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워하던 두 아들의 그림이 새겨진 화가 이중섭의 묘비
김종성
유관순과 이중섭이 이곳에 묻히게 된 책 속 사연을 읽고서 고인의 무덤 앞에 서니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특히 그리워하던 두 아이들을 그린 그림이 새겨진 이중섭 무덤 앞 작은 묘비는 가슴속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이승만 정권에 의해 국가보안법 위반, 간첩 누명을 쓴 채 사형 당한 아까운 정치인 죽산 조봉암의 무덤도 빼놓을 수 없다.
반공이 국시(國是)이던 시절, 죽산은 극우와 극좌를 배척하는 중도의 길을 걸었다. 진보당 당수로서 제3대 대통령선거에서 200만 표를 넘게 얻어 이승만의 장기 집권을 위협하는 유력한 정치인이었다. 2011년 대법원은 조봉암 선생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의 묘비에는 고인의 억울한 사연 한 줄 없이 호와 이름만이 새겨져 있어 후손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한양도성 성곽 아래 자리한 성북동 마을은 저자 유홍준이 서울에서 가장 좋아할 만한 곳이었다. 마을에 남아 있는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 최순우 옛집, 이태준의 수연산방, 배정국의 승설암, 우리옛돌박물관 등에 담겨있는 사연과 풍경에 눈길이 머문다.
정부 관료들과 재계 인사들의 흥청망청 요정이었던 대원각에서 사찰이 된 길상사는 성북동 필수 여행지다. 요정을 지었다가 사찰로 기부한 건립자 김자야의 삶이 놀랍고, 연인이었던 시인 백석과의 사랑 이야기도 흥미롭다.

▲ 요정에서 사찰이 된 성북동 길상사
창비
조선 왕릉은 어디나 비슷비슷해서 잘 안 가게 되는데, 임진왜란 때 왜군에게 도굴당하고 불타버렸던 비운의 조선왕릉 선정릉은 예외다. 전쟁 후 범릉적을 잡아 보내라고 강력하게 요구하며 탐적사와 쇄환사를 보내 일본에 있던 피로인(전쟁포로)을 송환받은 역사 이야기는 현재의 진행형의 일인 듯 생생하다.
당시 왕릉을 도굴하고 불태웠던 범릉적이라며 일본이 조선에 보낸 2명의 일본인은 진범이 아닌 무고한 민간인이었다. 옛 부터 일본정부가 우리나라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는 일이다.
겸재 정선(1676~1759)은 그를 조선의 화성(畵聖)이라고 부를 정도로 저자가 좋아하는 화가다. 강서구 가양동에 있는 겸재정선미술관에 가면 비에 젖은 인왕산을 그린 <인왕제색도>에서 서울 근교와 한강변의 명승명소를 그린 <경교명승첩>등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된 그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아름다운 강변 정자 압구정과 선유도, 난지도 등 여러 섬이 떠있는 서울 한강 풍경이 신기하기까지 하다. 뽕나무에서 뽕잎을 먹고 사는 누에를 키워 실을 뽑았던 동네 송파구 잠실(누에蠶 집室)이 옛날엔 섬이었다는 사실 등 한강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2 : 서울편 4 - 한양도성 밖 역사의 체취
유홍준 (지은이),
창비,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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