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23세, 여)

지현씨는 뭐든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해내고야 말았다고 한다. 진학 문제도 그랬다. 전북 김제에서 중학교를 다니던 지현씨는 전북 익산에 있는 마이스터고를 가겠다고 했다. 담임선생님, 부모님 모두 "공부 잘하는데 일반 고등학교 가서 대학 입시 준비하자"고 했지만, 지현씨는 단호했다. "엄마, 내가 성인이 될 즈음엔 내가 가고 싶을 때 대학 갈 수 있어요, 필요해지면 그때 갈게"라며 부모님을 설득했다.

뜻대로 마이스터고를 졸업했고, 뜻대로 졸업 후 바로 취업에 성공했다. 큰 제약회사에 입사했다. 만 4년 꼬박 회사를 다니다, 이제는 대기업에 다니고 싶다고 했다. 2021년 5월, 삼성전자에 합격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쭉 함께였던 남자친구도 동시에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양 집안의 경사였다.

"이제 다 이뤘는데, 누리기만 하면 되는데. 우리 지현이가 얼마나 억울할까요."

이태원 참사로 딸을 보내고, 엄마는 겨울에 눈이 오는 것만 봐도 봄바람이 불어와도 비가 와도 햇살이 뜨거워져도 가슴이 아리다고 했다.

"지난 겨울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는데, 지현이가 눈으로 오는 것 같더라고요. 봄바람에도 지현이 냄새가 나는 거 같고요. 초저녁에는 서쪽 하늘에 작은 샛별이 집 쪽으로 반짝 떠요. 그것만 봐도 우리 지현이 같아서 멍하니 바라봐요. 화려한 가을이 오면 이제는 더 우울할 거 같네요..."

10월도 12월도 3월도, 어느 달도 가슴 아프지 않은 달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