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4

매 맞지만 명랑한 '더 글로리' 현남, 염혜란이라 가능했다

[TV 리뷰]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글로리>

23.01.12 10:18최종 업데이트 23.01.12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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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글로리>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아무리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한들 복수가 그리 매끄럽게 진행될 리 없다. 설령 십 수년을 바쳤다 해도 모든 변수를 통제하는 건 불가능하다. 게다가 '저들'은 원하는 걸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금수저들 아닌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글로리>의 동은(송혜교)은 학교폭력의 가해자들을 찾아가 그들을 응징한다. 치명적인 약점을 간파하고, 상황을 완벽히 컨트롤한다. 사실상 신의 지위에서 벌을 내린다.

여정(이도현)에게 바둑을 배우고, 도영(정성일)이 다니는 기원에서 그의 눈길을 끌고, 마침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뿐인가.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 이사장의 약점을 잡아 연진의 딸 담임이 돼 나타난다. 가해자 연대의 약한 고리를 파고들어 명오(김건우)와 혜정(차주영)을 떼어내는 데 성공한다. 또, 약쟁이 이사라(김히어라)의 뒷덜미를 잡는다. 그렇게 '악의 축' 연진(임지연)의 숨통을 조여간다. 

이처럼 <더 글로리>는 '비현실적' 복수극이다. 생각해 보면 복수를 다룬 드라마 중 '현실성'에 바탕에 둔 작품이 있었나 싶기도 하다.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SBS <빈센조> <모범택시> 등도 히어로에 가까운 주인공에 의해 응징이 이뤄졌다. 어차피 복수극이 좇는 단 하나의 가치는 '악의 패배', 그로 인한 '카타르시스'이다. 만약 현실적인 복수극이었다면, 그 목표에 이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동은은 비현실적이다. '우연'과 '취향'마저 계산에 넣은 계획부터 복수 앞에 그토록 침착한[유일하게 재준(박성훈) 앞에서는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했다.] 멘탈까지 모든 게 비현실적이다. 다른 인물들도 어딘지 모르게 현실과 거리가 있다. 지나치게 평면적이거나 과장되어 있다. 게다가 김은숙 작가 특유의 우화적 대사가 더해져 그런 경향을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같은 편먹고 싶어요. 나도 그쪽 도울 테니까 그쪽도 날 도와줘요. 내 남편을 죽여줘요." (현남)

현남이 꼬집은 '피해자다움'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글로리>의 한 장면. ⓒ 넷플릭스

 
<더 글로리>에서 유일하게 현실에 두 발을 딛고 있는 인물은 이사장 집 가사도우미 현남(염혜란)이다. 현남은 가정폭력의 피해자이다. 남편에게 상습적인 폭행을 당하며 살아왔다. 지옥 같은 삶이었다. 하지만 자신을 위해 칼을 들고 아빠에 맞서는 딸 선아를 보며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음을 깨닫는다.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면 바로 지금이다. 엄마로서, 현남은 절박하다. 

어느 날, 동은 앞에 나타난 현남은 "같은 편 먹고 싶"다며 서로 도울 것을 제안한다. "내 남편을 죽여"달라는 게 현남의 요구였다. 이사장의 약점을 찾기 위해 6개월 동안 쓰레기통을 뒤지는 동은을 보고 '뭘해도 하겠다'고 기대한 것이다. '피해자' 현남의 간절함을 알게 된 동은은 연대를 결정한다. 가정폭력 피해자가 학교폭력 피해자에게 손을 내밀어 '피해자 연대'가 결정된 것이다. 

"난 매 맞지만 명랑한 년이에요." (현남)

명대사가 많은 <더 글로리>지만,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사는 바로 현남의 "난 매 맞지만 명랑한 년이에요"가 아닐까. 현남이라는 인물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동시에 피해자에 대한 이해가 묻어난 대사이다. 김은숙 작가는 이 한 줄의 대사를 통해 가정폭력 피해자를 단순한 피해자로 박제하는 대신 다층적인 인간으로 그려낸다. 현남은 세상이 강요하는 '피해자다움'에서 벗어난 인물이다. 

운전도 못 하고 카메라를 다루는 것조차 미숙했던 현남은 점차 탐정 일에 흥미를 느끼고, 자신도 몰랐던 탐정 기질을 뽐낸다. 그의 명랑함은 복수를 잊을까봐 웃음조차 잊고 살았던 동은의 마음을 움직인다. 삶은 계란을 건네고, 농담을 친다. 물론 지나치게 가깝다는 걸 인식한 동은이 선을 긋지만, 현남은 동은의 처절한 복수극에서 잠시나마 숨 돌릴 수 있는 휴식처이자 한 줄기 빛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글로리>의 한 장면. ⓒ 넷플릭스

 
물론 아무나 현남을 이렇게 완벽히 연기할 수 없었으리라. 복수를 꿈꾸는 가정폭력 피해자도 명랑할 수 있음을 연기한다는 건 엄청난 내공이 필요한 일이다. 염혜란은 그동안 해왔던 대로 최고의 연기를 펼쳐 보이며, 시청자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현실에 발 딛고 있어야 하는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덕분에 쎈 캐릭터들이 즐비한 <더 글로리>에서 현남은 존재감을 발휘한다. 

김은숙 작가는 제작발표회에서 캐릭터 구상 단계부터 염혜란을 염두에 두고 썼다면서 "마음속 첫 번째 캐스팅"이라고 밝혔다. 처음부터 현남은 염혜람이었다. 그리고 맞춤옷을 입은 염혜란은 김은숙 작가의 기대를 100% 충족시켰다. <더 글로리>의 중심축은 동은의 복수이지만, 시즌2에서 완성될 현남의 복수 역시 궁금하다. 과연 현남은 자신의 삶을 되찾고 명랑한 나날들을 보낼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버락킴, 너의 길을 가라'(https://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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