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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당 장일순 <둘은 하나로 말미암아 있는 것이나, 하나 마저도 지키지 말라> 무위당 장일순 <둘은 하나로 말미암아 있는 것이나, 하나 마저도 지키지 말라>
▲ 무위당 장일순 <둘은 하나로 말미암아 있는 것이나, 하나 마저도 지키지 말라> 무위당 장일순 <둘은 하나로 말미암아 있는 것이나, 하나 마저도 지키지 말라>
ⓒ 장일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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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순은 많은 사람과 교유하고, 그를 따르고 존경하는 사람도 많았다.

정치인이나 연예인들의 팬과는 수준이 다른 사람들이 따랐다. 세평도 그만큼 많았고 연구 논문도 적지 않다. 그 가운데 출중한 글의 하나는 작가 김성동 씨의 「우리 시대의 마지막 도덕정치가」일 것이다. 제목과는 상관없이 다음의 글이 장일순의 정신세계를 압축하는 것 같다.

유가(儒家)인가 하면 불가(佛家)요 불가인가 하면 노장(老莊)이며 노장인가 하면 또 야소(耶蘇)의 참얼을 온몸으로 받아 실천하여온 독가(督家)였던 선생은 무엇보다도 진인(眞人)이었다. 

속류 과학주의와 속류 유물론과 유사종교적이고 혹세무민적이며 종교적 신비주의에 추상적 형이상학만이 어지럽게 춤추는 판에서 대중성ㆍ민중성ㆍ소박성ㆍ일상성 속에 들어 있는 거룩함을 되찾아 내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한몸뚱아리의 두 이름으로 더불어 함께 영적 진보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것을, 그 길밖에 길이 없다는 것을, 순평(順平)한 입말로 남겨 준 선생이시다.
(주석 1)
 
장일순 선생 무위당 장일순 선생
▲ 장일순 선생 무위당 장일순 선생
ⓒ 무위당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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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회에서 이만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분이 몇 사람이나 될까.

더욱이 장일순은 전문학자도, 철학교수 또는 종교지도자도 아닌 평범한 인물이다. 군사쿠데타 주동 인물의 하나인 노태우가 대통령 후보에 나서면서 '보통사람 노태우'를 들고 나오면서 정치용어로 크게 오염되고 말았지만, 장일순이야말로 이 땅의 보통사람이었다. 

장일순이 제자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주 한 말이 있었다. 글씨로도 써서 나눠주었다.

'저파비(猪怕肥)'였다.
돼지 저 자, 두려울 파, 살찔 비
돼지는 살찌는 것을 두려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돼지는 살이 찌면 도살당하기 때문이다.

'저파비' 앞에 '인파출명(人怕出名)'이 있었다.

"사람은 세상에 허명이 나는 것을 두려워 하라"는 뜻이다. 군사정권기는 물론 지금도 얼마나 많은 명사들이 허명을 날리다 날개도 없이 추락하는가. 장일순은 이를 경계하고 항상 허명을 내지 않으려 애썼다. 마음을 비우는 일, 달리 말하면 욕심을 부리지 않는 삶을 살고자 하고 이웃들에게 솔선하였다.

불가(佛家)의 선(禪)에 허회자조(虛懷自照)라는 말이 있어요. 자기를 비운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얘기는 노자의 도덕경에도 있고, 또 성경에도 있습니다. 복음을 보면 예수가 산으로 자꾸 올라가시지요. 세상에 내려가니까 자꾸 따지고 이것저것 얘기를 해. 사람들이 말귀를 못 알아듣고 욕심만 부려. 그렇게 되니까 답답해서 산으로 올라가서, 어찌 하오리까 하거든. 가서 좌선을 해요. 하느님과의 대화란 건 뭐냐. 자기를 비우고 스스로 그 비운 마음을 보는 거예요. (주석 2)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
▲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
ⓒ 무위당 선생을 기리는 사람들의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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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순은 자기를 비운 대신 타인을 돕는 일에는 앞장섰다. 방법도 가지각색이었다. 황도근 교수의 증언이다.

재밌는 얘기 하나 해드릴게요. 김진홍 씨라는 분인데, 합기도 도장 사범이었어요. 그런데 그 도장이 판잣집 같이 엉망이었어요. 돈이 없으니까 그러고 있는데 자연히 사람들도 안 오고 영업이 안 되죠. 그래서 장 선생님한테 찾아갔어요.

저 좀 먹고살게 해주세요. 그런데 선생님이 돈을 대줄 수도 없고 어떻게 해요?

방법을 찾으신 게, 뭐냐 하면, 당신이 직접 매일 거기를 가셔서 정식 회원으로 등록하고 도복을 입고 앉아 계신 거예요. 그때 도복 입고 찍은 사진도 있어요.(웃음)

원래 운동도 못하시는 분인데, 합기도 도장에 그렇게 앉아 계시니까 제자들이고 이런저런 사람들이 찾아올 거 아니에요? 그래서 회원들이 크게 늘어나서 1년 반인가 2년 만에 돈 벌어서 옮겼어요. 그런 일화도 있어요.
(주석 3)

한국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타락이 극에 이르렀을 때 장일순은 금욕 또는 무욕을 실천하면서 작은 영역에서나마 앉은 자리에서 향내나는 본보기가 되었다. 

주석
1> 김성동,『희망세상』창간호와 제1호에 실린 글. 
2> 장일순,「세상일체가 하나의 관계」, 1988년 9월 19일 '한살림 월례강좌'에서 한 내용.
3> 「무위당, 제일 잘 놀다가 가신 '자유인'」,『녹생평론』, 2014년 5~6월호, 29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무위당 장일순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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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