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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순 선생 내외 1991년 자택에서
▲ 장일순 선생 내외 1991년 자택에서
ⓒ 무위당 사람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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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순은 대단히 심성이 고운 사람이다.

희로애락을 솔직히 드러내는 정직한 사람이기도 하다. 세속적으로 출세하고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피도 눈물도 없이 강한 성격의 소유자들이다. 장일순은 슬픈 사연을 들으면 자주 울었다. 그만큼 감정이 풍부하고 정이 깊고 정서적인 사람도 드물 것이다. 

 먼저 부인 이인숙의 증언이다. 

가끔 시내에 나가셨다가 술에 취해서 돌아오시면 우시는 일이 있었어요. 어떤 날은 참 슬프게 우셨어요. 왜 우시냐고 물어보면 대개 어려운 처지에 있는 후배나 제자들 누구누구가 불쌍하다면서 우시는 거예요.

"내가 걔네들을 도울 힘이 없어서 안타깝다" 한탄하시면서 우시는 거예요. 제가 큰일 하시는 분이 울면 되겠냐고 해도 워낙 감성이 풍부한 분이라 말릴 수가 없었어요.

70년대에 민청학련 사건으로 친분 있는 민주인사들과 대학생들이 대거 구속되고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는 밤새 통곡하셨어요. "얘네들 불쌍해서 어떻하나" 하면서 너무 고통스러워하셨어요.
(주석 1)

"제자 선생님 처음 뵙던 날 조봉암 선생님 말씀을 하면서 많이 우셨어요. 이현주 목사님도 계셨는데… 저도 울고 한 바탕 울고 나중에 저에게 난초를 하나 쳐 주셨는데…." (주석 2)

선생님은 또 잘 우셨어요. 술 좀 취하시면 같이 붙들고 울었습니다. 어떤 때는 전화통 붙들고 30분 동안이나 같이 울기도 했어요. 선생님과 술 마시고 한밤중 함께 봉산동 댁으로 가는 길에 지금 개봉교(당시에는 없었음) 근처 섭다리를 건너 가기도 했는데 마침 달도 밝은 원주천 뚝방길에서 선생님이 그렇게 슬피 우시더라고요. 어찌 보면 당신의 멋이기도 하지만 얼마나 속을 끓이셨던가 하는 생각입니다.

지금은 다 드러났지만 당시 반독재 투쟁을 벌인 소위 United Front 연합전선 인사들 중에는 권력지향형 등 개성이 강한 여러 부류의 인사들이 많았어요. 이 사람들을 끌고 가려니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었을 거예요. 여러 사람의 말을 다 들어주다보니 속이 끓고 썩으신 거예요. 술 드시고 의기상통하면 우신거지요.
(주석 3)

장일순은 젊어서나 나이 들어서나 인간적인, 너무 인간적인 심성을 갖고 있었다. 세상을 살면서도 세속에 물들지 않고 순수성을 지키며 살았다. 그리 살기가 쉽지 않는 시대에, 그는, 삿됨이 없이 청렬하게 살면서 고매한 인격을 유지한 흔치 않는 인물이었다. 

주석
1> 「고 이인숙 사모님과의 대화」, '무위당사람들' 제공.
2> 이철수,「장일순을 흉내내면서 살고 싶어요」,『무위당 사람들』, 31호, 2010. 3.
3> 한기호,「원주천 뚝방길에서 슬피 우신 무위당」,『무위당사람들』, 33호, 2010. 11.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무위당 장일순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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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