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단이(25세, 여)

혼자 여행가기는 해봤지만, 유럽 여행은 못 가봤다. 남동생 용돈 주기는 해봤지만, 엄마·아빠 여행보내주기는 못했다. 버킷리스트 1번으로 적었던 '모아이 석상보기', 5번으로 적었던 '엄마 명품백 사주기'에도 완료∨ 표시를 남기지 못했다. 어릴 적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다는 김단이(1997년생)씨는 '내 이름으로 된 책 내보기, 출판사 관련 일해보기'를 바랐지만 이루지 못했다. 무사히 서른 혹은 마흔을 맞았다면 끝내 해냈을지 모를 바람들이었다.

지난 21일, 전주 풍남문 광장에서 만난 엄마(51)·아빠(57)는 "말주변이 없다"며, 대신 단이씨가 적었던 수첩을 꺼내보였다. 2018년에 적고, 2020년에 1차 체크, 2022년에 2차 체크를 마친 단이씨의 버킷리스트였다. 이 목록들에 "단이가 하고 싶던 것들이 잘 적혀있다"고 했다. 총 32개가 빼곡히 적힌 리스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현실감을 더해갔다. '옷 가게 큰 데에서 일해보기' 옆에는 '힘들어'라는 코멘트를, '적당히 유명한 사람 되기' 옆에는 '안돼도 돼'라는 코멘트를 단이씨 스스로 달았다.

그리고, 엄마의 손 끝은 9번 버킷리스트 '멋진 할머니 되기'에 오래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