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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8일 오후 대구시 서구 한 식당에서 청년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8일 오후 대구시 서구 한 식당에서 청년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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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대구를 찾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대구의 한 식당에서 청년회의소 임원들과 가진 식사 자리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질문을 한 기자에 대해 "내가 마치 역사의 무슨 잘못을 한 것처럼...나쁜 놈들이다"고 말했습니다.

반 전 총장님, 제가 그 질문을 한 나쁜 기자입니다. 저는 반 전 총장님께서 대구를 방문해 서문시장을 찾는 순간부터 청년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청년문제를 토론하던 자리까지 취재를 했습니다.

반 전 총장님은 서문시장에서 대구시 중구청 관계자로부터 화재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화재현장을 직접 보기도 했습니다. 상가연합회 관계자들과의 대화에서는 서문시장에 대해 "우리나라 3대 전통시장이라고 배웠다"며 "신문에서 본 것과 제가 직접 본 것은 너무나 차이가 있고 충격적"이라고 상인들을 위로했습니다.

이어 서구에 있는 한 식당으로 이동해 청년들과 '삼겹살 토크'를 진행하면서 청년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냈습니다. 유엔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면서 젊은이들의 미래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자평하기도 했습니다.

반 전 총장님의 대구 방문에 2000여 명이 넘는 지지자들이 현수막을 내걸고 태극기를 흔들며 환영했습니다. 하지만 반 전 총장님은 대구에 머무는 동안 수많은 기자들로부터 아무런 질문도 받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일부 기자들이 질문을 하려고 하면 경호원들이 질문을 막았습니다. 단지 시간이 빠듯하다는 이유였습니다.

반 전 총장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순간 박근혜 대통령이 떠올랐습니다. 정치를 바꾸겠다는 반 전 총장님의 모습이 아니기를 바랐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말바꾸기? 진심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8일 오후 대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청년 토론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8일 오후 대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청년 토론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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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반 전 총장님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말바꾸기 논란이 일고 있는 것과 관련해 진심을 듣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반 전 총장님은 지난 2015년 12월 28일 한국과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타결하자 환영하는 성명을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반 전 총장님은 "한국과 일본의 외무장관이 '위안부' 이슈에 대한 합의를 본 것을 환영한다"면서 "이번 합의로 두 나라의 관계가 더욱 개선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리더십과 비전을 높이 평가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지난해 1월 1일 박근혜 대통령과의 통화에서는 "박 대통령이 비전을 갖고 올바른 용단을 내린 것에 대해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며 한·일간 위안부 합의에 대해 높게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위안부 할머니들과 많은 시민단체들은 당사자들이 동의하지 않은 합의는 무효라며 아직도 정부의 합의안에 대해 반대와 비판의 목소리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일부 할머니들은 위안부 합의금 수령을 거부하고 있고 할머니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급된 위로금을 되돌려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아셨는지 반 전 총장님은 지난 12일 귀국 직후 "궁극적인 완벽한 합의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을 풀어주는 수준이 돼야 한다"며 "비판과 오해가 있는 것 같다"고 해명했습니다. 또 "만약 10억 엔이 소녀상 철거와 관련된 것이라면 잘못된 것"이라며 "그럴 거라면 차라리 돈을 되돌려 주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반 전 총장님의 말바꾸기에 논란에 대해 많은 시민단체들이 아직도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 전 총장님이 귀국 후 가는 곳마다 피켓을 든 시민단체 회원들이 '할머니들 피눈물 상처에 소금 뿌린 반기문을 규탄한다'거나 '위안부 합의 피해자들이 울고 있다' 등의 피켓을 들고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8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하기 앞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하며 피켓시위를 벌였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8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하기 앞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하며 피켓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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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8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하기 앞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하며 피켓시위를 벌였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8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하기 앞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하며 피켓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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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대구를 방문했을 당시에도 '대구 평화의소녀상 건립 범시민추진위'소속 회원들이 '기름장어 반기문은 부당한 한일합의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밝혀라', '피해자 울리며 대통령 하시게요?' 등의 피켓을 들고 항의시위를 벌였습니다. 이런 모습을 본 버스 기사가 춥다며 목장갑을 집회참가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많은 국민들이 반 전 총장님의 말바꾸기 발언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저는 묻고 싶었습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반 전 총장님의 진심이 무엇이냐고...

위안부 문제 질문이 행사진행 방해? 오히려 취재방해 받아

반 전 총장님은 작심한 듯 "같은 질문을 계속 하니 저도 괴롭다"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상당히 오해를 많이 하고 있다. 위안부에 대해 어마어마하게 과오를 저지른 것처럼 말씀하시는데 절대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반 전 총장님은 김영삼 정부 이전부터 위안부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노력을 해왔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위안부 문제에 드디어 (일본)총리가 사과하고 정부예산으로 (보상을)하겠다 해서 어느 만큼 기틀이 잡힌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위안부의 한을 풀어줄 수 있는 이런 범위 내에서 합의가 돼야 한다. 비록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 기틀이 잡혀간 것"이라며 "완전히 끝났다, 그렇게 오해하지 말라"고 당부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어떤 언론이 얘기하더라도 앞으로 답변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반 전 총장님은 또 귀국 당일 공항철도 티켓을 구매하면서 발권기에 1만 원권 지폐 2장을 한꺼번에 넣으려 한 것이 계속 화제가 되는 것을 의식해 "파리에 가서 전철 (표) 끊을 때 금방 할 수 있나"라며 "애교로 봐줄 수 있는데 답답하다"고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제 질문이 많이 섭섭하셨나 봅니다. 반 전 총장님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오면서 대변인에게 "내가 마치 역사의 무슨 잘못을 한 것처럼... 나쁜 놈들이다"라고 말하셨기 때문입니다. '들'이라고 했으니 저만은 아니겠지요. 다른 지역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질문이 계속 이어졌으니까요.

하지만 문제의 발언이 언론에 공개되자 보도자료를 내고 "최근 잇따르고 있는 꼬투리 잡기와 흠집내기식 보도 및 정치공세에 강력한 어조로 비판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대구 청년회의소 임원들과의 만찬 간담회 도중 일부 인터넷 언론사 기자들이 행사의 진행을 방해하며 질문 공세를 퍼붓자 이에 답하며, 한국 일부 언론과 정치권의 악의적 왜곡 및 편 가르기 등 관행화된 부조리에 대해 격정을 토로한 것"이라고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8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하기 앞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피켓을 들고 위안부 발언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8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하기 앞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피켓을 들고 위안부 발언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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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식당에서 한 기자가 청년문제에 대해 물었고 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행사를 전혀 방해하지도 않았고 반 전 총장님의 발언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질문을 한 것입니다. 오히려 경호원들이 옷을 잡아당기는 등 취재방해를 했습니다. 여기에 대한 해명을 요구합니다.

반 전 총장님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지는 않으셨지만 이미 국민들로부터 유력한 대선주자로 인정받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에 대해 대답할 의무가 있습니다. 반대로 저는 기자로서 국민들의 궁금증을 대신해 질문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말로만 국민들을 위한다고 하지 마시고 진정한 소통을 하셨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사족 하나. 며칠 전 일본군 위안부 출신 이용수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이용수 할머니께서는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해 유엔 본부를 찾았을 당시 반 전 총장님이 만나주지 않아 많이 섭섭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말바꾸기 논란에 진심어린 사과를 받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용수 할머니께 "제가 대신 묻고 대답을 들어 전달해 드리겠습니다"라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이 질문 하나로 인해 '나쁜 기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만족할 만한 답변을 전해드리지 못해 이용수 할머니께 죄송합니다.


태그:#반기문, #일본군 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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