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년의 은행나무
김종길
천년 전 마의태자의 전설이 서린 은행나무굳이 동양에서 가장 크고 오래되었다는 말이 아니더라도 용문사 은행나무를 직접 보니 그 위용은 소문대로 대단했다. 가지마다 무성하게 돋은 잎들은 천년의 시간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푸르렀다.
저마다 주장이 다른 이 나무의 나이는 대략 1100년 이상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놓은 것이 자랐다고도 하고, 신라의 마지막 왕자 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으로 가던 중에 심었다고도 한다. 그 사실이야 어떠하던 간에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은행나무는 거룩해 보였다.
이 나무는 오랜 세월과 전란 속에서도 불타지 않고 무사히 살아남아 천왕목天王木이라고도 불렀으며, 조선 세종 때에는 정3품 이상에 해당하는 당상직첩을 받기도 했다. 높이 41m, 가슴둘레가 11.2m로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되어 있다.

▲ 용문사 경내
김종길
거대한 은행나무 때문인지 경내는 의외로 비좁았다. 조선 초기에는 절집이 304칸이나 들어서고 300명이 넘는 승려들이 모일 만큼 번성했다고 하나 그렇게 보기에는 터가 너무 비좁아 보인다. 지금의 터로 보면 도무지 상상이 안 되니 아마도 인근에 있는 암자터까지 포함한 것이 아닐까 싶다.

▲ 경내의 부도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가면 정지국사 부도가는 길이다
김종길
정지국사 부도 가는 길용문사는 진덕여왕 3년인 649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892년에 도선국사가 중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조선 태조 때 조안대사가 중창하였는데 그의 스승이 정지국사이다.
정지국사는 천마산 적멸암에서 입적을 했는데 입적에 든 지 3년 만에 부도와 비가 용문사에 세워졌다. 경내 한쪽에 있는 부도군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가면 정지국사 부도와 부도비가 있다.

▲ 용문사
김종길
정지국사 부도로 가는 길은 청정 그 자체이다. 무리지어 보이던 사람들도 이곳에서는 볼 수 없다. 한 300여 미터 갔을까. 갈림길이 나오면서 왼쪽으로 부도비가 얼핏 보인다.
부도비는 편편한 천연의 바위에 조촐하게 서 있다. 안내문만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지도 모른다. 본래는 지금의 자리 위쪽 바윗면에 있었다고 한다. 이수도 없고 자연석을 비좌로 삼아 그 자연스런 경지를 엿볼 수 있다. 비문은 당대의 학자인 권근이 지었다.

▲ 정지국사 부도비(위)와 부도(아래). 보물 제531호
김종길
부도비에서 100보 정도 올라가면 부도가 있다. 울창한 솔숲이 둘러싼 언덕에 부도는 자리하고 있다. 한눈에 봐도 편안한 느낌이 든다.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난 정지국사는 나옹선사, 무학대사와 동시대를 산 승려이지만 오직 수도에만 전념해 두 사람에 비해 덜 알려져 있다.
정지대사는 천마산 적멸암에서 72세로 입적을 하고 난 후 제자 지수의 꿈에 나타나 사리를 수습하라고 분부를 내린다. 마침 그때에 제자 조안이 용문사를 중창하고 있었기에 사리를 수습해 용문사에 부도와 부도비를 세웠고, 태조가 정지국사로 추증했다.

▲ 정지국사 부도에서 사찰 입구로 이어지는 산길. 1km 남짓 짧은 길이지만 숨 막힐 듯 아름답다.
김종길
청정한 숲길 1km 남짓숲에 가만히 누웠다. 천년의 시간이 숲에 오롯이 담겨 있다. 이따금 오르내리던 등산객마저 사라지자 숲은 이내 깊은 적막에 쌓였다. 멀리서 설핏설핏 보이는 듯 들리는 듯 새소리가 전부다. 가지에 바람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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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의 소리 숲의 소리를 들어 보세요 ⓒ 김종길
한참을 그렇게 있다 간신히 몸을 세워 산길을 걸었다. 푸르다 못해 검은빛마저 감도는 나뭇잎들이 바람에 살랑였다. 이 산길은 구불구불 1km 남짓 이어졌다.

▲ 친환경농업박물관 앞의 무논
김종길
산길을 나오니 친환경농업박물관이 보였다. 박물관 앞에 모내기를 막 끝낸 작은 무논이 있었다. 이곳에서 문득 90세의 나이에도 노동을 했던 백장선사의 말이 떠올랐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一日不作 一日不食.' 그의 일갈이 왜 갑자기 떠올랐을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블로그 '김천령의 바람흔적'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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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미식가이자 인문여행자. 여행 에세이 <지리산 암자 기행>, <남도여행법>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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