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같이 나이가 어중간한 사람들은 임대주택 못 들어가요." 김상민(50, 가명)
"정부가 중년들을 신혼부부나 청년들보다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 아닐까요?" 이상현(66, 가명)
대학동 고시원에 사는 김상민(50, 가명)씨는 공공임대주택 입주 신청을 6차례나 했지만 모두 탈락했다. 주거급여를 받는 취약계층에 속하지만 다른 경쟁자가 너무 많았다. 50세란 나이가 애매하다. 고령자에 비하면 입주 가점을 받기 어렵다.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하지 못한 그는 대학동 고시원을 전전하면서 살고 있다.
<오마이뉴스>가 지난 8월 10일부터 8월 21일까지 실시한 대학동 거주민 심층 설문조사(설문조사 기사 링크 5편)에 참여한 100명 중 공공임대주택 입주 신청을 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모두 14명이었다. 이들은 모두 입주대상자가 되지 못해 대학동 고시원에 머물고 있다. 탈락 이유로는 '경쟁이 치열했다'는 응답이 33.3%였고, '이유를 잘 모르겠다'는 응답도 40.7%였다. 독거중년들을 위한 임대주택이 부족하지 않느냐는 물음에는 100명 중 70명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열악한 주거 환경은 대학동에 사는 독거중년 만의 고민은 아니다. 최근 독거중년 수가 증가하고 있고 이들 10명 중 1~2명은 고시원 등 열악한 주거로 내몰리고 있다. 정부의 주거 정책이 신혼부부와 청년에 집중되면서 '중년'은 소외된 탓이 크다.
“공공임대주택”
우리 같이 나이가 어중간한 사람들은
임대주택 못 들어가요.
임대주택 못 들어가요.
정부가 중년들을 신혼부부나 청년들보다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 아닐까요?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 아닐까요?
50대, 남성일수록 열악한 곳에 산다
독거 중년 가구는 2015년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의 연도별 인구총조사 자료를 보면, 35~64세 중년 1인 가구는 지난 2015년 250만2035가구였다. 2016년 259만1587가구, 2017년 270만8039가구에 이어 2018년에는 280만3503가구로 점점 늘고 있다.
열악한 주거 환경에 놓인 중년층의 비율도 높게 나타난다. 국토연구원이 지난 2월 발표한 '1인 가구 증가 양상과 주거 특성에 따른 정책 대응방향' 보고서를 보면, 전체 1인 가구 중 고시원과 쪽방 등 최저주거기준 미달인 주거지에 거주하는 1인 가구는 10.7%였다.
이중에서도 40~50대의 상황이 좀 더 심각하다. 연령대별로 보면 최저주거기준 미달인 곳에 거주(비적정주거)하는 비율은 50대 16.2%, 40대 12.5%로 평균보다 높게 나타났다. 청년층인 20대(10.7%)와 고령층인 70대(6.1%)와 비교해도 높은 수치다.
여성보다는 남성이 더 문제다. 50대 남성으로 좁혀보면, 22.8%가 비적정주거에 살고 있었다. 10명 중 2명꼴이다. 60대 남성도 18.5%, 40대 남성도 16.0%가 최저주거기준 미달인 곳에 거주하고 있었다. 박미선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중년 독거 남성의 경우 직장 외에는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는 경우가 없다"며 "이혼을 하고 직장을 잃게 되면 기댈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은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독거중년은 정부 주거 정책의 사각지대다. 정부가 지난 2017년 발표한 주거복지로드맵 자료를 보면 "저출산, 고령화 등 사회구조적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주거환경 조성, 청년과 신혼부부 주거부담경감을 핵심 국정 과제로 선정했다"고 돼있다. 82페이지에 달하는 주거복지 로드맵을 모두 살펴봐도 중년만을 대상으로 한 주거 정책은 찾아볼 수 없었다. 주거복지 로드맵을 알기 쉽게 설명한 주거복지 사용설명서에도 주요 대상은 '청년·신혼부부·고령가구·저소득층'로 한정했다.
행복주택과 영구임대주택의 입주자들을 연령대별로 분석해 보면 이런 정책 기조가 확연히 드러난다.
4,50대 1인 가구의 주거유형별 증감추이
4,50대 1인 가구가 5년간 8.3%p 증가하는 동안, '주택이외의 거처' 1인 가구는 14만여 가구에서 19만여 가구로 32.7%p 증가했다(데이터 출처: 통계청 인구 총 조사)
장래 가구 유형별 추계(2000-2047)
통계청은 2047년 1인 가구가 832만여 가구로 증가할 것으로 추계했다. (데이터 출처 : 통계청 장래가구추계)
행복주택은 청년, 영구임대는 고령자... 중년들은?
시세의 60% 수준으로 공급하는 행복주택은 만 19~39세 이하 청년층, 만 65세 이상 고령층에게만 우선 입주 자격을 준다. 나이만 기준으로 보면 40~50대 중년층은 아예 입주 대상이 아니다. 그 결과 행복주택에 입주하는 중년층은 극히 소수에 그친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서울 지역에 공급된 행복주택은 총 9151호인데 이중 7335호에 10~20대 청년층이 입주했다. 전체 공급량의 80.1%가 청년층에게 돌아간 것. 반면 40~60대 중년들은 973명만 행복주택에 입주했다. 전체 공급량의 10%에 불과한 수치다.
월 10만원 수준의 임대료로 머물 수 있는 영구임대주택도 비슷한 실정이다. 장애인이나 국가유공자, 신혼부부 기초수급자 등에 우선권이 주어진다. 청년층이 대다수인 행복주택과 다르게 영구임대주택은 70대 이상 고령자가 대다수다.
서울 지역의 영구임대주택은 총 2만1975호인데 입주자 중 70대 이상이 8793명으로 가장 많고, 60대도 7573명에 달했다. 50대(3825명)와 40대(1186명) 입주자 비율은 전체의 20% 수준이다. 공공임대주택도 총 1만6950호 가운데 40·50대 입주 비중은 32.11%였다.
중년 1인 가구 점점 늘어나지만
독거중년이 기대해볼 수 있는 정책은 올해부터 본격 시행된 주거상향지원사업이다. 이 사업은 고시원·쪽방 등 비주택 거주자들을 상대로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사업이다. 독거중년에게 그나마 입주 기회가 돌아갈 수 있는 정책이지만, 입주 물량은 턱없이 부족하다.
2020년부터 2025년까지 주거상향지원사업에 배정된 임대주택 물량은 1년에 8000가구 정도(2025년까지 4만호 공급)다. 정부가 2025년까지 청년에게 35만호, 신혼부부에게 55만호 주택을 공급하기로 한 것과 비교하면, 초라한 수치다. 고시원 등 비적정 주거 가구가 총 37만 가구(2017년 국토부 조사)인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이 때문에 정부의 주거정책 방향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거권을 연구를 하고 있는 임세희 서울사이버대 교수는 "현재 주거 정책은 국민 기본권 측면에서의 주거권 보장이라기보다는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신혼부부와 청년 등 특정 계층에 정책 수요가 집중되면서 이에 해당되지 않는 계층은 주거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불균등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비판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도 "정부가 청년과 신혼부부, 고령자에게 공공주택 배정의 우선 순위를 두면서 중년 등 다른 연령층에 배정되는 공공주택은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청년과 신혼부부에는 연간 공급 목표가 설정돼 있지만, 중년 대상 공급 물량 계획이 없는 점은 정책 결정자가 제고해야 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국회에서도 중년 주거 정책이 미흡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자료를 내고, "전체 1인 가구 중 중장년 비중이 높아지고 있으나,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정책에서 중장년 1인 가구를 위한 지원 정책은 없다"고 꼬집었다. 박 의원은 지난해 10월 4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국정감사에서 변창흠 LH 사장을 상대로 중장년을 위한 주거복지 정책의 필요성을 거론했다.
- 박홍근 의원 "중․장년에 대한 국토교통부건 LH건 주거 대책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정책 발표한 게 있나요, 하나라도?"
- 변창흠 LH사장 "중․장년을 따로 하지는 않고 신혼부부나 청년층 또는 노령자 중심으로 많이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변 사장은 "강조점이 빠져있었던 것 같다, 저희들이 유념해서 정책 수립하는 데 적용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 뒤에도 도드라지는 중년 주거 정책은 나오지 않았다.
"중년 1인 가구 한계는 20만... 이들이 거리로 내몰리면 심각한 사태"
주거복지 정책을 담당하는 국토교통부는 '청년이나 신혼부부처럼 중년만을 대상으로 하는 주거정책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다. 국토부는 중년을 위한 별도 정책을 마련하지 않고도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주거 상향 정책을 통해, 상당수 독거중년들을 지원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돼 있다는 입장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쪽방이나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별도의 주거 상향 정책을 시행하고 있고, 쪽방이나 고시원에 3개월 이상 거주 시 임대주택 우선 입주자로 선정될 수 있다"며 "저소득 중장년층의 경우 대부분 쪽방이나 고시원에 거주하는 만큼, 이런 정책으로 저소득 중년에 대한 주거 지원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다만 공공임대주택 재고율은 10% 미만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과 비교하면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라 임대주택 입주 희망자들을 모두 포괄하지 못하는 문제는 있다"면서 "주거복지 로드맵에 따라 공공임대주택 비율을 점차 늘려 현재 공공임대 수요를 충족시켜나가야 하는 것은 과제"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의 인식이 너무 안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은영 소장은 "청년과 신혼부부 외에는 모두 취약계층으로 분류하면서 연령대별 공공주택 수요가 얼마인지, 또 적정한 공급량은 얼마인지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고 있다"며 "인구와 가구 구조가 급격히 변화하고 중년 1인 가구가 급증하는 지금이라도 정책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박미선 국토연구원 연구위원도 "사회적 네트워크가 단절되는 경우가 많은 중년 1인가구의 경우 잠재적인 한계 가구 수를 20만 이상으로 보고 있다"며 "코로나 사태 등으로 이들의 경제적 빈곤 현상이 지속돼 이들이 대거 거리로 내몰리게 되는 상황이 된다면, IMF 시절 노숙자가 대량 양산된 것 같은 심각한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