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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여전히 중대재해, 산재사망 왕국이다. 노동부의 2013년 산재 통계를 보면, 2013년 한 해 동안 1929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했다. 매일 5.3명이 사망하는 것이다. 또 이는 산업재해보상보험으로 보상된 사망 건수만을 포함하는 것이므로 이보다 훨씬 많은 수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하고 있으리라 짐작된다.

현재 중대재해에 대한 투쟁은 주로, 현대제철을 비롯한 삼성, 대림, SK 등 대기업의 하청 비정규 노동자 사망에 대해 원청 기업의 책임을 묻는 '기업살인법 제정운동'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기업살인법 제정 투쟁은 사망 재해 문제를 사회적으로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법 제정이 실현된다면 사망 재해를 포함한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그 책임을 명확히 하는 데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다. 그러나 '기업살인법'이 입법화되더라도 실제 사망 재해를 포함한 중대재해를 현장에서 현실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동시 병행되는 노력이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작업중지권'의 실현이다.

식당 노동자는 왜 일산화탄소 중독 진단을 받았을까

제철소 작업 현장
 제철소 작업 현장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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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사회적 여론과 관심'을 모아내고, 입법 과정을 통해 기업살인법을 만드는 과정뿐 아니라, 현장의 주체 즉 노동자들 스스로 노동재해를 근절하는 노력과 시도가 맞물려야만이 건강한 일터를 실현할 수 있다. 나아가 노동자 관점에서는 현장에서의 안녕한 질서를 구현할 수 있는 토대를 쌓을 수 있다.

따라서 입법운동은 홀로 성립할 수 없으며 현장 주체의 실천 의지가 결합하여야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생명과 안전에 관한 현장의 저항권, 노동자 현장질서를 구현하는 '작업중지권'이 현실적으로 요청되는 이유다. 또한, 이러한 활동은 그 자체로 노동자 입장에서 현장질서를 구현하는 집단적 일상 활동이기에 소중한 것이다.

2013년 추석 연휴, 이화여대 식당에서는 환풍기가 고장이 난 상태에서 식당 노동자들이 일을 시작했다가 결국 한 명이 근무 중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가는 일이 있었다. 어지러움과 가슴이 울렁거리는 증상을 느낀 노동자들이 많았지만, 돌아가면서 바람을 쐬고 다시 업무에 복귀하길 반복하며 일을 하는 동안, 식당과 학교 측은 환풍기 고장을 방치했다. 결국, 3일 동안 이렇게 일하던 노동자 한 명이 쓰러져 응급실에서 일산화탄소 중독 진단을 받았다.' - 일터 118호, '작업중지권이 꼭 필요한 이유' 가운데

이 사례는 작업중지권이 노동자들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중요하고 기본적인 권리인지를 보여준다. 작업중지권은 무엇보다 먼저, 노동자 자신의 생명과 건강에 어떠한 위험을 초래하는 작업을 거부하여 자신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고자 하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다.

공공노조 서경지부의 하해성 조직차장은 위 사건을 겪으면서 신규 조합원뿐 아니라 조합 활동 경험이 많은 분회 간부들도 이런 상황에서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작업 중지권을 행사해야 할 상황 판단과 이어질 구체적인 행동을 단위 활동가, 조합원들과 소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현장에서 위험을 인지하고, 이를 거부하고, 작업중지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한다. 위험을 예측하고 인지하는 힘, 위험의 시정을 요구하는 힘, 위험이 해소될 때까지 작업을 거부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작업중지권은 현장 통제권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노동자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작업중지권'은 반드시 필요

"3월 27일 현대자동차 전주 공장 엔진 고마력 써브 공정에서 작업자가 4바늘 꿰매는 사고가 발생했다. 대의원들은 '작업재개 표준서'에 기초하여 조합원 설명회 시간을 요구하였으나, 회사 측이 이를 거부했다. 결국, 전체 대의원들이 엔진공장에 집결하고, 해당 엔진공장 조합원들이 고마력라인을 세우면서 생산이 이틀간 중단되었다. 현대차 전주 공장에서는 올해 들어, 집회, 텐트 농성, 구사대 폭력, 노사 양측 고소·고발 등 노사 간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데, 한 조합원은 "안전이나 노동시간 문제 등 별개의 사건으로 갈등하고 있지만, 핵심은 회사 측이 노조 활동을 옥죄려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매일노동뉴스 인용

자본은 생산 손실뿐 아니라 현장 통제권 측면에서 작업중지권 행사를 극도로 꺼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장 장악력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서 작업중지권의 행사 범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최소한, 중대재해가 발생했거나 중대재해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인지했을 때 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작업중지권은 지금 당장, 모든 노동자가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장에서 작업 중지권이 행사되기 위해, ▲ 위험을 어떻게 인지할 것이며 ▲ 필요한 조치를 어떻게 요구할 것인가 ▲ 상급 단체 및 시민사회·법률 단체의 지원은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  어떤 후속 조치가 취해졌을 때 작업을 재개하는 것이 가능한지 등이 제시되고 현장에서 쉽게 참고할 수 있어야 한다.

이화여대 식당에서 노동자들이 환풍기가 수리되고 이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있을 때까지 작업을 거부할 수 있기 위해, 현대자동차 측의 작업 중지 거부가 사회적으로 비난받고 노동자들의 투쟁에 사회적 연대가 형성되기 위해, 폭설이 내리고 한파가 오면 택배 노동자나 우편집배원 노동자들이 작업을 거부할 수 있기 위해 사문화되어 가는 '작업중지권'을 복원하고 실현하는 현장의 기획과 실행을 준비하자.

중대재해와 작업중지권이란?

* 중대재해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제2조]
다음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재해
1.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한 재해
2. 3개월 이상의 요양이 필요한 부상자가 동시에 2명 이상 발생한 재해
3. 부상자 또는 직업성질병자가 동시에 10명 이상 발생한 재해

* 작업중지[산업안전보건법 제 26조]
① 사업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또는 중대재해가 발생하였을 때에는 즉시 작업을 중지시키고 근로자를 작업장소로부터 대피시키는 등 필요한 안전·보건상의 조치를 한 후 작업을 다시 시작하여야 한다.
② 근로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으로 인하여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하였을 때에는 지체 없이 그 사실을 바로 위 상급자에게 보고하고, 바로 위 상급자는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③ 사업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을 때에는 제2항에 따라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한 근로자에 대하여 이를 이유로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④ 고용노동부장관은 중대재해가 발생하였을 때에는 그 원인 규명 또는 예방대책 수립을 위하여 중대재해 발생원인을 조사하고, 근로감독관과 관계 전문가로 하여금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안전·보건진단이나 그 밖에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할 수 있다.
⑤ 누구든지 중대재해 발생현장을 훼손하여 제4항의 원인조사를 방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일터> 기관지에 4월호에 실렸습니다.



태그:#중대재해, #작업중지권 , #산업재해, #노동자건강권,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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