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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욱, 신상규, 송명석, 안종택, 남기춘, 임철, 곽상도, 윤석만, 박경순, 노원욱, 임대화, 부구욱, 박만호, 전재기, 정구영, 김기춘.'

지난달 16일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재심 공판이 열린 서울고등법원 법정에서 최후진술에 나선 강기훈씨는 "무엇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누구에게 욕을 해야할지 그것도 잘 모르겠다"면서 이 16명의 이름을 읊었다. 자신을 동료의 분신자살을 부추긴 파렴치한 인간으로 만드는 데에 어떻게든 관련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당시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은 박 대통령의 열혈팬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회의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뒤에 보이는 이는 김기춘 신임 비서실장.
 2013년 8월 7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회의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뒤에 보이는 이는 김기춘 신임 비서실장.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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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름들 중 가장 마지막의 3명이 이 사건 당시 사법당국의 수뇌부들이다. 그 중에서 단연 김기춘 현 청와대 비서실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김 비서실장은 김기설씨가 분신한 뒤 18일 뒤인 1991년 5월 26일  노태우 대통령에 의해 법무부장관에 임명됐다.

유서대필 사건 관련자들 중엔 김 비서실장이 가장 '잘 나가는' 사람이었다. 1992년 10월 법무부장관을 그만 둔 김 비서실장은 그해 12월 대선에서 김영삼 민자당 후보의 승리를 위해 '초원복집 회동'을 열기도 했다. 부산시장, 부산지방경찰청장, 안기부 부산지부장, 부산지검장, 부산상공회의소장 등을 불러놓고 '지역감정 조장'과 '공무원 동원' 등 불법 선거운동을 모의한 일이 폭로됐지만 이를 주도한 김기춘 비서실장에겐 아무일이 없었다. 검찰은 김 비서실장만 불구속 기소했지만, 김 비서실장에 적용된 선거법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공소는 취소됐다.

오히려 김영삼 정권은 김 비서실장에게 한국야구위원회 총재직을 주고 신한국당 국회의원 자리를 줬다. 1996년 자신의 고향이자 김영삼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거제에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김 비서실장은 두 차례 더 당선돼 15~1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했고 허태열 비서실장의 후임으로 임명된 김기춘 비서실장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올라서게 됐다. 역시 공짜로 된 건 아니었다. 원로그룹인 '7인회'의 멤버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헌신한 결과였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법무부장관을 하기 전엔 검찰총장을 지냈다. 그 후임자가 유서대필 사건 당시의 정구영 검찰총장이다. 검찰총장 내정 때부터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기대는 사라졌다.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20개월 근무한 사람이 검찰총장이 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김기설씨가 분신한 1991년 5월 8일 정구영 검찰총장은 전국 검찰에 이어지는 분신자살에 조직적인 배후가 있는지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1992년 12월 임기 2년을 채우고 퇴임한 정 전 총장은 대우증권, 녹십자, 쌍용자동차, 두산엔진 등의 사외이사를 맡기도 했고, 지난 대선에선 다른 법조인 244명과 함께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나섰다. 전재기 당시 서울지방검찰청장은 1992년 대구고검장, 1993년 법무연수원장을 지낸 뒤 변호사로 개업했다.

공소유지 위해 부장과 검사들 묶어서 인사이동

 2007년 8월 15일 오후 여의도캠프에서 박근혜후보측 홍사덕, 안병훈 공동 선대위원장과 강신욱 법률특보단장 등이 검찰의 도곡동 땅 문제와 모 신문사의 김유찬씨 위증교사 CD및 녹취록 내용 등 이명박 후보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2007년 8월 15일 오후 여의도캠프에서 박근혜후보측 홍사덕, 안병훈 공동 선대위원장과 강신욱 법률특보단장 등이 검찰의 도곡동 땅 문제와 모 신문사의 김유찬씨 위증교사 CD및 녹취록 내용 등 이명박 후보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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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명의 이름 중 앞의 9명은 수사 일선이다.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들로, 1991년 5~7월 사건을 수사해 강씨를 자살방조죄와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기소하고 재판을 진행한 사람들이다.

강신욱 부장을 비롯한 신상규·박경순·송명석·곽상도·남기춘 검사는 강력부 소속이다. 유서대필 사건 수사를 지휘한 강 부장은, 1991년 7월 강씨를 기소한 뒤인 8월의 정기인사에서 서울지검 형사1부장으로 발령, 계속 서울지검에서 공소유지를 맡을 수 있게 됐다. 1991년 9월 10일자 <한겨레>기사는 "서열과 근무연한으로 보아 지방의 지청장으로 내려 보내는 것이 상례인데도 이례적으로 강 부장을 서울지검 형사1부장으로 임명해 재판을 책임지도록 했다"고 평가했다.  

강 부장 뿐 아니라 강력부의 신상규 수석검사와 중견 송명석 검사도 함께 형사1부로 배치한 인사가 이어졌다. 당시 법무부와 검찰 수뇌부가 유서대필 사건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공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수사팀장·부팀장을 징계하고 팀원을 전국으로 흩어놓은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팀에 대한 인사와는 대조적이다.

6공화국의 '범죄와의 전쟁'에서 성과를 올린 서울지검 강력부를 이끈 강 부장은 이전에도 대검찰청 중수부 과장과 서울지검 특수2·3부장을 역임하는 등 수사 핵심보직을 거쳤다. 특수2부장 시절인 1989년 11월엔 '라면 회사들이 공업용 쇠기름으로 라면을 튀겼다'며 회사 대표와 간부들을 구속, 라면업계의 판도를 바꾼 '우지라면 파동'의 진앙이 되기도 했다.

강 부장은 서울지검 2차장, 법무부 법무실장, 대구지검장, 인천지검장, 서울고검장을 거쳐 2000년엔 '검찰 몫' 대법관이 됐다. 지난 2007년 4월 대한변협 추천으로 한국신문윤리위원장에 선임됐지만 2개월만에 사직서를 제출, 박근혜 대선캠프 법률특보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경례하는 신상규 검사장  신상규(60) 광주고검장이2009년 7월 14일 광주고검 대회의실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국기에 대해 경례를 하고 있다. 신 검사장은 1981년 검사에 임용돼 부산고검 차장검사, 창원지검장, 광주지검장, 인천지검장 등을 지내며 형사, 강력, 마약, 특별수사 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았다
▲ 경례하는 신상규 검사장 신상규(60) 광주고검장이2009년 7월 14일 광주고검 대회의실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국기에 대해 경례를 하고 있다. 신 검사장은 1981년 검사에 임용돼 부산고검 차장검사, 창원지검장, 광주지검장, 인천지검장 등을 지내며 형사, 강력, 마약, 특별수사 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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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훈씨가 인터뷰 등에서 사건 수사 당시를 회상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이가 사건 주임검사였던 신상규 강력부 수석검사다. 이 사건 이후 1993년 부장검사로 승진한 신 검사는 대검 중수부 과장, 서울지검 특수2부장, 서울지검 형사4부장, 서울지검 3차장, 부산고검 차장, 창원지검장, 광주지검장, 인천지검장, 광주고검장 등을 거쳐 지난 2009년 변호사로 개업했다.

2011년 7월 사학분쟁조정위원회에서 동덕여학단(동덕여대·동덕여고 학교법인) 정이사 9명을 선임할 때 재단측 추천으로 이사가 됐고 같은 해 11월 이사장에 선임됐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 시절인 2013년 7월 대검찰청 사건평정위원장에 위촉돼 현재까지 맡고 있다. 이 위원회는 무죄 판결 사건에 대해  담당 검사의 과오여부를 평가하는 곳으로 강기훈씨에 대한 재심 선고 전 신 위원장 사퇴론이 일기도 했다.

강력부에서 같이 형사1부로 옮긴 3명 중 가장 기수가 낮은 송명석 검사는 지난 2004년 서울고검 재직 중 사망했다.

"잠 안 재우기·손찌검도" ... "당시엔 야간조사 허용"

다른 강력부 검사들도 강압수사 의혹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강씨는 1991년 1심 1차 공판에서부터 검사들의 강압수사가 있었다고 진술했다. 1991년 6월 24일 자진출두한 뒤 첫 이틀간은 잠을 재우지 조사를 강행했고, 조사받는 19일 내내 극심한 수면부족 상태에 있었다고 진술했다. 이후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도 강씨는 잠 안 재우기 뿐 아니라 서서 조사받기, 손찌검 등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당시 남기춘 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는 진실화해위에 대한 서면답변을 통해 "잠 안 재우기나 가혹행위를 한 사실이 없었다"고 밝혔다. 남기춘 검사는 1997년 청와대 파견근무했고, 대검찰청 중수부 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 울산지검장, 서울서부지검장 등을 지냈다 지난 대선에선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출범시킨 새누리당의 대선기구 정치쇄신특위에서 클린위원장을 맡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정부조직개편안 처리가 늦어지는 것에 대해 대국민담화를 발표할 예정인 가운데, 곽상도 민정수석이 배석하고 있다.
 곽상도 전 민정수석.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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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박근혜정부 첫 청와대 민정수석이 된 곽상도 수석에 대해 강씨는 "잠 안 재우기 담당"이라고 폭로했다. 이에 대해 곽 수석은 "당시는 수사 기관에서 피의자를 고문하고 협박할 수 있는 상황이 절대 아니었다"면서도 "당시에는 야간조사가 허용되고 있었음을 참고로 말씀드린다"고 했다.

안종택 검사는 공안부 수석검사로 강씨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추가기소했다. 13일 무죄 판결이 나온 재심 결과는 강씨의 자살방조죄에 대한 것이므로 안 검사의 추가기소 부분은 뒤집히지 않은 셈이다.

강력부 검사들 뒤에 등장하는 4명은 판사들이다. 1심 판결을 내린 노원욱 서울형사지법 판사는 강씨 사건 판결을 내린 뒤인 1992년 변호사로 개업했다. 노 변호사는 지난 1993년 율곡비리사건으로 구속기소된 이종구 전 국방장관의 변호를 맡기도 했다.

임대화 판사는 이후 서울지법 북부지원장, 세주지방법원장, 춘천지방법원장, 대전지방법원장을 거쳐 2000년에는 고등법원장급인 특허법원장을 지내고 2001년 변호사로 개업했다.

부구욱 배석판사는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를 끝으로 변호사 개업, 영산대학교 총장이 됐고 한국사립대학교총장협의회장을 맡고 있다. 박만호 판사는 강씨의 상고를 기각한 대법원 재판부 주심이었다. 박 전 대법관은 2002년 정부공직자윤리위원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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