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07 06:57최종 업데이트 23.02.07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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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9일 윤석열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보건복지부ㆍ고용노동부ㆍ여성가족부ㆍ식품의약품안전처ㆍ질병관리청에 대한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 2년 차에 접어들면서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한 경제 활성화가 강조되고 있다. 그런데 사실 노동시장 유연화는 해고 규제 완화, 파견직 범위 확대, 성과 중심 임금체계 도입을 의미한다.

이미 중대재해처벌법은 시행 1년 만에 자율 예방에 초점을 두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주 52시간 노동 상한은 앞으로 69.5〜80시간까지 가능한 상황이 될지도 모르고,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차등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이 모두 자본과 기업들이 대선 과정에서 요구한 민원(?)들이다.


최근 윤석열 정부는 자신의 국정철학에 맞춘 억압적 노동정책들을 하나둘 발표하고 있다. 특히 대통령은 나라 안팎의 위기와 도전을 극복하기 위한 주요 과제로 노동개혁을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노동개혁이라고 그럴싸하게 표현했지만 그것은 사실 기업과 조직의 구조조정이나 인력 감축을 의미한다. 오로지 비용편익의 관점뿐이다. 이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의 대가는 고려하지 않는다. 정부 국정과제나 대통령 발언 등은 앞뒤가 맞지도 않는다. 시장경제의 주체인 자본과 기업의 개혁은 빠져 있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노동자의 삶을 파괴하는 파편적 노동시간 정책이다. 둘째, 일터의 공동체와 존엄성이 상실된 임금정책이다. 셋째, 뿌리깊은 자본 중심의 부끄러운 노사관계 정책이다. 넷째, 노동과 고용의 유연화와 맥을 같이하는 공공부문 혁신안이다. 다섯째, 격차 해소 방안은 찾아보기 어려운 사회정책 분야 정책의 공공성 빈약이다.

특히 미래노동시장연구회에서 지난해 12월 12일 발표한 권고문을 보면 이런 문제가 더욱 두드러진다. 이 연구회는 노동부가 노동정책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보수학자 중심으로 구성한 논의기구다. 권고문에는 장시간 노동 허용은 물론 최저임금 차등 적용, 파견법 확대, 노조법 개편 등이 과제로 제시되어 있어 저임금 고착화, 불안정 비정규직 확대, 단결권 침해 등이 우려된다.

윤석열 정부 노동정책은 문재인 정부와 비교하더라도 차이점이 명확하다. 무엇보다 문 정부에서 역점을 뒀던 노동기본권 보장,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차별 해소, 사회적 대화, 중대재해 예방 등 개선방향을 윤 정부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여성가족부와 고용노동부 연동과제인 성평등, 사회적 차별 해소, 일과 삶의 균형 과제 등은 '누구나 소외되지 않는' 형태로 추상화되었거나 사라졌다.

국정과제를 단순 비교하더라도 노동존중은 노동개혁으로, 노동기본권 제고는 노동유연화로, 사회적 대화는 법과 원칙으로 바뀌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전 부처에 규제혁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고용·노동분야 덩어리 과제 규제 목록에 중대재해처벌법을 포함한 것은 이를 잘 반증한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은 15년 전 이명박 정부 시기와 연속성을 갖고 있다. 우선 자유시장 경제를 강조하고 규제 완화와 혁신을 중요시하는 윤 정부의 정책 방향이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 정책 문서들에서도 잘 나타난다.

사업주 처벌 조항 축소·삭제 우려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과 조합원들이 1일 서울 동대문구 DDP 앞에서 집결해 ‘멈춰라 노동탄압! 개정하라 .3조’ 윤석열 정권 규탄! 민주노총 결의대회의 일환으로 숭례문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 이희훈

   
이명박 정부는 노사 갈등에 대한 강경 대응 방침을 천명하고 이를 '노사관계 법치화'로 개념화했다. 이에 대해 당시 정부는 "법과 원칙을 준수하는 관행을 확립하는 것으로, 노사 간 자율협상을 유도하되 기업의 불투명한 경영행위 및 불법 노사분규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법을 집행한다는 정책기조"라고 정의했다.

당시 정부는 법과 원칙 준수, 노사관계 혹은 노동시장 선진화, 노동 유연화, 공공기관 효율화·선진화 등을 핵심과제로 제시했다. 특히 경제부처 주도로 노동시장 선진화 방안을 추진했고, 주요 내용으로 '노사관계 법치화'와 '선진형 노사관계 기틀 마련'을 담았다. 윤석열 정부도 '법치 기반의 노동 개혁'을 2023년 중점과제 중 하나로 추진한다고 밝히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개혁을 "노동제도 관련 유연성, 노사 협상 관련 공정성, 노동자들의 안전, 노사 법치주의 관련 법적 안정성"이라는 4대 원칙으로 구분했다. 노조 회계 투명성을 언급하면서는 '노조 부패'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우려스러운 것은 앞으로 정치 지형에 따라 추진될 법률 개정이다. 현 정부의 노동개혁은 근로기준법(10개), 파견법(3개), 노조법(2개) 개정을 통해 제도화될 것이다. 이는 노동조건 악화나 노동권 침해를 초래할 것이다.

게다가 법률 위반시 적용될 기업 및 사업주의 처벌 조항(근로기준법 110조 111조, 파견법 43조, 노조법 46조 90조, 중대재해처벌법 6조 등)의 축소 혹은 삭제 개정안까지 논의하고 있다는 것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 조항들은 경영단체들이 정부와 국회에 지속적으로 요구한 대표적 개정 희망 목록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보수정부 집권 시기 노동개혁의 목표는 일관되게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와 '협력 혹은 상생 노사관계 확립'이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화 근원을 한국 사회 자본주의 발전 경로나 생산양식과 산업구조에서 찾기보다는 노동조합의 기득권 탓으로 돌리고 있다.

최근 노동조합 회계 투명성이나 파업 혐오와 같은 낙인화 프레임이 대표 사례다. 윤석열 정부의 자유시장 국가 포퓰리즘적 이데올로기 언어와 문법들이 잘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 영국(마거릿 대처 정부)과 미국(로널드 레이건 정부)에서 나타난 업무개시명령이나 노동조합 탄압들과 유사한 상황이 이미 지난 몇 개월 사이에 재현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자유시장과 경쟁을 추구하는 '시장정의'가 '사회정의'를 압도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산업혁명 이후 시장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한 적이 있었던가. 이윤 추구자들은 규칙과 규제를 회피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그 본성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본의 탐욕이 끝이 없기에 사회적 규제를 통해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이다.
 

김종진 / 사단법인 유니온센터 이사장 ⓒ 김종진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김종진 사단법인 유니온센터 이사장은 한국산업노동학회 운영위원과 우분투재단 운영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관심 영역은 불안정 노동이나 노동시간, 감정노동, 정의로운 전환 등 다양한 노동과 청년 의제를 정책화하고 실천적으로 사회 의제화하는 것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사회권 전문위원, 청년정책조정위원회 실무위 부위원장 및 서울시, 경기도 정책자문위원을 역임했습니다. 주요 저서로 <노동자의 시간은 저절로 흐르지 않는다>, <숨을 참다> 등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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