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2

박수받는 의대 2천명 증원, 이렇게 되면 망한다

[주장] 윤 정부의 의대증원 계획, '공공의료' 살리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24.02.12 11:28최종 업데이트 24.02.12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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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6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 앞. 이날 정부는 2025학년 입시에 적용할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 규모를 발표했다. ⓒ 연합뉴스

 
응급실 뺑뺑이 사망 비보가 너무 잦다. 뉴스를 볼 때마다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다. 그뿐인가. 소아과 등 '필수'진료과목 의사가 씨가 말라간다고들 한다. 상상하기도 싫은 제2, 제3의 코로나가 온다는데 코로나19 환자를 도맡아 본 공공병원들은 정부 지원이 끊겨 오히려 문닫을 걱정을 하고 있는 처지다.

한국 시민들이 처한 '의료붕괴'의 현실이다. 이에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답은 의사증원과 수가인상이다. 특히 많은 관심이 의사증원에 쏠려 있다. 물론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실체에서 비롯한 위기의식도 작용했겠지만, 그보다 의사단체의 강력한 반발이 예고된 데다가 정부가 파격적인 숫자를 예고해왔기 때문에 더욱 화제가 된 측면이 있다.

지난 6일, 설 명절을 의식했는지 드디어 윤석열 정부가 의사증원안에 대해 입을 뗐다. 반신반의했는데 역시 까놓고 봐도 해법이라 할 만한 구석이 보이지 않는다. 그 와중에 의사단체들은 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빅매치다! 하지만 팝콘 뜯을 생각조차 안 나는 착잡한 대결이다. 정작 중요한 선수인 '공공의료'는 등판도 못했고, 의료붕괴의 불안 속에 살아가는 시민들은 불구경 말고 얻을 게 없을 것 같아서다.
 
무한 원숭이 정리

'무한 원숭이 정리'는 원숭이가 타자기 앞에 앉아서 아무거나 쳐댄다고 가정했을 때, 이 원숭이가 프랑스 국립 박물관의 모든 책을 언젠가는 쳐 낼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타자기로 쳐낼 수 있는 단어의 조합은 무한한 경우의 수가 있는데, 이론적으로 무한대의 시간이 주어지고 무한한 가상의 원숭이가 참여한다면 우연히 박물관 전체의 책을 입력해낼 경우의 수가 극도로 작은 확률로 존재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무한이라는 것은 현실세계에서 달성할 수 없으므로, 이 사고실험은 보통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이야기할 때 인용된다. 다른 조건은 그대로 둔 채 무작정 의대증원을 한 뒤 낙수효과로 지금의 의료공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정부의 주장은 이 무한 원숭이 정리를 연상하게 할 정도로 희망이 없어 보인다. 

왜 그런지 설명하기에 앞서, 정부가 지금까지 밝힌 의대증원안을 요약하면 이렇다.  
- 공공의대 신설은 계획에 없다.
- 지역의사제(근무지 제한)는 매우 신중하게 생각할 일이다.
- 그냥 기존 의대 정원을 단순 증원한다.
- 그것도 많이! (1년에 2천명씩 입학 증원, 2035년까지 1만명 추가졸업) 


주목해야할 점은 현재 의료붕괴의 근저에 존재하는 가장 큰 모순은 의료에 '공공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 증원안에는 가장 핵심인 '공공성'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려가 완전히 누락되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시작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 의료체계의 특징은 주요한 의료자원 중 두 가지인 병원과 의료인력 모두 전적으로 민간주체에 의해 공급되며 국가는 어떤 조절기능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어떤 병원을 어디에 짓든, 의사들이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각자가 알아서 하도록 두고 국가는 손 놓고 있다는 말이다.

한국 병원의 95%(기관 수 기준)가 민간병원이고, 공공병원은 단 5%에 불과하다는 충격적인 사실은 코로나19 위기를 계기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제는 관용구가 되어버린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등의 문제도 사실 같은 뿌리에 있다. 개업 여부도, 개업할 동네도, 진료 내용도 개업할 개인이 정하기 나름인 민간의료기관들이 95%를 차지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다.

의사인력의 배출도 마찬가지다. 배출된 의사인력이 어디서 어떻게 근무할지에 대해 정부가 개입하는 수단이 전무하다. 이러한 시장방임이 초래한 무계획성의 병폐가 시민들의 목숨을 앗아가기에 이르고 있지만 윤석열 정부는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정부가 버린 것, 실종된 공공성

의대증원 계획은 지금 정부 안대로 기존의 '무계획성'을 양적으로 확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대안인 '공공의료'를 살리는 방향으로 완전히 전환되어야 한다. 이는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이미 여러가지 개입 방법이 제시되고 있다.

현재 구체적으로 회자되고 있는 방안은 문재인 정부가 내놨던 '공공의대'와 '지역의사제'가 있다. 공공의대는 국가가 운영하는 의과대학을 만들고 여기서 양성한 의사들을 공공의료기관에 배치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2020년 당시 공공의대 설립을 결사 반대했던 의사단체의 주장을 인용하며 공공의대 신설은 배제한다는 방향성을 분명히 했다.

'지역의사제'는 이보다 훨씬 느슨하다. 의과대학 과정을 마치고 면허를 발급받은 의사가 지정된 지역에서 일정기간이상 복무하는 조건을 전제한 정원을 만든다는 내용이다. 근무할 기관으로 공공의료기관으로 한정한다거나, 그 지역에 필요한 진료과목으로 한정하는 등 부가적인 제한조건조차 지정하지 않고 그저 그 지역에만 있어달라는 정도의 소극적인 대안이다. 그러나 이마저 정부는 매우 신중한 입장을 취하는 수준이다.

요컨대 사립대학이 대다수인 기존 의과대학들의 정원을 늘리겠다는 게 정부 계획의 전부다. 정부는 비수도권을 중심으로 증원하겠다 했지만, 중요한 것은 대학의 소재지가 아니다. 면허취득 이후 의료 소외지역에서 근무할 것인지, 지역의 필요에 부합하는 의료를 제공하기 위한 교육을 어떻게 제공할 것인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단적으로 울산대 의대도 비수도권 의대지만 졸업생들의 절대다수는 서울아산병원으로 유출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정부안에는 이런 고민이 없다.

또 곁다리로 '지역필수의사제'를 내놓긴 했지만, 이는 현행 제도인 '공중보건장학제도'와 굉장히 흡사한 것으로 사실상 이름만 바꿔 단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개별 학생의 신청에 따라 일정기간 장학금 등 경제적 지원을 한 뒤 의사 면허 취득 이후 특정 지역에 근무하도록 하는 3자계약(학교-지자체-학생) 형태다. 시장주의 의료환경을 전혀 개선하지 않은 채 개인의 자율 신청에 온전히 위임해버린 공중보건장학제도는 실패로 판명되었다. 단적으로 2022년 기준 공중보건장학제도를 신청한 학생은 전국에 단 한 명 뿐이었다.

즉, 정부의 책임이 빠져 앙상한 정부 증원안의 논리는 '낙수효과'와 수가인상이 현재 공백인 '필수의료'영역의 충원을 불러오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의료체계의 무계획성, 완전한 시장주의적 의료환경을 그대로 둔다는 전제라면 배출된 1만명의 의사들이 정부 의도대로 움직일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계획이 없으니 기대할 수 있는 효과도 정량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실정이다.
 
정부가 취한 것, 두 가지
 

8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이동하는 의료진. ⓒ 연합뉴스

 
정부가 의사증원을 두고 반개혁집단인 의사단체와 각을 세우니, 마치 정부안이 대단한 개혁안처럼 보이는 착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로인한 큰 해악 중 하나는 산적한 의료개혁의 과제들이 의사증원이라는 블랙홀에 다 빨려 들어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의사증원은 의료 공공성 강화라는 큰 방향성 안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즉 공공병원 확충과 강화, 일차의료 공공성 구축, 시설사회 탈피를 위한 돌봄의 공공성에 대한 계획을 마련하고 그에 발맞춰 의사인력 증원계획도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공론장에는 앙상한 시장방임적 의대증원만 남았다. 이대로라면 의료취약지역의 주민들이 처한 건강권의 공백, 갈수록 심각해지는 의사 구인난으로 고전하고 있는 지방의료원들의 처지가 답보상태에 처하게 될까 걱정이다.

또 주목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의사증원안의 문제는, 의사증원을 의료영리화의 수단을 마련하는데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파격적인 증원 숫자에 더불어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의사과학자' 양성이다. 윤석열 정부의 일관적인 의료정책 기조는 돈벌이가 될 만한 의료영리화를 위해서는 뭐든지 한다는 기조다.

정부는 출범 초 의료기술의 효과성과 안전성을 검증하는 제도마저 '킬러규제'로 명명했고, 이후 다방면으로 규제완화를 추진해 왔다. 환자를 이윤창출의 도구로 삼는 의료기술과 의약품의 시장진입을 허용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의료상업화, 영리화를 위한 핵심 요소 중 하나는 의과대학과 '의사과학자'이다. '연구'로 포장된 상품개발을 전문적으로 수행할 인력이 바로 '의사과학자'의 실체다. 정부는 필수의료 공백을 명분으로 의사증원을 추진하고 있는데, 정작 '필수의료' 공백 해결과는 아무 상관없는 의료영리화 정책을 끼워팔고 있는 것이다.
 
의사단체들은 윤석열 정권이 2천명 증원을 발표하고 나자 드디어 발칵 뒤집혀 학생협회, 전공의협회, 의사협회까지 투쟁을 예고하며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정부도 지지 않고 의사파업에 강경대응 하겠다며 맞서고 있다.

어떤 증원도 결사 반대하는 의사단체들, 시장 만능론으로 무장한 증원안 밀어붙이는 정부… '공공성'이라는 알맹이는 사라진 채, '강 대 강 대치' 사이에서, 생명과 안전이 존중되는 사회에서 살고 싶은 시민들의 소박하고 평범한 소망은 소외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이서영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기획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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