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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 노벨상 수상의 1등공신은 부시" - 노벨위원회, '평화의 망치' 든 카터에게 노벨평(0)
  PRESSian.com 2002.10.12 18:38 조회 0 찬성 6 반대 0
"카터 노벨상 수상의 1등공신은 부시" - 노벨위원회, '평화의 망치' 든 카터에게 노벨평화상
[속보, 세계, 사설/칼럼] 2002년 10월 12일 (토) 10:08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78)이 2002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대통령 재임시에는 '최악의 대통령'이란 비난을 받았던 그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지 20여년후 '최고의 세계지도자'로 다시 자리매김된 것이다.

특히 이번 수상은 조지 W. 부시 미정부의 '일방주의 외교'에 대한 국제사회의 심판적 성격도 내포하고 있어, 역대 어느 노벨평화상 수상보다 그 안에 함축된 의미가 깊다는 게 지배적 평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번 카터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일등공신(?)은 부시 대통령인 셈이다.

카터의 노벨평화상 수상의 일등공신은 부시

노르웨이 오슬로의 노벨상 위원회는 11일(현지시각) 지미 카터(78) 전 미국 대통령이 국제 분쟁을 극복하고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81년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 21년만의 영광이다.

노벨상위원회는 선정문에서 "카터 전 대통령은 수십년간 평화와 인권을 위해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며 특히 "무력 사용의 위협이 대두되는 최근과 같은 상황에서 카터 전 대통령은 분쟁은 최대한 국제법에 기반한 중재와 국제 공조를 통해 해결돼야한다는 원칙을 지켰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유엔을 무시한 일방적 이라크전 추진 등으로 지구촌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는 부시 미 정부에 대한 우회적 비판 메시지였다.

군나르 베르제 노벨위원회 위원장은 이와 관련, "카터 전 대통령이 평화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지구촌 곳곳의 분쟁 해결을 위해 진력하는 등 평화운동을 펼쳐온 공로를 기리는 것외에 부시 행정부의 입장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노골적으로 반(反)부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지난 78년 중동분쟁 해결에 기여한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이끌어낸 공로로 이미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된 바 있다. 81년 퇴임후에도 그는 94년 한반도 '북핵위기'를 비롯한 베네수엘라, 인도네시아, 쿠바 등 여러 국제분쟁의 현장에 나타나 평화적 중재안을 제시한 바 있으며, '사랑의 집짓기'로 유명한 해비타트 운동의 선봉으로서 가난한 이를 위해 땀을 흘리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일련의 노력이 그가 특별히 올해의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될 만한 이유는 못됐다. 카터 수상의 결정적 동인은 베를제 노벨위원장이 노골적으로 밝혔듯 "부시 행정부의 입장에 대한 비판"이었다.

카터 수상후 부시의 이라크전 강행방침 비난

민주당 전직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카터는 지난해초 부시의 대통령 취임과 정권인수를 자발적으로 도왔던 몇 안되는 민주당 인사중 하나였다. "민주당의 앨 고어가 대통령이 되기를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원했으나, 소수파 정권(공화당)의 정통성을 보강해주는 것이 전직 대통령이 취해야 할 초당적 자세"라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부시 집권후 반년여가 지난 시점부터는 태도를 달리했다.
카터는 지난해 7월24일 발간된 고향 조지아주의 유력지 컬럼버스 레저 인콰이어러와의 인터뷰에서 "부시 대통령이 하는 모든 일에 실망했다"고 부시의 일방주의적 외교를 통렬히 비판했다. 미국이 이스라엘 편을 들어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군을 철수하도록 압력을 넣지 않고 있는 것, 탄도탄요격미사일(ABM) 금지협정에서 이탈하려는 움직임 등이 비판대상이었다.

이같은 비판은 최근 부시가 국제여론을 무시하고 이라크전을 강행하려 하면서 극에 달했다.
카터는 지난 9월 23일 버지니아대학교에서 행한 강연에서 "유엔의 지지가 없는 군사적 행동은 미국을 위험에 빠뜨리는 중대한 실책이 될 것"이라며 부시를 비판했다. 카터는 "부시는 과거 50여년간 여야를 가릴 것 없이 미국 대통령이 존중해 왔던 전통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같은 반(反)부시적 평화주의 노선이 결국 그를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만들었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카터 전 대통령은 실제로 11일 애틀랜타 카터 센터에서 발표한 노벨평화상 수상 수락성명에서 "전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전쟁과 압제가 없는 공동체를 꿈꾼다"며 부시 대통령에 대해 전쟁의 대안을 찾기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라고 주문했다.

그는 이어 CNN 방송 회견에서도 "나는 특별히 부시 대통령의 정책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하고 싶지는 않으나, 전쟁으로 나아가기 전에 협상이나 중재를 동원해보고 이라크의 경우에 이같은 수단이 불가능하다면 유엔을 통한 해결방식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에 투영된 카터의 두가지 상반된 이미지

역대 미 대통령이 다 그러하지만, 카터는 특히 우리나라와 밀접한 역사적 관계를 맺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우리에게 두가지 상반된 이미지로 비춰지는 인물이다.

우선은 부정적 측면이다. 80년 5월 광주민주화항쟁 과정에 보인 미국의 태도다. 카터는 당시 미국의 현역 대통령이었다.

"피고인들은 기소된 내란 및 내란목적살인죄, 집단살해죄, 인도에 반한 죄에 관하여 모두 유죄이다."

지난 5월 20일 광주에서 열린 5.18 민중항쟁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묻는 '5.18 시민법정'(재판장 최병모)에서 재판부는 지미 카터 당시 미 대통령 등 피고인 8명 전원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시민법정은 또 피고인들에 대하여 "피해자들과 대한민국 국민에게 국제적 관례에 따라 공개적으로 사죄하는 조치를 취하라"고 주문했다.

80년 당시 우리 국민들은 '인권 대통령'을 자처하던 카터 대통령이 광주학살을 방임 또는 용인하는 태도에 강한 배신감과 분노를 느꼈었다. 카터는 이에 대해 아직까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다른 하나의 이미지는 대단히 긍정적인 것이다. 94년 한반도에는 '북한핵 위기'로 제2차 한국전 발발이 우려될 정도로 긴장감이 팽팽했었다. 이때 카터가 나서 평양으로 들어가서 김일성 당시 주석과 독대, 극적 해결책을 도출해냄으로써 전쟁을 막았다.

카터는 부시정권 출범후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져들자 지난해 자신이 남-북의 중재자가 돼 평양에 들어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공개리에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지지하기도 했다.

카터는 이밖에 가난한 이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 운동을 우리나라에서도 적극적으로 펼침으로써 '평화의 망치를 든 대통령'이란 애칭을 얻기도 했다.

카터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이같은 제반 측면을 고려할 때 "역시 노벨평화상은 국제 파워게임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하겠다. 카터의 수상은 부시의 일방주의적 전쟁노선이 얼마나 국제사회의 거대한 저항에 직면해 있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인 셈이다.

박태견, 이영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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