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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버트 아인슈타인.
 알버트 아인슈타인.
ⓒ 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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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일순은 젊은 시절부터 남다른 대목이 더러 있었다. 20대 초반에 상대성이론 연구로 세계적인 명성이 높은 미국의 아인슈타인과 서신을 주고 받은 것이다.

그는 당시 세계연방운동 한국지부 상임이사로서 세계연방정부운동을 펴고 있는 생면부지의 아인슈타인에게 편지를 썼다. 

다음은 두 차례에 걸친 아인슈타인의 답신이다.

아인슈타인의 첫번째 편지

1월 8일자 편지, 감사히 받았습니다. 세계 연방주의자들을 비롯하여 세계의 안전 문제를 초국가적인 차원에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지금 전세계를 풍미하는 국수주의자들의 거센 열기에 부딪혀 느린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며 힘든 상황을 견뎌가고 있습니다. 저는 미국 주재의 세계 연방주의자 본부에 편지를 써서 원하시는 정보를 당신에게 보내라고 촉구하겠습니다. 

아인슈타인의 두번째 편지

당신의 편지를 받고 저는 세계연방정부작가연맹에 연락을 취했습니다. 이 자료들이 너무 늦게 처리되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려야겠군요. 자료는 별도의 봉투에 넣어 보내겠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이렇게 중차대한 문제를 두고 사람들이 취하는 무관심한 태도가 못마땅합니다. 6ㆍ25전쟁이나 일본의 원자폭탄 투하와 같은 위험한 상황이 아닌 그 나머지 문제들에 대해서는 사람들은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그런 문제들은 중요하게 보지 않는 듯합니다. 

만약 당신의 나라에 여전히 거센 정치적인 열기가 남아 있다면, 저는 이 자료가 참혹한 상황을 겪고 있는 한국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고 보며, 또 그렇게 쓰이기를 바랍니다.
(주석 1)
 
무위당 장일순 잠언집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 / 김익록 엮음
 무위당 장일순 잠언집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 / 김익록 엮음
ⓒ 시골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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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쳐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

장일순의 수많은 작품, 글씨와 그림을 일일이 소개할 겨를이 없다. 여기서는 임의로 한 편을 소개한다. 1990년대 초에 누군가에게 그려준 난초 그림이 화제이다.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
 달이 나이고 해가 나이거늘
 분명
 그대는 나일세.

'그대가 곧 나'라는 말은 내가 곧 달이고 해인 것처럼 그대도 마찬가지라는 의미로, 인류의 평등사상을 넘어 자연과의 일체를 말하고 있는 내용이다. 이 화제는 그의 사후 강원도 미술인들이 '장일순의 유작전'을 마련할 때 전시회의 제목이 되었다. 그리고 백창우씨가 곡을 붙여  같은 이름의 노래로 불리기도 했다.  
 
무위당 장일순 <무진역경 인욕도행 - 끝도 없고 한도 없는 어려운 경우는 욕된 것을 참는 일이니라>
▲ 무위당 장일순 <무진역경 인욕도행 - 끝도 없고 한도 없는 어려운 경우는 욕된 것을 참는 일이니라> 무위당 장일순 <무진역경 인욕도행 - 끝도 없고 한도 없는 어려운 경우는 욕된 것을 참는 일이니라>
ⓒ 장일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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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매맞은 사연

장일순이 1952년 성육학교 교사로 일할 때이다. 6ㆍ25전쟁으로 혼란한 시기이고 먹고 살기도 어려워서 아이들이 착실하게 공부할 처지가 아닌 것도 실정이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정규 중학 대신 고등공민학교에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성육학교는 장일순이 이런 아이들을 가르치고자 세운 학교였다. 그런데 아이들이 공부를 너무 하지 않았다. 장일순과 다른 교사들이 아무리 열정적으로 가르쳐도 소용이 없었다. 어느날 장일순 교사가 지게 작대기를 하나 들고 수업시간에 들어왔다. 그리고는 "너희들이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은 선생인 내가 너희들을 잘못 가르쳤기 때문이다. 제대로 못 가르친 내가 매를 맞아야 한다"고 하면서 학생들에게 자신을 때리도록 명령하고는 교탁에 서서 바지를 걷어올렸다. 

학생들이 머뭇거리자 학생 대표를 불러 자기를 때리도록 지시했다. 학생 대표가 때리는 시늉만 내자 세게 때리도록 하고, 결국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선생님을 때렸다. 마지막 학생이 때릴 때까지 장일순은 자세를 흐트리지 않았다. 끝난 후 교실을 나가려다가 걷지를 못하고 주저앉아 엎드려 기어나갔다고 한다.

학생 때 이 일을 겪었던 이기춘 목사는 "저에게는 그날 밤 집에서 한참 깨달음이 온 거예요. 세상에 이런 선생님이 다 있나? 제자들에게 얻어맞으면서 공부를 가르치는 선생님, 이런 선생님을 만났을 때 공부해야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했죠.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을 맞은 것입니다. 저에게는 어린 나이에 정말 훌륭하신 선생님을 만난 것입니다."
(주석 2)

주석
1> 앞의 책, 168쪽.
2> 이기춘 ,「자청하여 제자들의 '매'를 맞은 무위당」,『무위당 사람들』, 2011. 5.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무위당 장일순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아인슈타인, #장일순, #성육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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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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