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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선이 다가온 가운데, 매케인이 승리할 가능성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전통적 '스윙 스테이트(경합주)'라고 하는 플로리다, 오하이오, 심지어 펜실베이니아에서 패배한다 하더라도 오바마는 각종 유력 언론사의 득표 전망에서 이미 매직 넘버 '270'을 넘긴 상태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홈스테이트인 애리조나에서도 매케인은 오바마에게 4%P 차이로 쫓기고 있는 지경이다.

 

매케인 캠프를 전담 취재하는 NBC의 켈리 오도널은 방송에서 매케인 참모들이 현재의 불리한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고 전했다. 단, 작년 여름 고사 직전의 선거캠프를 회생시켜 뉴 햄프셔의 기적을 이뤄냈고, 결국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어 오늘까지 온 매케인의 투혼에 매달리며 조직의 와해를 철저히 막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며칠간 나오고 있는 매케인 캠프의 내부 불협화음은 결국 이들도 선거 결과 이후의 비관적 상황에 대해 미리부터 몸을 사리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어느 선거에서나 지는 팀의 내부는 상호 비난과 책임 떠넘기기 또는 희생양 찾기 등으로 분열되기 마련이다. 민주당 경선 당시 힐러리의 패배가 가시화되자 힐러리 캠프의 공동 책임자였던 마크 팬과 해롤드 익키는 서로를 향해서 욕을 남발하며 싸워댔고, 마침 이 상황이 오디오로 녹음되어 미 전역에 방송되는 추태가 벌어지기도 했었다.

 

매케인 캠프 "페일린 때문에..." 

 

매케인 캠프의 분열 양상은 페일린에 대한 비난으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 주말부터 <폴리티코>, <CNN>, <GQ>, <뉴욕 타임스> 등의 언론매체들은 페일린과 매케인 참모들 간의 불협화음을 앞다투어 다루었는데, 현재 페일린에 대한 불만은 주로 매케인 참모 쪽에서 나오고 있다.

 

페일린이 매케인 진영의 선거 전략에 불만을 품고 돌출행동을 하며, '15만불 쇼핑건'으로 퇴색된 서민적 이미지를 만회하기 위해 선거 전략에도 없는 자기 변호를 시작했다는 것이 그들의 비판 내용이다. 또한 선거가 끝나기도 전에 매케인과의 거리두기를 시작하면서 선거에 전력을 기울이지 않고, 벌써부터 2012년을 향한 독자 행보를 시작하기까지 했다고 일부 참모진들은 불만을 터뜨렸다. 

 

매케인 캠프를 전담 취재하는 <CNN>의 다나 배쉬는 "페일린이 막나가고 있어 참담한 지경"이라는 일부 메케인 참모의 말과 "그녀는 평소에 믿는 바를 자유롭게 표출하려 했을 뿐이고 오히려 매케인 참모들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페일린 쪽 관계자의 말을 함께 전해 매케인 캠프 내의 분열 상황을 드러냈다.

 

페일린은 매케인이 미시건을 포기한 것과 '갓 댐 아메리카' 발언으로 유명한 라이트 목사와 오바마 간의 관계를 끝까지 추궁하지 않는 점, 또 로보콜(robo-call, 유권자들에게 자동으로 전화를 걸어 녹음된 메시지로 상대방 후보를 비난하는 것)을 선거운동에 사용하는 것 등에 공개적인 불만을 나타낸 적이 있다.

 

또한 공화당 공금으로 15만불어치의 옷과 구두 등을 사입은 것에 대해 그것들은 자신의 소유가 아니며 주는 대로 받아 입었을 뿐이라고 항변해, 매케인 선거 참모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몇 시간 동안 페일린에게 말도 걸지 않은 매케인

 

몇몇 주요 이슈에 대해서 페일린의 이해 정도가 놀라울 만큼 부족했다고 밝힌 매케인 캠프의 또 다른 참모는 그녀의 이해 수준을 여타 대선 후보자들만큼 끌어올리는 일이 제일 어려운 일이었다고 털어놓아 페일린의 전문성에 대한 세간의 의혹에 이제는 매케인 캠프 스스로가 기름을 붓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28일 <GQ> 매거진은 한 매케인 참모의 말을 빌려 매케인이 유세용 버스 안에서 장시간의 여행 동안 단 한 번도 페일린에게 말을 걸지 않고 무시하는 태도를 모여 배석자들이 모두 어색해 어쩔 줄을 몰랐다고 전했다. 

 

매케인 참모들은 그의 부진 이유가 상당 부분 페일린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이제 정치 신인인 그녀를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고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오바마를 공개 지지했던 콜린 파월이나 데이빗 브룩스(뉴욕 타임스), 데이빗 플럼(전 부시 연설 작성자), 페기 누난(월스트리트 저널) 등의 저명한 보수 논객들은 페일린을 매케인의 문제라고 공통적으로 지목해 왔었다.

 

유사시 대통령직을 승계해야 할 부통령 자리에 페일린은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매케인 참모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그녀의 자격을 둘러싼 논란의 중심에는 바로 매케인이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페일린을 러닝 메이트로 선택한 것은 바로 매케인이기 때문이다.  

 

매케인보다 더 많은 지지자 몰고다니는 페일린

 

어찌됐든 매케인의 승패와 상관없이 페일린은 이미 공화당의 차세대 주자로 떠오르고 있다.

 

이미 유세장에는 "세라  2012"(2012년 대선에는 세라 페일린을 뽑자는 뜻), "You Go Girl", "You're in Palin Country" 같은 피켓들이 곳곳에 등장하고 있고 그녀는 매케인보다 훨씬 더 많은 지지자들을 몰고 다닌다.

 

페일린은 비록 좌파로부터 많은 조롱을 당하지만, 매케인을 지지하기에는 껄끄러운 골수 공화당 지지자들을 독려해서 후원금을 내고 자원봉사를 하거나 투표장까지 나갈 수 있게 만든다. 공화당 보수 우파들에게 중요한 이슈인 총기, 종교, 생명 문제(낙태와 진화/창조론 문제)에 대해 매케인은 페일린만큼 편하게 얘기하지 못했다.     

 

현재까지 숱하게 지적 능력의 부족을 지적받았음에, 페일린은 현재 공화당이 필요로 하는 정치인의 자질을 다 갖추고 있다. 즉, 철저하게 우파적 가치를 지향하면서도 동시에 높은 스타성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대중 선동적 정치인이 그것이다. 현재 미국의 정치 유권자 지도를 살펴보면 공화당에 페일린이 어필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동부와 서부 해안의 고소득, 고학력, 리버럴 성향의 유권자들, 도시 지역의 유권자들은 민주당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고, 2008년 대선에서는 문화적으로 보수적인 흑인들과 공화당 이민 정책에 서운함을 느낀 히스패닉 유권자들까지 민주당으로 돌아섰다.

 

또한, 많은 여성 유권자들은 현 공화당의 낙태금지(pro-life) 정책에 불편함을 느끼고, 낙태를 찬성(pro-choice)하고 성별 임금차별을 금지하는 민주당에 동조를 하고 있다. 오바마의 가장 취약 유권층인 백인 블루 칼라 역시 현재의 경제 위기로 인해 오바마를 지지하기 시작했다.

 

소위 '레이건 디마크렛'이라 불리는 백인 블루 칼라 계층은 문화적으로는 보수적인 사람들이다. 지난 수년간 보수주의 논객과 학자들은 이들의 지지에 공화당의 미래가 있다고 지적하며, 미국 경기 하락으로 위기에 몰린 이들을 위해 경제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즉, 낙태금지나 총기 문제 같은 사회 이슈로만 이들을 붙잡으려는 것은 부족하며, 루이지애나 주지사인 바비 진달이나 미네소타 주지사인 팀 폴렌티 같은 온건-합리 보수주의자들로 하여금 당이 이끌어져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그러나, 지난 부시 행정부 8년간 공화당은 중산층을 위한 경제정책 개발에 소홀했었고, 현재의 경제 위기로 공화당 경제 정책이 실패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사회-문화적 이슈로 백인 블루 칼라를 공략하는 것만이 현실적인 상황이다.

 

매력만점의 페일린, 대중선동 정치가 싹수가 보인다

 

페일린은 사회-문화적 이슈에 매우 우파적이며, 누구에게나 어필할 수 있는 개인사와 매력적인 외모, 무엇보다도 대중 선동적인 정치가 기질을 다분히 갖고 있다. 공화당으로서는 지난 90년대 팻 뷰캐넌 이후 처음있는 일이다. 전당대회의 연설 하나로 공화당의 골수 지지계층을 한 번에 결집시킨 바 있는 페일린이다.  

 

그러나 역시 골수 우파들의 결집만으로 과연 공화당의 미래가 보장받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일찍부터 페일린을 "엄청난 실수"라고 했던 데이비드 프럼은 26일 <워싱턴 포스트>에서 페일린 카드가 공화당의 지지 기반, 특히 골수 보수주의자들을 결집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만큼 무당파층과 여성들, 특히 낙태를 찬성하는 여성들의 표를 잃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무당파층과 여성들의 지지를 잃게되자 골수 공화당 지지자들에게 더더욱 의존하게 되고, 이들의 민심을 다잡기 위해서 오바마를 '이방인' '급진주의자' '사회주의자'로까지 몰게 되면서 미국 대선 승리의 관건인 중도파를 잃게 되어 대선의 승리와는 완전히 멀어지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플럼은 심지어 백악관은 물론 상-하원 선거에서도 모두 참패를 기록하게 될 것이라고 염려했다.

 

페일린 "나는 잃을 것이 없다"

 

페일린의 장점에 대해서는 오바마를 지지하는 여성들도 인정하는 바가 있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백악관 대변인을 역임한 바 있던 디디 마이어는 그녀가 배짱있고, 긍정적이며,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재생하는 능력이 있다며, 특히 언제나 여성스러운 모습을 어필하는 것이 페일린의 큰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극우 보수파나 온건-합리 보수파 모두가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는 위기감은 민주당이 백악관과 양원 모두를 장악해서 큰 정부가 구성되고 사회-문화적으로 '리버럴'한 정책이 정국을 휩쓸 것이라는 예상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런 위기감 속에서 몇몇 공화당 고위 인사들은 선거 이후의 무너진 공화당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향후 정국을 논의하기 위해서 선거일 이틀 후에 버지니아의 한 교외에서 비밀 회동을 갖기로 했다고 29일 <폴리티코>는 밝혔다. 

 

1976년 민주당의 지미 카터가 당선된 4년 후에 공화당의 레이건을 당선시켰던 것처럼 2012년을 계획하고, 또한 2010년의 중간선거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선거일 다음주에는 공화당 주지사 모임이 마이애미에서 있으며 이 모든 모임의 중심 의제에는 페일린이 포함되어 있다고 전해졌다.

 

지난 14일, 극우 방송인인 러쉬 림보와의 라디오 인터뷰에서, 페일린은 "나는 잃을 것이 전혀 없다"고 힘주어 말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이미 잃을 대로 잃어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것이라 해석되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매케인이 지더라도 자신은 손해볼 것이 전혀 없다라고 이해되고 있다.

 

그녀가 과연 공화당 선거 패배의 희생양으로 전락할지 공화당의 차세대 주자로까지 발전할 수 있을지, 미국은 벌써 선거 이후 페일린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태그:#페일린, #매케인, #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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