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정운찬 국무총리가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치에 관한 대정부질문에서 민주당 유선호 의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정운찬 국무총리가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치에 관한 대정부질문에서 민주당 유선호 의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뉴시스

관련사진보기


"애국심이 있다면 유엔에 가져가 우리 조사결과가 잘못됐다고 말하지 못했을 것" "어느 나라 국민인지 의문이 생긴다." - 정운찬 국무총리

"이적행위나 마찬가지" "(정부의 노력에) 재를 뿌리는 것" - 익명의 당국자

"도대체 이 시점에 무슨 목적으로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인지 정말 묻고 싶다" - 박선규 청와대 대변인

"우리 정부가 기울이고 있는 외교노력을 저해하는 것" - 외교통상부

"참여연대의 행동은 나라를 망신시키고 국위를 실추시키는 자해행위" "참여연대의 천안함 관련 주장은 북한의 주장과 비슷하다" - 보수단체

참여연대가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서한을 유엔안보리 이사국에 전달한 것을 두고 나온 말들이다. 정운찬 국무총리의 발언을 좀 더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정운찬 국무총리가 14일 대정부 질문에서 천안함 침몰 조사결과에 의문을 품고 있는 국민들과 시민사회단체를 겨냥해 "철없는 사람", "조금이라도 애국심이 있었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며 격한 발언들을 쏟아냈다. 그는 "정부가 객관적·과학적으로 천안함 침몰 원인을 규명하고 국제기구와 55개 국가가 정부의 조사결과를 지지하는 마당"이라며 "참담하다, 정부를 이렇게 못 믿는다면 이 나라를 어떻게 움직이겠나"며 개탄했다. "국익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것으로 깊은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합조단 발표를 믿지 못하는 건 참여연대만이 아니다

정운찬 총리는 마치 참여연대를 제외한 대한민국의 모든 구성원들이 천안함 합조단의 발표를 신뢰하는 것처럼 발언했다. 그러나 도올 김용옥도, 서프라이즈 대표 신상철도, 전 청와대 비서관 박선원도 합조단의 발표를 믿지 않는다. 민주노동당도 성명을 발표해 합조단의 조사 결과는 '상식적인 의문'을 해소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정희·최문순 등 다수의 국회의원들도 합조단 발표에 대한 의문점을 국회에서 지적했다. 미국과 일본에 있는 유수의 교수들도 비슷한 주장을 펼치며 국내 언론에 기고하기도 했다. 합조단 발표 직후 여론조사에 따르더라도 20% 안팎의 국민들이 합조단 발표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중국과 러시아 역시 합조단 발표를 신뢰하지 않는다. 중국은 합조단의 조사결과만으로 "북한의 소행으로 단정할 만한 근거가 안 된다"고 이미 여러 차례 공식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국을 직접 방문하여 합조단의 조사결과를 들은 러시아 조사단 역시 고개를 갸웃거리고 돌아갔다.

동북아시아 정책에서 한반도 안정을 최우선에 두는 중국과 러시아가 합조단 발표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북한 요인'으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중국과 러시아는 '한반도의 안정을 파괴하는'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을 강력하게 비난한 바 있다. 한반도 안정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북한의 천안함 공격'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보다 더 위험한 행위이다. 만약 합조단의 발표가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라면 한국과 미국 못지 않게 중국, 러시아도 북한을 비난하는 대열에 동참했을 것이다. 따라서 중국과 러시아의 반응은 '북한 변수' 때문이 아니라 합조단의 발표가 그들을 설득하기에 부족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외교는 국가 혹은 정부의 전유물이 아니다

유엔 안보리에 보낸 참여연대의 천안함 서한이 논란을 낳고 있는 가운데 9일(현지시간) 유엔 안보리 회의가 열리고 있다.
 유엔 안보리에 보낸 참여연대의 천안함 서한이 논란을 낳고 있는 가운데 9일(현지시간) 유엔 안보리 회의가 열리고 있다.
ⓒ 뉴시스

관련사진보기


또 하나 지적해야 할 것은 참여연대의 서한 발송이 이명박 정부의 외교를 저해했다는 외교통상부 대변인의 논평이다. 참여연대가 유엔안보리 결의안을 추진하는 정부의 외교활동을 저해했는가. 유엔안보리에 정부와 다른 입장의 서한을 발송하는 것이 국제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가.

외통부의 이같은 입장은 NGO와 같은 민간기구가 외교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일 수도 있고, 그것이 아니라면 정부와 다른 입장을 가진 민간기구가 외교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일 수도 있다. 만약 전자라면 1999년부터 적극적인 외교 활동을 벌이고 있는 반크(VANK, 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의 활동에 대해서는 왜 침묵해 왔는지 그 이유를 밝혀야 한다. 만약 후자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외교',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표현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현실주의적 시각에서는 오직 국가 혹은 정부만이 외교의 주체이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시각에서는 국가, 정부 외에도 NGO, 기업 등 다양한 주체들이 외교에 참여하며 그 영향력을 행사한다. 현실주의적 시각이 옳고 자유주의적 시각이 그르다는 어떤 명시적인 결과도 국제정치학에서, 외교학에서 제시된 바 없다. 오히려 국가 혹은 정부 외의 다양한 주체들의 외교 활동 참여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 최근 추세이다. 외교는 더 이상 국가 혹은 정부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참여연대가 '외교'를 방해한 것이 아니라 MB 정부가 참여연대의 '정당한 외교'를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대한민국의 상식적인 NGO이다

참여연대가 유엔안보리 이사국에게 보낸 서한은 상식적인 사람들의 상식적인 의문을 담고 있다. 따라서 참여연대의 외교는 천안함 정부 발표를 믿지 못하는 대한민국 20% 안팎(여론 조사 결과를 기준으로)을 대표해서 안보리에 서한을 보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참여연대가 안보리에 서한을 발송한 것은 한반도에서 고조되는 전쟁위기를 극복하고 평화를 지키자는 취지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주지하다시피 천안함 합조단 조사결과 발표와 이명박 대통령의 담화문 발표 이후 이명박 정부는 대북심리전 재개 등 한반도에서 긴장을 격화시키고 있다.

담화문에서 영해 침범 시 지위권을 발동하겠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담화문 발표 이틀 전에 군 수뇌부가 모여 '북한이 도발하면 발진기지를 초토화하겠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즉 어떠한 국지전이 발발하더라도 전면전으로 비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북한 역시 심리전 방송 재개 시 격파사격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한국 전쟁 이후 최대의 전쟁 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보리에서의 논의 결과에 따라 남북 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북미 관계가 또 다시 긴장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지난 해 4월 5일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 그리고 그에 따른 유엔안보리의 의장성명으로 2차 핵실험이 단행되고 북미 관계가 악화되었던 전례도 있다.

'국민이 3일만 참으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며 대북 전쟁 준비를 호소하는 극단적인 냉전주의자들 말고 대다수의 대한민국의 상식적인 국민들은 전쟁을 우려하고 남북관계 발전을 원하며 북미관계 개선과 한반도 비핵화를 염원한다.

참여연대의 서한 발송은 바로 이같은 국민의 염원을 대표한 정상적이고 상식적이고 '애국적'인 활동인 것이다. MB 정부는 참여연대의 행위를 자신의 입장과 반대된다고 문제삼을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NGO의 외교 활동을 더욱 고무하고 추동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것이 국격을 높이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국익'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통일뉴스에 동시 게재되며, 새세상연구소 통일정세동향지 <통일돋보기>에도 게재됩니다.



태그:#참여연대, #천안함, #유엔 안보리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8,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신대학교 글로벌피스연구원 특임교수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연구위원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