"


그 사건이 1년이 지난 시점에서 한천동이 벌률적으로 문제가 될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청주지방검찰청 A검사가 한천동을 조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추가 혐의가 있어서일까, 아니면 작년 단식농성에 관한 일로 조사하는 것일까? 둘 다 아니다. 단지 중앙정부의 지시로 '도시산업선교회 죽이기' 작전에 돌입한 것이다.

1979년 8월 9일 회사의 폐업에 반대하는 200여 명의 YH 노동자들이 신민당사를 점거했다. 1966년에 설립한 가발수출업체 YH(용호무역)는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밑천으로 막대한 수익을 얻었다. 그런데 회사에 민주노조운동이 일어나자 페업 조치를 단행했다. 그동안 회사의 이익금은 미국으로 빼돌린 상태였다.


노동자들의 폐업 철회 요구에 경찰은 무자비한 진압 작전으로 맞섰다. 이 과정에서 22세 여성 노동자 김경숙이 사망했고, 당시 신민당 총재 김영삼이 의원직에서 제명당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그해 10월 부산과 마산에서 민주화의 들불로 되살아났다. 10월 26일에는 김재규의 박정희 저격으로 유신정권이 몰락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렇기에 YH 사건은 단순히 노동운동의 개별 사건이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중요 사건이다.

YH 사건이 발생하자 중앙정보부를 비롯한 검찰청 등 정보·수사 기관은 본격적인 노동운동 탄압에 착수했다. 그 희생양으로 뽑힌(?) 것은 도시산업선교회였다.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YH 사건 직후 구성된 이른바 '산업체 등에 대한 외부세력 침투실태 특별조사반'은 대검찰청 박준양 공안부장을 반장으로 해 8월 17일부터 30일까지 조사 활동을 벌였다. 이들이 작성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한 '산업체·농촌사회 외부세력 침투실태'의 내용 일부다.

일부 소수의 '도산 목사들은 산업선교를 한다는 명목하에 복음 전파 등 순수한 종교적 차원이 아니라 근로자들에게 노동관계 법규를 위반하면서 불법적인 투쟁 방법을 교사 및 선동한 사례도 아울러 발견되었음. (중략) 사리 판단력이 부족하고, 감수성이 예민하며 극렬투쟁 유도가 용이한 나이 어린 여성 근로자들에게 집중적으로 침투하고 있었음. - <영등포산업선교회 40년사> 중

위의 보고서를 토대로 정부와 언론은 도시산업선교회 죽이기에 나섰다. 대표적인 것이 방송과 신문에 "도산(都産: 도시산업선교회)이 들어오면 (기업이) 도산(倒産)한다"고 대문짝만하게 보도한 것이다. 이어서 대검찰청은 지역별로 도시산업선교회 관계자들을 연행해 조사에 착수했다. 청주도 마찬가지였다.

1979년 8월 18일 정진동과 함께 민중 생존권 투쟁에 참여한 이들이 검찰에 대거 연행됐다. 농민 한천동을 위시해, 대성여객 이팔용·최병주·이수만, 조광피혁 김병하, 신흥제분 연기준·유봉석·김태안 등이다.

정진동 핑계

 포고령 위반의 정진동 공소장.
포고령 위반의 정진동 공소장.청주도시산업선교회

토요일 오후 5시부터 결혼식 하객들이 밀려들었다. YWCA 수위는 얼떨하기만 했다. 자기가 일하면서 결혼식에 이렇게 많은 하객이 모이기는 처음이었다. 결혼식이 막 시작될 6시 즈음해서는 식장에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1000명에서 1500명은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정작 결혼식 주인공인 신부는 온데간데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신부가 애초에 없는 결혼식이었기 때문이다. 가상의 인물인 '신부 윤정민'은 윤형중 신부의 성에 민주주의 정부에서 정과 민을 따 와 이름을 지어낸 허구의 인물이었다.

"신랑 입장" 당시 연세대학교 복학생 홍성엽(1953~2005)이 활짝 웃으며 입장했다. 신랑이 활짝 웃으면서 주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갈 때였다. 주례 백기완이 선언문을 낭독했다. 유신철폐와 민주 정부 수립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윤보선·함석헌·김대중이 주도한 유신체제 말기의 최대 정치집회였다.

'쾅쾅쾅' 경찰의 예식장 문 부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위장 결혼식'에 참여한 청년들이 출입문에 책걸상을 쌓아 놓았지만 문은 조금씩 열렸다. 밖에서 사복형사들의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개XX들 전부 죽여버려!" 정진동과 이유근, 김병하와 함께 이날 집회에 참석한 조순형은 심장이 떨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1980년 청주도시산업선교회 개관예배를 드리는 함석헌.
1980년 청주도시산업선교회 개관예배를 드리는 함석헌.청주도시산업선교회

폭풍전야의 긴장감이랄까. 경찰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것보다 문을 부수는 소리가 훨씬 무서웠다. 출입문이 부서지면서 청년들이 철제의자를 던졌다. "모두 연행해!"라는 형사들의 목소리와 "민주주의 만세"라는 고함이 공중에서 엉켰다.

잠시 후 예식장 밖에 나온 시위대에게 구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문이 있어요. 이리 와요"라는 정체불명의 소리였다. 청주에서 함께 올라온 이유근이 그쪽으로 갔다. 하지만 그것은 구원의 목소리가 아니라 경찰의 함정이었다. 그날 140명이 불구속 입건됐다. 거기에 이유근도 포함됐다.

집회 주동자 14명은 용산 국군보안사령부 서빙고 분실로 끌려가서 모진 고문을 당했다. 특히 백기완은 고문으로 여러 차례 혼절을 거듭하더니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기까지 했다. 1979년 11월 24일의 일이었다.

 계엄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던 정진동의 석방 기념 사진. 좌측 셋째부터 정진동과 아내 조정숙.
계엄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던 정진동의 석방 기념 사진. 좌측 셋째부터 정진동과 아내 조정숙.청주도시산업선교회
 계엄법위반으로 대전교도소에 구속된 정진동의 재소자신분카드
계엄법위반으로 대전교도소에 구속된 정진동의 재소자신분카드청주도시산업선교회

천만다행으로 정진동과 조순형은 연행을 모면했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틀 후인 11월 26일 기독교 장로회 충북노회 월례회에서 YWCA 위장결혼식 사건에 대한 경과보고가 있었다. 당시의 상황과 선언문을 읽어줬다. 그런데 이것이 '포고령 제1호 1항' 위반이라는 올가미에 엮이게 되었다.

11월 27일 정진동과 조순형은 합동수사본부에 연행돼 조사를 받다가 대전교도소에 구속됐다. 조순형은 12월 24일 석방됐고, 정진동은 계엄법 위반으로 홍남순 변호사의 입회 하에 군사 재판을 받았다. 그는 1980년 1월 23일 선고유예로 석방됐다.

그런데 YWCA 위장 결혼식 사건에서 우스운 일이 있었다. 청주에서 올라간 민봉규(충북대학교 78학번)가 종로경찰서에 연행됐을 때이다. "너 어떻게 왔어?" "정진동 목사님이 가라고 해서요." 사전에 청주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무슨 문제가 생기면 모두 정진동 목사 핑계를 대라"는 지침을 준수한 것이다. 그로 인해 민봉규는 큰 곤욕을 치르지 않을 수 있었다.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놈아!" 협박편지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놈아"로 시작되는 공군장교(대위)의 협박편지.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놈아"로 시작되는 공군장교(대위)의 협박편지.청주도시산업선교회

'조국과 국민을 위해 땀과 피를 쏟는 군인으로서 너희 놈들의 행동과 사고방식의 좌경 의식화에 대해 개탄과 분함을 참지 못해 이 글을 쓰노라'로 시작되는 편지는 청주 북일면(현 내수읍)에 소재한 공군부대에서 온 편지였다.

대위 윤아무개의 편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욕설로 도배됐다. 부산미문화원 방화 사건을 두둔하는 놈들(정진동과 청주도시산업선교회)을 처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편지는 '네놈 같은 좌경의식을 부르짖는 빨갱이들은 이 지구상에서 멸망돼야 함을 주징한다'로 끝맺었다.

정진동이 계엄법 위반으로 대전교도소에서 추운 겨울을 보내고 석방된 지 2년여 됐을 때 정국을 강타한 사건이 발생했다. 문부식 등 부산지역 대학생들이 미국문화원에 불을 지른 것이다. 전두환 정권이 1980년 5월 발생한 광주 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하는데 미국이 이를 묵인한 것에 비판의 화살을 쏜 것이다. 1945년 이래 '반미운동의 무풍지대'로 알려진 대한민국의 공식이 깨진 날이다.

정권은 문부식과 김은숙을 포함한 사건 주동자 16명을 구속했다. 또한 사건 주동자들을 숨겨줬다는 명목(범인은닉죄)으로 카톨릭 원주교육원장 최기식 신부가 구속됐다. 최 신부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도 추가됐다. 전두환 정권은 이 사건을 북한의 사주를 받은 성격이상자들의 난동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신·구교 세력과 재야는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했다.

이 사건이 발발하자 전두환 정권은 민주화운동 세력, 특히 산업선교 단체를 친북·반미세력으로 규정하고 붉은칠 하기에 전력투구했다. 그 방법의 일환으로 재향군인 등 보수 인사들을 동원해 협박 전화와 협박 편지를 하게 했다.

청주에서는 공군부대에서 조직적으로 정진동에게 협박 편지를 보냈다. 그런데 문제는 협박 편지에 그치지 않고 정진동을 불법 납치했다.

'앞으로 까불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다'는 협박을 했다. 물론 그런 회유와 협박에 정진동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이후에는 공군부대에서 정진동을 1980년대 중반까지 일상적으로 감시했다.

예수교 장로회 탈퇴

 예수교장회 충북노회 단체사진. 1979년도. 정진동은 이 모임을 마지막으로 예수교장로회 충북노회를 탈퇴했다.
예수교장회 충북노회 단체사진. 1979년도. 정진동은 이 모임을 마지막으로 예수교장로회 충북노회를 탈퇴했다.<충북노회 80년사>

"충북노회와 잘 협의하세요." 근심이 가득한 정진동에게 영등포도시산업선교회 조지송 목사가 조언했다. 1973년 청주시 사직동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이래 정진동은 곁방살이의 서러움을 혹독하게 겪었다. 사직동에서 서문동으로, 사창동, 복대동, 금천동으로 거의 해마다 이삿짐을 싸야 했다. 자기들의 독자적인 도시산업선교회관이 없기 때문이었다.

조지송의 추천으로 독일 EZE 재단과 영국 교회에서 청주도시산업선교회관 건립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런데 후원금이 개인 교회가 아닌 교단을 통해 지원되는 것이 문제였다. 예수교 장로회 충북노회와 원만한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정진동은 단순히 회관 건립 문제뿐만 아니라 도시산업선교회 활동 문제로 예수교 장로회 충북노회를 탈퇴했다. 이어서 1979년 10월 8일 기독교 장로회 충북노회에 가입했다.

청주도시산업선교회가 사창동 중앙여고 앞으로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마련한 것은 1980년 12월이었다.
#계엄법위반 #국군보안사령부 #위장결혼식 #예수교장로회 #부산미문화원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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