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운 검찰개혁추진단 자문위원장(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 9일 '보완수사권 폐지' 주장에 반대 의사를 밝히며 사퇴했습니다. 박 교수가 페이스북에 올린 '검찰개혁을 가로막는 다섯 가지 착각'에 대한 글을 그의 동의를 얻어 싣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검찰개혁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소개합니다.[편집자말] ▲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 검찰기. ⓒ 연합뉴스 검찰개혁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이제 이견이 없다. 문제는 개혁의 방향과 방식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검찰개혁 논의는, 개혁이라기보다 집단적 착각에 가까운 지점으로 흘러가고 있다. 나는 다음의 다섯 가지가 검찰개혁을 구조적으로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본다. ① 수사·기소 분리 원칙에 대한 맹신 검사제도를 갖고 있는 어느 나라에도 "검사는 수사에서 완전히 손을 떼야 한다"는 원칙은 없다. 검사는 기소기관이지만, 동시에 기소를 위한 수사기관의 속성을 본질적으로 갖는다. 다만 직접수사가 가져오는 권한 집중과 남용의 위험 때문에, 직접수사는 경찰이 담당하고 검사는 이를 지휘·감독하는 구조를 택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검찰권 남용의 문제를 이유로 수사권 자체를 박탈하는 것이 개혁의 정답처럼 유통되고 있다. 이는 비교법적으로도, 제도사적으로도 거의 유례를 찾기 어려운 방향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수사·기소 분리가 개혁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버렸다. 이 맹신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검찰개혁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② 검찰권 피해 경험이 개혁 담론을 장악한 구조 수사·기소 분리를 강하게 외치는 정치인들 중 상당수는, 과거 검찰권 행사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하는 사람들이다. 나도 안다. 나도 분노했다. 나도 그들의 선의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그 개인적 경험이 정책 판단의 기준이 되었고, 그것이 지지자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절대선의 서사로 굳어졌다는 점이다. 이제 검찰개혁을 지지하는 많은 국민은 "수사·기소 분리가 아니면 검찰개혁은 실패한다"는 믿음에 도달했다. 이는 논리적 설득의 결과라기보다 반복과 감정의 축적이 만든 세뇌에 가깝다. 제도개혁이 감정 정치의 하위 영역으로 전락한 것이다. ▲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 검찰기. ⓒ 연합뉴스 ③ 검사 집단에 대한 악마화 정치권의 무차별적인 검찰 공격은 결국 모든 검사를 불신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이제는 검사가 무슨 말을 하든, "검사니까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 먼저 나온다. 이는 제도적 신뢰의 붕괴가 낳은 비극이다.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은 신뢰 없이 작동할 수 없다. 특정 권한의 남용을 비판하는 것과, 하나의 직역 전체를 악마화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지금 우리는 그 선을 이미 넘어섰다. 집권세력이 검사를 악마화해서 얻을 것은 없다. 그들도 공무원 조직에 불과하니, 다뤄야 하고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악마화는 사실 집권세력이 무언가 콤플렉스에 빠져있는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④ 제도개혁에 대한 위험한 환상 한국의 개혁 담론에는 유독 법률만 바꾸면 현실이 즉각 바뀐다는 순진한 믿음이 깔려 있다. 5년짜리 정권이 법 몇 개 고치면, 한 세기 가까이 작동해 온 국가 시스템이 매끄럽게 재설계될 것이라는 환상이다. 그러나 제도가 작동하는 것은 법문이 아니라 축적된 운용의 결과다. 급격한 구조 변경은 필연적으로 공백과 혼란,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부작용을 낳는다. 그럼에도 개혁 주도 세력은 이 위험을 지나치게 가볍게 취급한다. 이는 개혁이 아니라 무책임한 실험에 가깝다. ⑤ 국민에게 전가될 비용을 외면하는 태도 지금 개혁주창자들은 검사의 직접수사뿐 아니라 보완수사조차 원천적으로 봉쇄하지 않으면 검찰개혁은 실패한다고 주야장창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수사의 공백, 비효율적 사건 처리, 억울한 피해 가능성은 애써 외면된다. 분명한 것은 그런 개혁의 비용은 정치인이 아니라 다수의 국민이 치르게 된다는 사실이다. 제도개혁은 최소한 공리주의적 관점, 즉 사회 전체의 피해와 이익을 비교하는 기준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의 논의는 그 기본 요건조차 충족하지 못한다. 검찰개혁은 필요하다. 그러나 분노에 기초한 개혁, 단순한 구호에 기댄 개혁, 제도 전체를 파괴하는 개혁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개혁은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지금 검찰개혁에서 필요한 것은 더 강한 구호가 아니라, 현실에 바탕을 둔 정교한 설계다. 이게 어렵다고? 아니다. 우리가 합의만 하면 짧은 시간 내에 충분히 할 수 있다. #검찰개혁 #수사 #기소 #검찰 10만인클럽 프로필사진 글 박찬운 (chanpark62) 내방 구독하기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스크랩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 공유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사 요약 보기 추천93 댓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