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민(31세, 남)

동민씨가 태어난 날,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동민씨 할아버지는 지게를 지고 밖으로 나가셨다고 한다. "장손이 태어났으니, 일을 더 열심히 해야 한다"며 기쁨을 그렇게 표현하셨단다. 전주 이씨 항렬 돌림자 '동(東)'에 백성 '민(民)'을 넣어 지어준 이름. 엄마는 "편하게 살으라고 그리 지었는데, 너무 편하게 지었나 싶어요"라며 후회했다.

동민씨는 대학교 졸업 후 26살 곧장 취직했다. 설계사로 들어간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몸에 이상을 느꼈다. 자가면역질환이었다. 컨디션이 안 좋으면 눈과 몸이 부었다. 병원에서는 악화되면 척추 밑으로 마비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치료에 돌입했다. 그렇게 2년을 쉬고 건강을 회복했다. 현장에서 기계 만지는 게 좋다며 기숙학교에 들어가 새로 기술을 배웠다. 새로운 회사에 취직도 했다. "내 길을 찾았다"며 회사에 적응해 여유가 생긴, 2년차 직장인이 됐다.

시골에서 올라온 80kg짜리 쌀포대도 혼자 들었던 키 179cm의 건장한 아들. 엄마는 아무리 수많은 인파 속이었지만 '동민이가 왜 못빠져 나왔을까' 의문이라고 했다.

"그냥 제 생각인데요. 옆에 사람들, 작은 여자들 지키려고 하지 않았을까... 자긴 힘이 있으니 밀려도 버텨서 못 밀리게 하자, 하다가 넘어져서 그랬지 않았을까요. 그 힘으로 못 막았겠어요. 엄마한테 하듯이 하다가 그러지 않았을까... 안타까워 죽겠어요."

그렇게,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날개"가 꺾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