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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과 빈곤을 없애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실험되고 있는 '기본소득'이 주목할 만합니다. 한편에서 기후변화는 인류의 운명을 가를 절체절명의 문제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적극적인 '기후행동'이 필요합니다.

기본소득을 지급하면서 동시에 기후행동을 촉진하기 위한 방안으로 '녹색참여소득'을 제안합니다. 생태적 이동, 에너지 절약, 친환경 제품 사용 등을 조건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녹색참여소득의 개념, 기본소득과의 차이, 기대효과 등에 대해 연재합니다.

여쭤봅니다. 자동차 대신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을 조건으로 한 달에 수십 만 원의 기본소득이 지급된다면 독자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만약 전기, 가스, 수도의 절약을 조건으로 한다면요? - 기자 말

 
지하철을 기다리는 남자.
 지하철을 기다리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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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참여소득의 지급과 함께 확충되어야 할 것은 대중교통입니다.

'생태적 이동'을 조건으로 녹색참여소득을 지급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도시는 대중교통 중심 도시, 보행친화 도시, 자전거 우선 도시가 돼야 합니다.

일단 '대중교통이 얼마나 더 편리해지는가'라는 점이 중요할 텐데요. 이와 관련해 최근 서울시의 발표가 눈에 띕니다.

"소외지역을 연결하는 강북횡단선 등 10개 노선이 완성되면 서울 지하철은 가장 으뜸가는 지하철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박원순 시장이 지난 4월 23일 서울 도시철도 건설 50년 기념행사에서 한 말입니다. 이날 서울시는 도시철도 노선을 현재의 10개에서 20개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현재 서울시 도시철도 10개 노선의 길이는 351km입니다. 도시철도 노선이 20개로 연장되면 총 길이는 463km가 됩니다.

이 계획을 보면서 드는 느낌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서울 대중교통의 접근성이 훨씬 높아지겠다는 점이고요. 또 하나는 지하철 노선 신설 같은 거대한 규모의 토목공사 말고 다른 방법은 없는가 하는 점입니다.

모든 서울시민이 10분만 걸으면 지하철역에 닿을 수 있는 서울은 참 매력적입니다. 그러나 대중교통 확충이 꼭 막대한 비용을 수반하는 지하철 확대여야 하는가 대해서는 의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도로를 늘리는 것 보다는 지하철을 늘리는 게 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막대한 공사비를 들이지 않고도 대중교통 확충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게 더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씀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중교통이 충분히 확충되지 않으면, 자가용 이용자가 대중교통으로 넘어오게 될 경우 지하철은 지금도 지옥철인데 더욱 지옥철이 될 것이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만원버스에 시달려 파김치가 되지 않겠어?'라고요.

맞습니다. 2018년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잠깐이지만 미세먼지비상저감조치의 일환으로 대중교통 무료정책을 추진했었습니다. 효과가 별로 없었습니다. 바로 앞서 든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요금 몇 푼 아끼겠다고 지옥철과 만원버스에서 시달릴 시민이 많지 않았던 것이죠.

그러니 녹색참여소득을 하려면 대중교통이 지금 보다는 훨씬 확충되고, 시스템도 더 잘 정비돼야 하는 건 맞습니다.

대중교통 확충 없이 자가용을 줄이는 방법

하지만 대중교통의 확충과 정비가 꼭 지하철 10개 노선 추가 같은 사업이 돼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부터는 상상력을 좀 발휘해보겠습니다.

우선 녹색참여소득이 도입되면 자가용 이용자 가운데 대중교통으로 넘어오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을 것입니다. 동시에, 자가용 이용자들이나 대중교통 이용자들 중 상당수가 자전거를 타거나 걷기를 선택할 것입니다.

이미 앞선 연재(4회 : 길바닥에 뿌려지는 30조원, 주워담는 방법)에서 살펴봤듯이, 서울시에서 자가용을 이용해서 출퇴근하거나 통학하는 사람이 약 118만 명입니다. 이 가운데, 만약 20%가 자가용을 이용하지 않는다고 하면 약 24만 명이 대중교통이나 걷기, 자전거 타기로 이동할 것입니다.

이 사람들 모두가 단 한 명도 빠지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되면 대중교통의 확충 이전에 녹색참여소득 도입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대중교통이 아니라 걷기나 자전거를 선택할 사람들이 적지 않을 테니 그런 염려는 기우입니다. 게다가 애초 대중교통 이용자 가운데 걷기와 자전거 타기로 옮기는 사람들도 많아집니다.

서울시에서 버스·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사람이 하루에 215만 명입니다. 이들 중 이번에는 좀 적게 잡아 15%가 걷기와 자전거로 넘어간다고 치면요, 그 경우에도 인원이 30만 명 이상입니다.

그러니 녹색참여소득 구상은 대중교통의 확충 없이 자가용 이용을 줄일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대중교통을 대체하는 걷기와 자전거 타기
 
지하철을 타기 위해 마을버스를 타시나요? 걸어가시나요?
 지하철을 타기 위해 마을버스를 타시나요? 걸어가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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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참여소득 시민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할 것입니다. 사실 평소에도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는 거리인데도 자가용 등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녹색참여소득은 이런 경우를 현저히 줄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타는 사람 가운데 5명 중 1명은 15분 이하로 자동차를 운행합니다. 이런 경우는 모두 걷거나 자전거를 타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지난 2011년에 정부가 국민들이 자전거를 많이 타도록 하게 하기 위해 계획을 세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15분 이하로 자동차를 이용하는 사람 중 10%를 보행자로 전환하자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지하철을 타러 갈 때에도 우리나라는 반 이상의 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갑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걸어서 지하철역까지 가는 사람은 10%에 불과합니다. 자전거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가는 사람은 0.05%, 그러니까 2000명 중에 한 명뿐입니다. 그러나 녹색참여소득이 도입되면, 걸어서 혹은 자전거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가는 사람들이 대폭 증가할 건 자명합니다.

또한, 마을버스 구간의 경우에도 많은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방법을 택할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사는 곳은 지하철역에서 부지런히 걸으면 10분, 천천히 걷더라도 15분이면 닿는 거리입니다. 그런데 항상 지하철역에 내리면 마을버스가 오기를 기다리죠.

그렇게 10분, 15분 기다리다 보면 "에이 그냥 걸어갈 걸 그랬네" 하고 후회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만약 녹색참여소득이 저에게 지급된다면, 저는 지하철역에서 내리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걷기 시작할 겁니다.

이러다 보면,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 버스 한두 정거장 거리쯤은 걸어 다니는 습관이 어렵지 않게 형성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양상은 다양하겠죠. 퇴근 시간에 한 정거장 정도를 미리 내려 집에 간다거나, 차를 몰고 마트에 가서 사려고 했던 물건을 동네 시장에 걸어가서 사온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대중교통의 편의성 확대

이렇게 시민들이 걷거나 자전거를 타면 거리엔 자동차가 줄어들고, 대중교통 이용자는 적정 수준에서 유지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줄어든 자동차로 여유가 생긴 도로에는 더 많은 지상대중교통수단들이 들어설 수 있습니다.

서울의 경우 강변북로, 내부순환도로, 88올림픽 도로, 남부순환도로 등 자동차 전용 도로가 많습니다. 이 자동차 전용도로들은 서울 내외를 연결하는 간선도로입니다. 간선도로 덕에 자동차 이용자들의 이용은 편리해졌지만, 사실 바로 이 간선도로들 때문에 자동차 이용이 더 늘어납니다.

넓어진 길은 자동차 사용을 증가시키고, 늘어난 자동차는 길을 다시 넓히는 이유가 됩니다. 교통체증이 도로 확장으로 해결되지 않는 이유입니다. 오히려 정반대의 발상이 필요합니다. '도로를 좁혀야 자가용 승용차의 사용이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일명 '도로 다이어트'입니다. 도로를 줄이고 대신 자전거 도로와 보행로를 넓히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이미 여러 도시에서 시행되고 있는 '도로 다이어트'의 개념은 사실 주요 간선도로에 적용돼야 합니다. 줄어든 자가용 승용차 전용차로는 자전거 도로와 보행로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단 버스 차로가 도입되면 됩니다.
 
대중교통은 더 확충돼야 하고, 더욱 편리해져야 합니다. 그러나 대중교통 노선의 물리적 확충만으로는 자가용 승용차의 이용을 줄일 수는 없습니다.
 대중교통은 더 확충돼야 하고, 더욱 편리해져야 합니다. 그러나 대중교통 노선의 물리적 확충만으로는 자가용 승용차의 이용을 줄일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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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상상해 보시죠. 강변북로와 내부순환도로, 남부순환도로에 간선급행버스가 다닌다면, 지하철 몇 개 노선이 생긴 것과 똑같은 효과가 생깁니다. 간선도로에 시민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정류소를 곳곳에 만들어야 하는 건 물론입니다.

녹색참여소득이 시행된다면 이런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획기적으로 줄어든 자동차, 자동차 전용도로 위를 새롭게 달리는 버스가 보여줄 도시는 이전과는 다른 모습일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동차 이용자 수를 줄이면서도, 동시에 거대한 규모의 토목공사 없이도 대중교통의 이용은 대폭 확충할 수 있게 됩니다.

대중교통 이용자수를 늘리기 위해

정부는 2021년이 되면 대중교통 이용자수가 50만 명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2040년이 되면 무려 640만 명이나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자가용 승용차는 늘어나고, 게다가 인구는 감소할 것이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므로 대중교통은 더 확충돼야 하고, 더욱 편리해져야 합니다. 그러나 대중교통 노선의 물리적 확충만으로는 자가용 승용차의 이용을 줄일 수는 없습니다. 보다 더 적극적으로 승용차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시민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녹색참여소득은 그 한 방안으로서 논의될 필요가 있습니다.

태그:#기본소득, #녹색기본소득, #녹색참여소득, #기후변화, #정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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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전 대변인,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까페2 진행자 정의당 교육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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