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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박경석. 나이는 1960년생이니 올해 우리나라로 치면 55세. 대구에서 태어나 박근혜 대통령과 '매우 밀접한' 연관을 가진 영남대학교를 졸업했다. 대한민국 기준으로 치면 골수 새누리당 지지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 사람과 내가 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런데 나는 이 사람을 존경한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내가 인정하는 최고의 인권운동가 중 한 명이다.

특히 이 퍽퍽한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가 그동안 해 온 업적은 가히 독보적 수준이다. 박근혜 정권이 내세우는 이른바 '창조적' 발상이 아니면 누구도 도전하지 못할 성과였다. 예를 들어 '장애인 이동권'이라는 개념을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 용어로 만든 성과 하나만 보더라도 그의 성과는 단순히 '대단하다'는 말만으로 부족할 지경이다.

"장애인은 그저 주는 밥이나 먹으면서 가만히 있는 존재"로 강요되어온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에게도 이동할 권리가 있고 이는 국가가 보장해 줘야 할 당연한 의무라며 싸워온 박경석. 그의 현직은 노들장애인 야학의 교장이다. 그러한 박경석 교장을 내가 처음 만나게 된 때는 1996년 어느 날이었다.

무슨 장애인이 저렇게 해맑을까?

장애인 인권운동가 박경석 교장이 쓴 책 '나는 지금이 더 행복하다'에는 대한민국에서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며 살아온 그의 삶과 눈물, 그리고 희망이 담겨있다.
▲ 저자 박경석 교장이 쓴 책 '나는 지금이 더 행복하다' 장애인 인권운동가 박경석 교장이 쓴 책 '나는 지금이 더 행복하다'에는 대한민국에서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며 살아온 그의 삶과 눈물, 그리고 희망이 담겨있다.
ⓒ 책으로 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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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모 재야단체 사무실로 인권단체간 연대 회의를 하러 갔다. 지금은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데 여하간 여러 단체 활동가가 모여 몇시간에 걸친 회의를 했다. 이어 회의를 마친 후 "밥이나 먹고 헤어지자"며 인근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 모든 시간 내내 나의 관심을 끈 사람이 바로 박경석이었다.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인식, 그러니까 보통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장애인 이미지와 그는 너무 딴 판이었다. 아마도 사람들에게 '장애인'하면 떠 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어떻게 답할까. 영화 <말아톤>에서 영화배우 조승우씨가 연기한 이미지가 아닐까. 약간 어눌한 말투, 그리고 자신감이 부족한 이미지, 또는 우울하거나 과격한 이미지 등 말이다.

박경석 역시 그 기준으로 본다면 확실히 불행했다. 그는 1급 중증 척수 장애인으로 하반신이 불편하여 휠체어 없이는 단 한 발자국도 이동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런 박경석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처음 만난 박경석은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그런 인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특유의 강한 눈빛과 확신, 그리고 자신감과 익살이 어우러져 회의 내내 좌중을 압도했다. 나는 내내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그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그가 살아온 삶, 그리고 장애인 인권 운동에 투신하게 된 이유를 스스로 고백하는 책을 통해서였다. 책 <지금이 나는 더 행복하다>(저자 박경석, 책으로 여는 세상 펴냄)는 장애인 인권운동가 박경석이 쓴 일종의 '투쟁 회고록'이자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이라는 아픈 질문을 수없이 던지는 물음이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저자 박경석이 대한민국 '해병대'를 제대했다는 사실이었다.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 없이는 이동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해병대를 제대할 수 있었을까. 사건이 벌어진 때는 1983년 8월이었다. 박경석이 24살이 되던 그 해, 해병대 복무중 유난히 낙하산 타기를 좋아했던 그는 하늘을 날던 짜릿한 기억을 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행글라이더를 즐겼고 사고가 나던 그날도 경주 토함산 상공에서 하늘로 올랐다고 한다. 그런데 그만 추락했고 정신이 든 순간, 자신이 척수 장애로 인해  하반신이 마비되었음을 알았다고 한다. 하늘로 올랐던 그가 착륙한 곳은 장애인으로 살아가기 고통스러운 '절망의 땅'이었던 것이다.

후천성 장애인, 90%가 넘는다

보통의 사람들은 장애인이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고 흔히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장애인은 2012년 12월 말 기준으로 251만여 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리고 이중 90%가 넘는 이들이 박경석과 같은 후천성 장애인이다.

그렇기에 지금은 건강하다고 자신하겠지만 어떤 사건이나 질병으로 인해 장애를 겪게 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장애인의 기본적 인권에 거의 관심이 없다. 어쩌면 박경석 교장 역시 그날 그 사고가 아니었다면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개인 박경석에게 있어 대단히 비극적인 그 사건이 반면 대한민국 장애인 인권 운동사 관점에서 '또 다른 축복'이었다고. 물론 박경석 역시 사고 후 5년간 깊은 절망 속에서 오직 '죽을 방법'만 연구했다고 한다. 그러던 그가 절망을 깨고 희망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또 다른 반전이었다. 적어도 부모님 앞에선 죽을 수 없다고 여긴 효자 박경석은 어디론가 가서 죽기 위해 돈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때 "성경책을 읽으면 돈을 주겠다"는 매형의 제안이 있었고 그 돈을 벌기 위해 그는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성경을 읽으며 그동안의 무감각을 털고 다시 세상에 나오는 힘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사연을 듣고, 나는 그때 그가 장애인 인권 운동가가 아닌 목회자의 길을 걸었다면 성공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 특유의 위트와 재치로 '신앙 간증'을 했다면 분명 대박 성공한 목사가 되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지독한 고통과 힘겨운 시간을 거쳤다. 그 과정이 그가 쓴 이 책에 녹녹하게 묻어난다. 그가 어떤 길을 살아왔는지는 현재 그가 맡고 있는 직책만 대충 살펴봐도 알 수 있다. 장애인 이동권연대 공동대표, 장애인 교육권연대 공동대표, 장애인 차별금지법 제정 추진연대 상임공동대표 등이 그가 맡고 있는 굵직한 직책이다.

그중에 눈에 띄는 것은 무려 18년째 장기 집권하고 있는 노들장애인 야학 교장 직책이다. 독재자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 차원이 다른 '18년 장기독재'의 재미난 일화가 이 책에 가득한데 그 '아름다운 독재'를 읽다 보면 자연히 미소가 흐른다.

'어깨꿈' 박경석, 그가 다시 하늘을 나는 세상을 위해

"저의 별명은 '어깨꿈'입니다. '어차피 깨진 꿈'을 줄인 말입니다. (중략) 저는 개인적으로 어차피 깨진 꿈, 지금의 세상과 좀 다른 세상을 살고 싶습니다."

저자 박경석은 이 책 <나는 지금이 더 행복하다> 프롤로그를 통해 자신의 꿈이 그날의 사고 후 깨졌음을 아프게 고백했다. 다만 그렇게 깨진 꿈 때문에 절망과 고통 속에만 갇히지 않고 새 희망을 위해 다시 싸우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가 염원하는 꿈은 무엇일까. '시퍼런 경쟁의 도구로 차별과 억압의 들판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돕고 힘을 모아 인간 존엄성과 평등이 넘쳐나는 들판을 꿈꾸며' 만든 노들장애인 야학의 정신의 실현이다. 이를 통해 장애인들도 대한민국의 당당한 국민으로서 이동권과 생존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세상이 아닐까.

지난 2012년 10월 26일 화재로 사망한 뇌성마비 중증장애인 김주영씨의 노제가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가운데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투쟁사를 하고 있다.
 지난 2012년 10월 26일 화재로 사망한 뇌성마비 중증장애인 김주영씨의 노제가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가운데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투쟁사를 하고 있다.
ⓒ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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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과정은 쉽지 않다. 장애인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박경석의 항의에 국가 권력은 차별과 억압의 해소가 아닌 벌금형으로 화답했다. 그렇게 받게 된 벌금형 중 하나가 2012년 10월 고 김주영 활동가의 장례식 노제 건이었다. 그날 박경석은 행진을 막고자 경찰이 쳐놓은 폴리스 라인을 넘었다. 그 라인을 넘으며 박경석은 "고인이 살아 생전 꿈꿔왔던 것이 무엇이었겠나? 한 번이라도 자유롭게 다녀보는 것이다. 그러니 벌금이든 뭐든 다 맞을 테니 이 길을 열어 달라"며 절규했다.

그리고 2014년 3월 31일. 박경석은 그때 받은 벌금 200만 원을 낼 수 없다며 스스로 '구치소 노역형'을 자청했다. 정당한 권리 보장 요구를 제약하려는 의도로 국가 권력이 가하는 벌금형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마침 그때 법원은 대주그룹 허재호 전 회장에게 하루 노역 일당 5억 원을 책정하여 사회적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른바 '황제 노역'이라는 신조어였다. 반면 박경석의 하루 노역 일당은 5만 원이었다.

정말 '천민 자본주의'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허재호 전 회장이 우리 사회에 끼친 '악영향'이 하루 5억 원어치라면 그건 동의하겠다. 오히려 진짜 5억 원짜리 노역은 노들장애인 야학의 '박경석' 교장이다. 그동안 그가 우리 사회에서 이뤄낸 장애인 인권 권리에 대한 인식 전환, 그리고 앞으로 그가 우리 사회에 미칠 긍정적 역할을 따진다면 박경석 교장의 가치야말로 하루 5억 원이 넘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는 박경석 교장이 갇혀 있던 5일간의 노역을 일당 5억으로 계산해 벌금 200만 원을 제외한 나머지 비용을 역으로 지급해야 옳다. 그래야 제대로 된 셈법이 아닐까.

그래서 어떨 때는 책 한권을 사는 것도 투쟁의 도구가 되는 시대가 있다. 저자 박경석이 쓴 책 <지금이 나는 더 행복하다>는, 그래서 지금 우리가 그의 고난에 동참하는 의미로 읽어야 할 책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가 이 책에 담은 소박한 꿈, '더 많은 장애인들이 집구석과 시설에서 벗어나 지역 사회속으로 들어가 함께 살아가는' 상식적 염원이 당연한 권리로 보장될 세상에 함께 동참하고 싶다.

끝으로 박경석 교장에게 물었다. "다시 하늘을 날고 싶지 않냐"고.

그는 빙긋 웃으며 "이미 나는 지금 하늘을 날고 있다"고 답했다. 책 제목처럼 장애인 인권 운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는 뜻이었다. 언제쯤 그가 내려다보는 지상의 모습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그 날을 위해 '휠체어 슈퍼맨' 박경석 교장의 힘찬 '하늘 날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고로 나는 응원한다.

덧붙이는 글 | <지금이 나는 더 행복하다> / 박경석 (지은이)/ 책으로 여는 세상/ 2013-10-24 /13000원



지금이 나는 더 행복하다 - 스물넷에 장애인이 된 한 남자와 그가 사랑한 노들야학의 뜨거운 희망 메시지

박경석 지음, 책으로여는세상(2013)


태그:#박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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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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