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부작 중 이제 겨우 1부가 방영됐을 뿐인데, 반응이 뜨겁다. <SBS스페셜-엄마의 전쟁> 1부에서는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워킹맘'의 일상을 대기업에 다니는 양정은씨와 간호사인 남궁정아씨를 통해 보여준다. 이들은 직장도 아이도 포기하고 싶지 않지만, 그들을 둘러싼 현실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방송은 말한다. 이것은 엄마의 전쟁이라고. 하지만 과연 이것은 엄마만의 전쟁일까.

아이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장면 하나. 학원 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리러 회사에서 빠져나와 유치원에 잠시 들른 아빠. 아빠는 아이에게 묻는다. "아빠가 (데리러) 올까요? 엄마가 올까요? 할머니가 올까요?" 아빠 품에 안긴 아이는 "아빠"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아이의 대답과는 영 다른 자막이 나온다. '사실 엄마라고 말하고 싶지만'

 SBS스페셜-엄마의 전쟁(1부) 중 한 장면.

SBS스페셜-엄마의 전쟁(1부) 중 한 장면. ⓒ SBS


장면 둘. 어린이집에 간 아이는 전화기에 대고 "엄마 사랑해요"라고 말한다. 이번에도 자막은 아이의 대답과는 딴판이다. '모든 걸 용서할 테니 제발 내게 돌아오시오'라는 자막. 순식간에 일터에 있는 엄마는 아이에게 용서받아야 할 존재가 되고 만다. 아이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어떤 아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데, 이들은 모두 아빠가 아닌 엄마를 찾고 엄마에게 죄를 묻는 아이가 되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아이들 곁에는 어찌 됐건 (아빠가 아닌) 엄마가 있어야 한다'는 프로그램의 당위에 기댈 수 있게 한다. 프로그램의 취지가 '엄마'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진행되다 보니 개별 장면에 제작진이 원하는 의도가 자막 혹은 내레이션의 형태로 삽입된다. 하지만 이는 출연자를 통해 말해진 바 없고 결코 사실도 아니다.

처음부터 육아는 엄마들의 일?

 SBS스페셜-엄마의전쟁(1부) 중 한 장면

SBS스페셜-엄마의전쟁(1부) 중 한 장면 ⓒ SBS


프로그램의 당위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다시 드러난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3교대 근무를 하는 간호사이기도 한 남궁정아씨에게 제작진은 "혹시 전업주부가 돼 보실 생각해 보신 적 없으세요?"라거나 "본인은 여자예요? 엄마예요?"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혹은 간호사로서의 삶을 이어가겠다는 그를 두고 "그녀는 왜 고집을 꺾지 않는 걸까요?"라며 내레이션을 통해 반문하기도 한다. 여기에는 오로지 일과 아이를 선택해야 하는 엄마만이 남고, 맞벌이를 함께 하고 있음에도 아빠라는 변수는 고려되지 않는다.

JTBC <비정상회담>의 미국 대표인 타일러 라쉬는 <비정상회담>에 '워킹맘'이라는 주제가 나왔을 때 "여자는 왜 (일과 아이)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지"라고 다른 패널들에게 묻기도 했다. 왜 남자에게는 아무도 일과 아이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SBS스페셜> 속 육아는 결국 엄마(만)의 전쟁이 된다. 아무도 남궁정아씨의 남편에게 전업주부가 될 생각이 있는지, 본인은 남자인지 아빠인지를 묻지 않는다. 이는 남편도 시부모도 그리고 '엄마의 전쟁' 제작진도 그렇다.

<SBS스페셜-엄마의 전쟁>은 처음부터 육아를 엄마들의 일이자 전쟁이라 설정한다. 이는 특히 '엄마들의 전쟁에 난데없이 주인공을 자처하고 나선 이 남자', '오늘 같은 휴일엔 늦잠을 자고 싶은 한국의 보통 아빠입니다'라는 내레이션과 자막에서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엄마들의 전쟁이란 곧 육아이며, 남자는 그저 육아 전쟁에 잠시 끼어들어 도와주는 존재로 그려진다.

 SBS스페셜-엄마의 전쟁(1부) 중 한 장면

SBS스페셜-엄마의 전쟁(1부) 중 한 장면 ⓒ SBS


육아를 엄마의 전쟁으로 만드는 것

<SBS스페셜-엄마의 전쟁> 기자간담회에서 최삼호PD는 "얽히고설킨 문제가 평생에 걸친 엄마의 전쟁에 다 들어 있다. 들여다 보면 '해결의 씨앗'도 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취지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때로는 그럴 수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해결의 실마리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SBS스페셜>이 제시하는 해결의 실마리는 오로지 '엄마의 일생 과업'인 아이들에 국한된다. 이 프로그램은 결코 육아휴직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정해진 시간에 퇴근하지 못하는 부모의 고충에 대해 말하려 하지 않는다. (양정은씨의 아이들이 엄마의 부재를 힘들어하는 이유는 태어나기 전부터 그들과 가장 긴밀한 유대 관계를 형성한 존재가 엄마라서이기도 하지만, 아빠가 없는 엄마만의 육아휴직 이후라서이기도 하다). 활용되지 않는 제도와 시스템, 그것이 육아를 가로막고 있는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SBS스페셜-엄마의 전쟁>은 그것들을 아예 배제한다.

프로그램이 '엄마'에게 요구하는 건 일과 아이 사이에 놓인 선택지뿐이다. 엄마는 이들 선택지 중 하나 혹은 둘을 현명하게 골라야 하며, 엄마가 아닌 그 밖의 모든 것은 변하지 않고, 변하는 것이 선택지로 주어지지도 않는다. 결국 해결의 씨앗도 엄마의 희생으로 틔우라는 말이다.

<엄마의 전쟁>은 엄마를 더한 전쟁터로 내몬다. 엄마들로 하여금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고 진정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엄연히 사회적 문제인 육아를 개인의 선택으로 미룬다. 이들 프로그램의 취지인 '해결의 씨앗'은 개별 개인의 선택으로는 결코 찾을 수 없다.

SBS스페셜 엄마의 전쟁 방송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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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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