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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대선 직후 <김어준의 파파이스 #144>에 출연한 유시민 작가.
 지난 2017년 대선 직후 <김어준의 파파이스 #144>에 출연한 유시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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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불안해 하는 것은 대한민국은 아무것도 바뀐 게 없어요. 사람들은 야권이 집권을 하면 권력을 잡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예요. 정치권력만 잡은 거예요. 언론권력 그대로 있죠. 재벌, 경제권력 그대로 있죠. 기득권층을 중심으로 광고시장을 통해서 언론과 유착되어 있는 재벌들, 거기서 나오는 돈으로 프로젝트 받아먹는 지식인층 그대로 있죠. 그래서 개혁을 한다고 해서 순순히 협조하지 않아요. 대한민국의 수많은 권력 층위 위에 오직 청와대 권력만 바뀐 거예요." 

그는 예언자였을까. 대선 직후인 2017년 5월의 어느날. 많은 이들이 대선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을 때, 그는 뒷목이 서늘한 이야기로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대통령 하나 바뀌었을 뿐 기득권 세력은 그대로라는 그의 진단에는 새 정부를 향한 기대와 우려가 병존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1년 6개월의 시간이 흐른 지금, 한겨례 TV <김어준의 파파이스#144>에 출연했던 유시민 작가의 '예언'이 점점 현실이 돼가는 모양새다. 

위험 신호 보내는 대통령 지지율

문재인 정부가 위기를 맞고 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그야말로 동네북 신세다. '이영자'(20대·영남·자영업자)와 '오중주'(50대·중도층·주부)의 '콜라보'에 견고해 보이기만 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정권교체에 따른 기저효과와 남북관계 개선에 힘입어 가파르게 치솟았던 대통령 지지율은 어느새 '데스크로스'(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서는 현상)됐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을 체험한 시민들에게 정권교체는 그 자체로 '희망'이었다.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였고, 겨울이 끝났음을 알리는 훈풍이었다. 권위를 내려놓은 문 대통령의 인간적 풍모는 많은 이들의 공감과 기대를 자아내게 했다. 낮은 자세로 시민과 눈을 맞추고 소통하는 모습은 이전의 대통령과는 확연히 달랐다. 대통령에 대한 신뢰는 기록적인 지지율이 1년 넘게 유지돼온 근본적인 배경이다. 

그러나 대통령에 대한 호감과 신뢰만으로 국정이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경제 상황이다. 잇따른 처방에도 투자와 고용 등 경제지표는 개선의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주도성장 논란이 거세지면서 청년층과 서민, 소상공인의 불만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러나 당·정·청은 아직까지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청와대가 경제투톱을 교체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효과는 아직이다. 

문재인 정부의 개혁 후퇴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잇따르고 있다. 사회·경제 분야의 개혁 후퇴 조짐이 엿보이자 정부에 우호적이던 진보진영 내에서도 비판적 목소리가 비등해지고 있다. 민주노총, 한국진보연대,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50여개 진보단체로 구성된 '민중공동행동'은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문재인 정부의 노동 관련 공약 후퇴가 지속될 경우 "횃불을 들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본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문재인 정부는 '나라다운 나라'를 갈망하는 시민의 간절함으로 탄생한 정부였다. 정의롭고, 공정한 나라를 원하는 시민의 염원이 이 정부를 움직이는 실질적인 동력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강력하게 견인해주던 여론의 흐름이 최근 달라졌다. 사방팔방에서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보수와 진보진영 사이에 낀 영락없는 샌드위치 신세다. 

꺾일 줄 모르던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하고, 친여세력까지 정부정책을 비판하고 나서자 청와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같은 상황을 초래한 일차적 책임은 당연히 정부여당에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인지는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다시 유 작가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참여정부 초기상황을 한번 복기해 보세요. 제일 먼저 터진게 네이스 파동. 전교조하고 붙었어요. KBS 서동구 사장임명 꺼냈다가 노조하고 싸움 붙었어요, 언론노조하고. 궤도연대 파업했죠? 미국 정상회담하러 출장간 동안에. 부안에 핵폐기장 잘못 풀었다가 난리났죠. 초장부터 완전히 얻어 터져가지고 만신창이 돼버렸어요, 6개월안에. 주로 좌파의 공격이었죠, 당시에."

"모든 기득권 권력이 그대로 있고, 그 기득권 권력의 네트워크 안에 한 매듭만 바뀌는 건데 선거과정에서 지지해줬던 수많은 세력들이 자기의 논리에 의해서 맘에 안 드는거 있으면 공격해요. 10개의 사안에서 9개 지지해도 한 개 내 마음에 안 드는거 있으면 다 때린다구요. 저는 그게 제일 무섭고요, 지금도. 저는 그 악몽이 되풀이 되면 99% 망한다고 봐요."


최저인금인상과 소득주도성장이 잘못된 것일까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첫 확대경제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2019년 경제정책 방향을 논의했다.
▲ 확대경제정책 회의 주재하는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첫 확대경제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2019년 경제정책 방향을 논의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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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이들이 문재인 정부가 위기를 맞게 된 이유로 경제지표의 악화를 손꼽는다.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 경제와 민생이 어려워졌다는 논리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최저임금 인상은 지난 대선 당시 모든 후보들의 공통 공약이었다. 문 대통령은 물론이고 홍준표 한국당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 모두 최저임금 인상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그런 면에서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의 최저임금 인상 비판은 낯부끄러운 자가당착에 지나지 않는다. 

뭇매를 맞고있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또 어떤가. 소득주도성장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경제와 민생 악화의 주범일까. 낙수효과를 앞세운 대기업 우선정책이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를 초래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신자유주의의 매파(媒婆)인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지난 2015년 낙수효과의 '효과없음'을 고백한 바 있다. 그 대안으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려던 정책이 바로 소득주도성장이다. 저소득층의 곳간을 채워 소비를 진작시키고, 그를 통해 기업투자를 이끌어내 경제와 민생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소득주도성장은 우리 경제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보겠다는 정책적 시도다. 그러나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궤도에 오르기도 전에 보수야당과 언론의 맹공을 받았다. 성장론자들이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흐름일 수 있겠지만, 이는 한마디로 우물가에서 숭늉찾는 격이나 마찬가지다. 대기업 중심의 성장담론에 치중한 나머지 우리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반도체·조선·철강·자동차·IT 산업 등을 제외하면 경쟁력있는 분야를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하나의 정책이 자리잡고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하물며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지난 수십년간 유지돼온 경제구조를 전환시키는 일이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정책이 집행되는 과정을 지켜본 뒤 평가하는 것이 옳다. 그러라고 유권자가 표를 준 것이 아닌가. 그러나 현실은 그와는 정반대다. 보수야당과 보수언론은 소득주도성장이 마치 대한민국 경제를 망치고 민생을 파탄내는 악의 축이라는 듯 독설을 퍼붓고 있다. 

이 모습은 마치 참여정부 시절의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 프레임을 보는 듯하다. 당시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경포대'라 부르며 집요하게 선동해 나갔다. 그 결과는 모두가 안다. 공세를 위한 공세는 이명박 정권 탄생의 밑걸음이 됐다. 경제 성장률의 경우만 해도 "김대중 정부 때 5%, 노무현 정부 때 4%, 이명박 정부 때 3%, 박근혜 정부 때 2%"(유승민 의원)가 성장했음에도 사람들의 뇌리에는 '경포대'의 잔상이 여전히 남아있다. 대중 선동이 그만큼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다는 방증이다. 

지금도 크게 다를 바 없다. 보수야당과 보수언론은 문재인 정부가 하는 일이라면 사사건건 반대와 비판에 열을 올리고 있다. 언제는 최저임금 인상이 자영업자들의 삶을 극한으로 내몰고 있다며 거품을 물더니, 막상 정부가 카드 수수료를 인하하기로 결정하자 이번에는 카드사의 수익 악화가 경영난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거세게 비판을 하고 있다. 대개 이런 식이다. 이래도 반대, 저래도 반대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한결같이 '기승전-정부 비판'이다. 

문재인 정부, 잘 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잘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못한 경제 정책의 혼선이 이어지고 있는 것도, 기득권의 반발과 저항을 상쇄시킬만한 전방위적 혁신 의지가 부족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당·정·청 역시 오락가락 엇박자가 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국민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건 무엇보다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있는 여론이 말해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문재인 정부의 위기를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단적인 예가 소득주도성장 논란이다. 정부의 재정정책은 단기부양책과 장기 구조개혁으로 나뉜다. 일자리 추경안이 단기적 처방이라면 소득주도성장은 거시적 차원에서 추진되는 정책이라 할 수 있다. 경제의 패러다임 자체를 전환시키는 작업이니만큼 중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보수진영으로부터 혹독하게 공격받고 있다. 대한민국 경제를 망하게 하는 정책이란 낙인 속에 제대로 추진조차 못해보고 실패로 규정됐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2년이 채 안 된 상황임을 고려하면 과도하고 지나친 정치공세로도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흐름이 지속되면서 정부 정책에 대한 왜곡과 오해가 쌓이게 되고, 그로 인한 대중적 피로감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여당에 우호적이었던 친여세력과 진보단체, 일반시민까지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문재인 정부를 견인하던 중추 세력이 등을 돌리자 국정동력 역시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보수와 진보가) 일제히 반격하기 시작하면 금방 입지가 줄어들게 될 것"이라는 유 작가의 지적 그대로다. 참여정부의 데자뷰인 셈이다.  

많은 이들이 문재인 정부의 위기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심각한 것은 어쩌면 따로 있는지도 모른다. 유 작가의 예언이 의미심장해 보이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실패가 단순히 '문재인 정부의 실패'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참여정부의 실패는 곧바로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출범으로 이어졌다. 정부여당의 각성과 담대한 용기, 시민사회의 통찰과 혜안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 보이는 이유일 터다. 다시 그 시절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블로그 '바람 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유시민 작가, #소득주도성장 논란, #데드 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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