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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는 왼쪽부터 탈루 엘엔(Tallur L. N. 인도), 알프레드 23 하르트(A. 23 Harth 독일), 사이몬 몰리(S. Morley 영국), 베른트 할프헤르(B. Halbherr 독일), 폴 카잔더(P. Kajander 캐나다), 라파엘(Rafael 스페인), 잉고 바움가르텐(I. Baumgarten 독일), 곤도 유카코(K. Yukako 일본) 그리고 기자간담회에 참석하지 않은 故 에밀 고(E. Goh 호주), 루크 슈뢰더(L. Schroder 네덜란드), 클레가(Klega 체코), 올리버 그림(O. Griem 독일), 쉥겐 림(S. Lim 싱가포르)이 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는 왼쪽부터 탈루 엘엔(Tallur L. N. 인도), 알프레드 23 하르트(A. 23 Harth 독일), 사이몬 몰리(S. Morley 영국), 베른트 할프헤르(B. Halbherr 독일), 폴 카잔더(P. Kajander 캐나다), 라파엘(Rafael 스페인), 잉고 바움가르텐(I. Baumgarten 독일), 곤도 유카코(K. Yukako 일본) 그리고 기자간담회에 참석하지 않은 故 에밀 고(E. Goh 호주), 루크 슈뢰더(L. Schroder 네덜란드), 클레가(Klega 체코), 올리버 그림(O. Griem 독일), 쉥겐 림(S. Lim 싱가포르)이 있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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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사는 외국작가들 작품을 한 자리에 모아 선보이는 특별전이 '유니버설 스튜디오, 서울'라는 제목으로 서울시립미술관 1층에서 8월 10일까지 열린다.

이번 특별전은 외국인 눈으로 우리를 보고 판별하고 시각화한 작품으로 우리가 시대 정신에 제대로 맞춰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외국인 작가가 보는 한국을 환상적인 시선으로 기대할 수도 있으나 대부분 작가의 반응은 한국에 거리를 두고 객관으로 보는 '차가운 애정과 관심'을 보였다.

 '클로드 라이르(벨기에작가)' 그림 앞에서 유창한 한국어로 설명하는 2004년 '코리안-아이즈드' 기획자 '벤자민 주아노'
 '클로드 라이르(벨기에작가)' 그림 앞에서 유창한 한국어로 설명하는 2004년 '코리안-아이즈드' 기획자 '벤자민 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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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국적의 외국작가들이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한국에서 어떻게 살았고 어떤 작업을 해왔는지 엿볼 수 있다. 2004년 민간차원에서 '벤자민 주아노(2013년 한불문화상수상자)' 씨가 기획해 인사동 관훈갤러리에서 열리기도 한 '외국작가 눈에 비친 한국인(코리안-아이즈드)' http://bit.ly/34OCLU 와 비교해도 재미있으리라.

이번 전시에는 일본, 독일, 영국, 체코, 인도, 호주, 스페인, 캐나다, 네덜란드, 싱가포르 등 10개국 13명 작가가 초대되었다. 서울시립미술관 측은 남성과 백인중심인 걸 기획단계에서 고민했으나 수준 있은 작품을 엄선하다 보니 직업이 어느 정도 보장돼야 하기에 한국에 오래 체류한 작가위주로 선발된 점을 아쉬워했다.

2013년 말 서울시통계에 의하면 서울시에 160여 개국에서 건너온 등록외국인(91일 이상 체류자) 24만4천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서울 총인구의 2.4%를 차지한단다. 등록되지 않은 외국인까지 합치면 더 많다. 서울은 지금 국제도시로 변모 중이다.

동서명소를 사진 찍어 조각처럼 원구에 담다

 베른트 할프헤르 I '한옥(앞)'과 '바로크 교회(Baroque Church)' 사진조각(Photographic sculpture) 2012
 베른트 할프헤르 I '한옥(앞)'과 '바로크 교회(Baroque Church)' 사진조각(Photographic sculpture)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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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참가한 몇 작가의 작품을 감상해 보자. 먼저 독일 출신 '베른트 할프헤르(B. Halbherr)', 그는 독일 뒤셀도르프미대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자국에서 활동하다. 2006년부터 한국에서 활동해 온 작가로, 현재 중앙대 조형예술학 부교수다.

'할프헤르'는 이번 전시에서 서양의 명소 바로크나 고딕성당과 한국의 명소 전통한옥, 제주 동굴, 한라산 숲과 함께 베를린 축구경기장, 2002년 월드컵스타디움을 비교한 파노라마 방식으로 360도로 촬영한 환상적 사진 조각을 구의 형태에 담아 제작한 것이다. 이런 사진을 추상화된 평면으로 처리한 작품도 흥미롭다.

한독건축물 비교로 문화차이를 읽다

 잉고 바움가르텐 I '무제(서울서교동주택)' 캔버스에 유화 140×100cm 2011
 잉고 바움가르텐 I '무제(서울서교동주택)' 캔버스에 유화 140×100cm 2011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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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역시 독일 작가인 '잉고 바움가르텐(Ingo Baumgarten)'의 작품을 보자. 그는 독일 '칼스루헤' 국립예술조형대학을 졸업한 후 파리, 영국, 일본 등에서 수학하고 현재 홍익대 회화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재료와 기준의 차이로 예컨대 독일에서 가장 흔히 쓰이는 붓이 한국에는 없어 작업할 때 당황했다는 소감도 피력했다.

작가는 "사람은 건축을 만들고 건축물은 다시 사람의 삶을 설계하다"라고 말하는데 결국 이는 건축물이란 그 지역의 특성과 역사를 담은 중요한 문화 산물이 된다는 해석이다. 여러 곳에 산 경험이 각 지역의 건축변천사를 예리하게 읽어낸다.

이번에 전시되는 건축물 회화에는 2005년에 그린 전형적인 독일 '프리드리히샤펜' 지역의 건물과 2011년부터는 한국의 건축물과 비교하고 있는데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한국건축이 서양 것을 모방했으면서 보이지 않게 한옥이 곡선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동서양 건축의 공존에 놀라며 그 원인이 뭔지 물음표를 던진다.

을지로 전기조명 통해 한국인 의식탐구

 폴 카잔더 I '쇼를 위해 밝혀진 빛(Lights Lit for Show)_을지로4가' 가변설치(Dimensions variable), 빛 상자(Light boxes) 2014
 폴 카잔더 I '쇼를 위해 밝혀진 빛(Lights Lit for Show)_을지로4가' 가변설치(Dimensions variable), 빛 상자(Light boxes)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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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카잔더(P. Kajander)'는 캐나다 출신으로 밴쿠버에서 시각예술과 이론을 공부하고 비디오설치작업과 사진작업을 해왔다. 2012년 한국으로 이주해 온 이후 현재 한국과 캐나다, 미국 등지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을지로 조명등가게에서 예쁘게 디자인된 관객을 눈길을 끌기 위해 밝혀진 전기불빛이 주는 의미가 뭔지 묻는다.

한국인의 상상력으로는 도무지 작품의 소재가 될 수 없는 것이 작품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게 우리입장에서 보면 기발하다. 하지만 사실 이런 전기불빛의 전시방식 속에 분명 우리의 미적 가치와 공간개념, 사회적 인식, 고객맞이 방식 등이 숨어 있다.

한국식 상품의 전시방식은 바로 한 상을 차릴 때 하는 방식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파란 눈의 서구인에게 납득하기 힘들 일이지만 우리는 서양인이 볼 때 낭비적인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우리는 한 상을 크게 차려야 성이 차는 그런 일면도 있다.

하지만 상품진열에서 전구를 너무 밝은 건 한국인의 무의식속에 담긴 남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의 반영인지도 모른다. 작가는 이런 점을 주목하면서 상품으로서의 상징을 넘어 권력숭배와 제국주의에 길든 종속된 우리의식을 반영한 것인가.

"내 작업은 탐욕에 대한 분석"

 탈루 엘엔 I 'E=MC2' Mixed media(Feather, Silicone, Oil drum, Medical bed, Sand, Enamel paint) 280×100×210cm 2009
 탈루 엘엔 I 'E=MC2' Mixed media(Feather, Silicone, Oil drum, Medical bed, Sand, Enamel paint) 280×100×210c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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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인도출신 작가 '탈루 엘엔(Tallur L. N)'의 작품을 보자. 그는 인도에서 시각예술과 박물관학을 수학하고 영국 리즈대학교에서 현대미술을 전공한 후 현재 8년째 한국에 거주하며 뉴델리, 런던, 뉴욕, 서울을 오가며 활동 중인 작가이다.

이 작가는 "내 작업은 탐욕에 대한 분석이다"라고 말하면서 인간 탐욕이 비극을 낳은 걸 보여준다. 그는 인류가 보편적으로 고민하는 자본과 권력에 대한 인간 무한대의 탐욕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불안과 재앙을 테마로 설치작업을 한다. 그의 작품은 대형스케일인 것은 인간의 탐욕이 큰 만큼 참사 또한 큼을 알린다.

이번에 소개된 'E=MC2'나 대형 나무작품 '크로마토포비아'도 그렇다. 위 사진작품은 2007년 12월 7일 삼성1호가 선박충돌로 10,800톤 기름유출사건을 주제로 한 것으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태안해변에서 일어나 더 안타까웠으리라. 이는 결국 우리의 환경이나 경제에도 마이너스로 작용함을 일러준다.

전쟁이나 폭력을 게임처럼 보는 현대인

 올리버 그림 I '게임버전1,2' 멀티미디어 설치작품 3D printed figures, moving light, led lights, soundscape, 2013-2014
 올리버 그림 I '게임버전1,2' 멀티미디어 설치작품 3D printed figures, moving light, led lights, soundscape, 2013-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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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그림(O. Griem)'은 현재 홍익대 시각디자인과에 재직 중인 독일출신의 작가로, 쾰른과 함부르크대학에서 순수미술과 디자인을 전공하고, 1995년 한국에 정착한 이후 약 20년간 여러 나라에서 많은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해왔다.

그는 그동안 서울의 빠르게 변모하는 도시개발과 빼곡한 아파트에 대한 생각과 매스미디어에 노출되는 남북 관계 등에 관한 다양한 영상작업과 정보아트를 선보여 왔다.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미래가 결정되는데 전쟁이나 구조폭력을 게임쯤으로 쉽게 바라보는 요즘사람에게 경종을 울린다.

3D로 된 위 '게임버전1.2'는 사회를 살리는 '물주는 사람'도 나오고, 국가를 파괴하는 '전쟁을 하는 사람'도 나오고 이런 저런 풍경 속에 긴장감이 흐른다. 큰 자와 작은 자아가 들어간 작품 속에서는 개인악과 사회악을 동시에 균형감 있게 견제해야 사회의 발전에서 조화를 이룰 수 있음을 암묵적으로 발언하고 있다.

나머지 아시아 및 유럽작가들

중국출신 싱가포르작가 '쉥겐 림(S. Lim)'의 '북한을 달처럼 보다'는 북한을 관음증적으로 보는 세계인의 관점을 풍자한 것으로 백남준의 'TV는 가장 오래된 달이다'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2009년에 갑자기 작고한 중국출신 호주작가 '에밀 고(E. Goh)'는 아시아뒷골목의 정겨운 풍경을 감지해 이를 사진에 담아왔다.

영국의 '사이몬 몰리(S. Morley)'는 '보는 것'과 '읽는 것', 즉 이미지와 언어 사이의 관계를 교란하는 작업을 했다. 옥스퍼드대학, 골드스미스미대에서 근대사와 순수미술을 공부했고 사우스 햄튼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지성파 작가다.

'클레가(Klega)'은 체코작가로 뒤셀도르프미대와 골드스미스대학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고 작품과 함께 큐레이터역할도 한다. '라파엘(Rapaël)'은 스페인작가는 '겨울봄여름 가을' 지하철 안팎에서 계절별로 일어나는 생각을 변주해 보여준다.

일본작가 '곤도 유카코(K. Yukako)' 오사카 예술대와 '한예종' 출신으로 남편이 한국인이다. 너무나 빠른 한국식 문화속도에 지쳐선지 정체된 분위기를 내는 정물화를 주로 그린다. 지루한 일상 속에 흐르는 내밀한 감정을 한국문화의 조형적 특성에 담아내는데 때로는 17세기 네덜란드의 '바니타스 화풍'도 연상시킨다.

동과 서, 음악과 미술의 구분이 없는 작가

 알프레드 23 하르트 I '청자 뮤즐리(Celadon Musli)' Mixed Media Installation 350cm×250cm×300cm 2014
 알프레드 23 하르트 I '청자 뮤즐리(Celadon Musli)' Mixed Media Installation 350cm×250cm×300cm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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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 나에게 가장 관심을 끈 작가는 독일출신의 '알프레드 23 하르트'이다.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했지만 뮤지션, 작곡가, 연주자로 행위예술가로 더 많은 활동을 하는 작가로 이번 '세월호' 사건이전에는 한국은 매력적인 '대형야외미술관'이었는데 이젠 더 이상 그렇게 볼 수 없게 돼 가슴이 많이 아프단다.

작가 하르트는 서양 궁전스타일을 모방하긴 했는데 어설픈 국적불명의 만든 버려진 유치원지붕을 주워 온 짝퉁 디즈니랜드지붕 같은 걸 전시장에 가져와 관객에게 폭소를 터트린다. 그의 작업실근처 임진각에서 발견한 도자기파편으로 만든 '청자 뮤즐리(Müsli)'과 그 청자파편을 오래 보관해야 한다며 냉장고에 넣어둬 관객을 또 웃긴다.

거기에는 어떤 메시지가 있다. 오랜 역사와 문화전통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걸 소홀히 하고 서양 걸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점을 풍자한 것이다. 외국인 눈으로 보면 너무나 소중한 것인데 막 버리는 게 너무 많다며 우리에게 각성을 촉구한다.

[음악·미술·연극등을 뒤섞는 종합예술가 하르트씨] 연희동근처 카페에서 인터뷰
 '저스트 음악(Just Music, 1970)' 단원들, 왼쪽에서 알프레드 하르트, 니콜 반 덴 플라스, 토마스 크리머, 프란츠 볼하르트, 피터 슈토크(Alfred Harth, Nicole Van den Plas, Thomas Cremer, Franz Volhard, Peter Stock) 하르트, 그는 미국식 재즈를 유럽식재즈로 재해석한 창립자 중 한 사람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위키피디아 참고
 '저스트 음악(Just Music, 1970)' 단원들, 왼쪽에서 알프레드 하르트, 니콜 반 덴 플라스, 토마스 크리머, 프란츠 볼하르트, 피터 슈토크(Alfred Harth, Nicole Van den Plas, Thomas Cremer, Franz Volhard, Peter Stock) 하르트, 그는 미국식 재즈를 유럽식재즈로 재해석한 창립자 중 한 사람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위키피디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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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프레드 23 하르트', 당신의 이름과 성 사이 23이 들어가는 이유는?

"저는 1985년부터 23이라는 이름에 추가했는데 그 이유는 그 해가 신자유주의가 극성을 부리고 신냉전시대가 도래해 전쟁 직전까지 가는 긴박한 상황을 맞아서였다. 1985를 합치면 23이 되는데 일종의 수리학이라 할까요. 저는 숫자에서 신비로움을 찾는데 그리고 동양의 주역을 자주 참조해요.

거기 '23쾌'를 보면 '剝(박살내다)'이 나와요. 기존질서를 부수고 파괴하고 무너뜨리고 분쇄시키고 뭔가 새로운 세계를 열기위해 불가피한 시대정신을 뜻이겠죠. 독일에서 '리처드 빌헬름'이 주석한 <주역>이 권위가 있어요. 문장을 미화시키지 않고 원래 뜻에 충실한 직역을 했어요. 저는 주역에 나오는 제목을 작품명으로도 써요. 다중적 의미와 서구의 '구체시'가 같은 문장이 많고요. 과학 그 이상의 영감을 주죠"

- 백남준은 음악을 하고 미술을 했지만 당신은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하고 음악을 했다. 그리고 당신의 음악은 서구적인 걸 뒤엎다 왜?
"저는 어려서부터 음악을 쭉 해왔어요. 대학에 가서 더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해 직업으로 미술교사가 되려고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해 교사도 조금 했고요. 고향 프랑크푸르트 주변은 '카셀(도큐멘타)', '플럭서스'가 시작된 '비스바덴' 그리고 백남준이 초기 활동한 '다름슈타트' 등 다 음악과 미술의 중심지예요. '68혁명' 때 17살이었는데 당시 유럽청년은 요즘 한국청년처럼 정체성을 상실하듯 방황했어요. 삶은 다양한데 사회는 한쪽만 가라고 하니 답답했죠. 기존의 합리주의를 거부하고 권위주의에 반항하는 세대예요. 모든 경계와 통념을 없애고 전통을 전복시키는 것에 익숙하다보니 음악도 그래요.

아 백남준 이야기도 해야죠. 백남준은 천재로 TV로 새로운 돌파구를 열었지만 전 할 게 없어 음악만 해도 한 가지가 아니라 '락·펑크·현대전위음악'을 다 섞었고 독일에서 중시하는 연극도 합치는 실험을 했어요. 백남준 선생도 종합예술을 상징하는 '비빔밥'이라는 쉬운 단어를 썼죠. 지금은 통하지만 당시 독일의 평론교황(권위자)들에게는 먹히지 않았어요. 사실 이게 실패의 위험이 놓은데 백남준은 예술을 통합하는데 성공했는데 그런 면에서 그는 천재죠. '요셉 보이스'도 "모든 사람이 다 예술가다" 취지는 좋지만 오해의 소지가 많았고, 그의 후계자들이 독일대학에서 일부 개방강의를 했지만 오래 하지 못했어요"

- 예술가 된 계기는 언제부터죠?
"저희 집에 나이 많은 큰 형(전 하이델베르크 대학 독일어교수)이 있는데 8살 때부터 절 전시장에 데려갔는데 다다이즘 전시였어요. A4용지가 붙어있고 그 가운데 까만 구멍 하나 그려져 있었는데 그 밑에 제목이 '배꼽'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그래서 나도 그걸 할 수 있고 하고 싶다고 생각해 예술가가 되기로 했죠. 전시장에게 돼지저금통을 털어 겁 없이 '귄터 위커(Günther Uecker 1930-): 못 그림으로 유명한 독일작가)' 작품을 사기도 했어요.

1967년 '저스트 뮤직(Just Music 위 사진)'으로 데뷔해 69년에는 ECM 디스크 출간했고요. 우리는 '68세대'의 세례를 받았죠. '아도르노'나 '하버막스'(프랑크푸르트학파)가 당시 정신적 지도자였어요. 그렇다고 제가 맑스주의자는 아니죠. 68세대는 예술을 위한 예술 거부하고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예술을 하려고 했죠. 우리세대는 지역주의, 서양우월주의 벗어나려 했고 저는 거기에 동의했어요"

 알프레드 23 하르트 작가, 도시락으로도 연주하는 전위음악가 및 전위미술가
 알프레드 23 하르트 작가, 도시락으로도 연주하는 전위음악가 및 전위미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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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7년 작성한 '예술종합론(On Synaesthetics)'의 골자는 뭔죠?
"하나의 예술을 깊이 파고들어가다 보면 탈장르, 다원예술 등이 가능하다고 본 거죠. 음악, 미술, 시(詩)가 다 통해요. '칼 융'이 말하는 경계와 국경이 없는 '집단무의식'이 바로 그런 것이죠. "음악은 '생각하는 소음'이다"라는 위고의 말을 인용하셨는데 그게 종합예술이죠. 그는 문학가지만 상당히 멀티한 예술가예요. 시만 아니라 음악, 연극에도 관심이 있었죠. 그의 생각은 당시보다 오늘날에 더 맞아요"

- 예술에서 개념보다 태도를 중시한다고 무슨 뜻인지?
"이걸 예술로 설명하기 힘들고 미안하지만 한국정치로 비유할게요. 한국의 대통령이 4대강 개발에 녹색성장 개념을 들고 나와 좋은 사업처럼 포장했지만 그 태도에서는 정반대였잖아요. 개념은 좋은 것 같지만 그 태도 비인간적, 비윤리적이었죠. 예술도 이처럼 개념보다 태도가 중요하고 과정도 중요해요"

- 백남준은 왜 독일에서 인기가 있나요 음악적 미술이라고 그런가요?
"음악적 미술은 조금 설명하기 힘들고 하여간 백남준 삶과 음악이 하나였고 그의 비디오작품을 편집한 것을 보면 비트음악과 속도감, 리듬감, 중시한 건 매우 음악적이에요. 그리고 백남준이 독일에서 인기가 높은 건 2차 대전 이전은 프랑스가 유럽미술을 주도했지만 2차 대전 이후 미국으로 주도권이 넘어가고요. 독일은 늦었지만 1970년대 '보이스'와 동양에서 온 최대응원군인 백남준 느닷없이 나타나 경계를 벗어나는 탈장르 아트로 독일미술을 세계적 위상으로 끌어올렸어요. 그러니 백남준은 독일미술의 슈퍼스타죠. 그는 독일만 아니라 세계미술을 바꾼 20세기와 21세기를 연결한 '다빈치' 같은 예술가죠"

-그렇다면 일반 연주(연극)나 퍼포먼스예술과 차이는 뭡니까?
"연주나 연극은 이미 만들어진 대본이나 악보에 의존하지만 퍼포먼스는 그런 게 있어도 거기에 의존지 않고 보다 자유로운 몸짓과 창의적 대사로 할 수 있어요. 대본과 다르면 틀린 것으로 나쁘다고 하는데 예술은 반대로 해야 창조적이죠. 매순간 음악을 작곡하고 몸짓을 만드는 것 그리고 어떤 난관에서도 창조적 힘과 긍정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 동양에서는 직관의 힘인가요. 그렇게 뚫고 나가는 것이 다르죠"

 연희동 한 카페에서 인터뷰 중 박장대소하는 '알프레드 23 하르트' 부부. 두 분 은 궁합이 잘 맞는 천생연분이다
 연희동 한 카페에서 인터뷰 중 박장대소하는 '알프레드 23 하르트' 부부. 두 분 은 궁합이 잘 맞는 천생연분이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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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여성의 아름다움과 그 특징은 뭐죠?
"제가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한국여성이라서가 아니라 그의 개성과 인간, 그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죠. 통역을 맡은 아내 이순주 작가(프랑크푸르트 국립미대 졸업 '한예종'에서 10년 간 미술 강의)도 자신은 외계인인 고양이인지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고 농담을 하면서 한마디 거든다. "서양남자들 오리엔탈리즘이 있지만 누구를 사랑하는데 국적은 무슨 의미가 있나"고 한마디 던진다.(웃음)"

- 예술가로 사는 행복이란?
"저는 운이 좋게 미국식 재즈를 유럽식 재즈로 재창조한 공로자로 인정을 받아 세계 유명 재즈페스티벌에서는 거의 다 초청을 받아요.[서양재즈음악사에서 중요인물] 그래서 어려움 없이 전 세계연주여행을 해요 고마운 일이죠. 최근에도 초대를 받아 홍콩, 상해, 북경에서 '노이즈' 연주회도 했고 올 후반기에는 남아프리카와 영국에서 연주할 예정이에요. 한 주 전에 한국을 방문한 사회학자 '울리히 벡' 교수는 사회적 빈곤층에게 경제적 지원프로그램이 국가가 보장해줘야 한다고 했죠.

네덜란드에서 그래서 생활고로 시달리는 재즈연주자에게 혜택을 줬는데 절심함이 떨어져선지 연주가 더 나빠진 사례도 있어요. 그래서 경제적 지원이 만능은 아니죠.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정말 용서할 수 없는 정책이에요. 이것은 자유주의, 자본주의를 망하게 할 수도 있어요. 여기서 예술가에게 중요한 것은 '균형적 삶(Balance Act)'를 유지하는 거예요. 물질이 중요하지만 잘 절충을 해야죠. 비용이 적게 들고 삶의 질을 높이는 방안을 찾는 게 중요하죠"

- 신문에 보니 '일제만행' 등 역사문제로 일본친구와 단절했다고?
"최근에도 일본에 가 연주회를 했는데 한국역사나 정치와 독도를 이야기가 나오면 절대 굽히지 않아요. 저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독일은 자신의 역사적 과오로 인해 분단이 된 것은 당연하지만 일본이 역사적으로 만행을 저질렀는데 일본이 분단이 안 되고 왜 희생자인 한국이 분단이 됐는지 등을 따져요"

- 한국의 전통음악에도 관심이 많나요?
"이 세상에 국악만한 재즈가 없어요. 국악도 사랑하죠. 어느 날 우연히 CD에 들은 고 '김석출' 씨가 태평소 연주를 듣고 감동했어요. 서양악기와 많이 다르지만요. 저도 가끔 외국연주에서 태평소를 불어요"

- 한국이 이해하기 힘들어 더 매력적이라고 했는데 그 포인트는?
"여러 나라 연주여행을 했지만 난개발이 문제지 한국풍경이 좋고요. 물, 산, 바다 좋아요. 황사, 장마가 불편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인과 '주파수'가 잘 맞는다는 점이에요. 게다가 개인적 설명할 수 없는데 '하이브리드'한 성격 '오래된 것과 첨단의 것', '동양과 서양',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 등이 뒤죽박죽 될 수 있다는 점 무질서한 혼란이 주는 역동정이 있어요. 그리고 백남준은 한반도에서 세상으로 나갔지만 저는 이쪽으로 왔잖아요.

여기서 정신적으로 영양가 있는 시간 많이 보내고 있어요. 암기식 공부를 한 적이 없어 한국어 습득하려니 잘 안돼서 요즘은 언어보다 한국의 고요함을 들으려고 해요. 의미보다 소리를 중요하죠. 그게 더 소통이 잘 될 수도 있고요. 중년 후반에 한국에 온 이유는 독일사람 이미지 벗어나서 유명세 뭐 그런 거 사라져도 상관이 없어요. 사라짐으로 나타나는 역설도 있으니까요(웃음)"

 2009년 '석장승' 없애기 전 북인사동 인구, 어느 풍류객이 피리로 퍼포먼스를 벌리다. 당분간 이렇게 멋진 풍경을 볼 수 없게 되었다
 2009년 '석장승' 없애기 전 북인사동 인구, 어느 풍류객이 피리로 퍼포먼스를 벌리다. 당분간 이렇게 멋진 풍경을 볼 수 없게 되었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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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우리가 소중한 것 막 버리고 이상한 걸 모방한다"고 하셨는데 지금 북인사동 입구 '석장승' 전 시장(市長) 때도 현 시장 때도 없어졌어요. 제가 이 문제로 종로구청이 자주 다녀요.
"한국은 너무나 언제부터 엣 것을 보전하는 문화는 없어요. 저는 지금도 작업실이 비무장지대 가까운 '문산(과거 백제 고구려 신라의 국경지역)'에 있는데 자주 도자기 파편들 보물처럼 발굴하려 다녀요. 자개장도 다 길에 버리는데 저는 다 주워서 작품을 만들어요. 저도 인사동 입구에 남대문시장에서나 팔 싸구려 물건을 가져다 왜 거기서 파는지 모르겠어요. 그걸 보면 화가 나요. '석장승'은 인사동 더 없이 좋은 자라라고 생각해요. 언제든지 함께 할게요.

박원순 시장을 만나고 싶어요. 그리고 또 좋은 분 소개할게요. 이분도 독일 분으로 독일 최초의 한국학 박사로 정년 65세를 마치고 한국에 와서 71살에 무용가 '홍신자'와 결혼한 '베르너 사세' 씨 그분은 이번 <유니버설 스튜디오 서울> 전시도록에 장문의 글을 썼고요. 한국 언론에 많은 소개로 유명인사인데 그분도 이 중요한 일에 동참할 거예요"

- 끝으로 '윤이상'선생 '친북파'라 기념관도 못 짓는데 독일에서 평가는?
"독일에서는 음악계 거장이죠. 한국사회에서 윤이상 선생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눈물이 핑 돌아요. 독일 '신음악(Neue Musik)'에 신선한 바람 일으킨 서양음악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뉴 뮤직을 개척했죠. 동서양음악의 혼합을 수준 높은 음악으로 끌어올린 대부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죠. 이건 그 어떤 아시아인으로 못했기에 독보적이에요. 정말 안타깝네요. 빨리 그 위대함이 인정받고 사랑받기를 바랄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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