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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았지만, 밀양은 여전히 울고 있습니다. 오늘도 움막에서 비닐 한 장으로 긴 밤을 지낼 할매·할배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과연, 송전탑은 밀양 주민들만의 문제일까요? 전국에서 에너지를 가장 많이 쓰는 서울의 에너지 자급률은 3% 정도. 지방에서 생산되는 에너지들이 밀양 등의 송전탑이나 가스관을 거쳐 서울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빚을 지고 있는 셈이지요. 어떻게 하면 그 부채를 줄일 수 있을까요? <오마이뉴스>와 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은 기획 <송전탑 없앨 수 있다>를 통해, 에너지 자립의 대안을 살펴봅니다. [편집자말]
밀양 송전탑 싸움을 해 오면서 생각하면 화나고 그러면서도 딱히 답이 없었던 부분이 있습니다. 밀양 송전탑 싸움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뒤 포털 사이트에 관련 기사가 뜨면 반드시 빠짐없이 달라붙는 욕설 섞인 댓글 때문인데요. 대개 '밀양은 전기 안 쓰나', '그 할배 할매들 전기 끊어버려야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선동은 사실 관계에도, 이치에도 맞지 않습니다.

한국전력공사는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공사를 계속하고 있다. 사진은 밀양 단장면 바드리마을 쪽에 있고 조립이 완료된 86번(왼쪽)과 88번(오른쪽) 철탑 모습.
 한국전력공사는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공사를 계속하고 있다. 사진은 밀양 단장면 바드리마을 쪽에 있고 조립이 완료된 86번(왼쪽)과 88번(오른쪽) 철탑 모습.
ⓒ 한국전력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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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송전탑 경과지 어르신들도 전기를 쓰긴 쓰지만, 765kV 송전탑은 밀양 지역에서 사용하는 전기를 위해 짓는 게 아닙니다. 고리 핵발전단지와 대용량 전기소비지역, 한전의 주장으로는 대구권 이남의 전력 부하를 막기 위해 건설되기 때문에 밀양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불평등한 에너지 구조 속에 고통받는 밀양 주민들

'밀양 노인네들 전기 끊어버려야 된다'는 험한 말들도 듣고 있습니다만,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아래 대책위)가 어르신들 전기요금 고지서를 조사해 보니 주민 태반이 1만 원도 채 안 되는, 웬만한 도시 가구의 반의 반도 미치지 않는 전기를 쓰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그렇겠지요.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이 사시거나 홀로 사시는 집이 대부분인 마을입니다. 저녁상 물리고 드라마 보며 까딱까딱 졸다 아홉시 뉴스 전에 잠자리에 드는 어르신들이 전기를 써봤자 얼마나 쓰겠습니까.

밀양 송전탑 싸움은 우리 사회의 이러한 불평등한 에너지 구조 즉, 도시 소비자들과 재벌 대기업들이 값싼 전기를 쓰게 하기 위해 시골 어르신들의 삶터가 짓밟히는 시스템을 대낮처럼 드러내 보여 주었습니다.

힘 없고 죄없는 자들이 힘 있고 죄많은 자들의 죄를 뒤집어 쓰듯, 에너지 불평등의 가장 핵심적인 수혜자들은 뒤로 숨고 피해자인 밀양 어르신들이 마치 전력 대란의 주범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습니다. 시골 노인네들이 쓸데없이 '땡깡'을 부리는 통에 전국민이 블랙아웃의 위험에 노출되었다는 식의 보수언론의 악선동에 어르신들은 몸을 움츠려야 했습니다.

지난해 12월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전력공사 본사 앞에서 열린 '밀양 송전탑 공사 중단 촉구 밀양 주민 상경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정부와 한전의 밀양 송전탑 공사 강행 중단을 요구하며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 "정부와 한전은 당장 공사를 멈추고 대화에 나서라" 지난해 12월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전력공사 본사 앞에서 열린 '밀양 송전탑 공사 중단 촉구 밀양 주민 상경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정부와 한전의 밀양 송전탑 공사 강행 중단을 요구하며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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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송전탑 반대에 나선 어르신들은 상상할 수 없는 위협을 느껴야 했습니다. 밀양 시내의 관변 단체들은 늘상 '당신들 때문에 밀양 이미지 다 나빠졌다, 어디 가서 밀양 사람이라고 고개들고 다닐 수조차 없다'는 식으로 악선동들을 해댔으니까요. 어쨌든, 저희 대책위는 고민 끝에 이런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베트남 전 막바지, 반전시위가 최고조에 달할 무렵이었을 겁니다. 한 무리의 참전 용사들이 백악관 앞에서 자신들이 받았던 훈장을 백악관 안으로 집어던지는 시위가 있었습니다. 그 충격적인 퍼포먼스가 베트남 전을 중단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해 보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집집마다 달려 있는 한전 계량기를 떼서 한전 본사 앞마당에 패대기치는 시위, 우리 고향, 우리 재산, 우리 건강 다 빼앗고 건설해서 보내는 그 더러운 전기는 안 쓰겠다는 단호한 시위. 그래서 '한전 계량기 떼고 태양광 달기 프로젝트'를 지난해 여름 끝무렵부터 시작했던 것입니다.

'계량기 떼고 태양광 달기 프로젝트'는 실패했지만...
가로 1.6m, 세로 1m 크기의 모듈 하나 무게는 20kg 정도. 이 한 모듈에서 생산되는 전기는 22kw 정도. 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박승록(맨 왼쪽) 이사가 주민들에게 설치법을 안내하고 있다.
 가로 1.6m, 세로 1m 크기의 모듈 하나 무게는 20kg 정도. 이 한 모듈에서 생산되는 전기는 22kw 정도. 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박승록(맨 왼쪽) 이사가 주민들에게 설치법을 안내하고 있다.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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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가구별로 전기 소비량을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적정기술과 에너지자립을 연구하는 경남 산청의 이동근 선생을 밀양에 모셔서 강연회를 했습니다. 태양광 발전을 포함하여 태양광 조리 시설과 고효율 기술이 적용된 온갖 기자재들을 보신 어르신들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한번 해보자, 좋다, 의기투합이 쉽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당장 문제가 생겼습니다. 한전 전기를 아예 쓰지 않으려니 냉난방은 차치하고라도 3㎾ 규모의 태양광설비를 달아야 하는데, 결국 돈이 문제였습니다. 모금을 통해서 조달하더라도 자부담으로 500~600만 원의 목돈을 한 번에 부담할 만한 여력이 되는 가구가 별로 없었던 것입니다. 다들 현금 소득이 거의 없다시피한 시골 노인들이었으니까요.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상징성이 높은 마을회관들을 섭외했습니다. 상당수 마을에서 한 번 해보겠다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또 문제가 생겼습니다. 시골 마을들은 어떤 일을 결정할 때 대개 마을회의를 통한 전원합의를 전통으로 합니다. 마을 전체 주민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든 이루어질 수 없는 구조입니다.

시골 어르신들 중에는 한여름에는 에어컨 바람 쐬러, 한겨울에는 기름보일러 안 돌리려고 마을회관에서 소일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지요. 이런 분들이 '여름에 에어컨 못 쓰면 우리는 우짜노' 하십니다. 그런데 냉난방까지 태양광으로 하려면 필요한 설비 용량이 확 치솟습니다. 결국 마을회관에서의 태양광발전도 포기해야 했습니다. 호기롭게 시작한 밀양대책위의 프로젝트, '한전 계량기 떼서 패대기치기' 퍼포먼스는 이렇듯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서울햇빛발전협동조합에서 연락이 온 겁니다. 계량기를 떼낼 정도는 아니지만, 여러 생협들과 단체들이 뜻을 모아 밀양 송전탑 농성장 15곳에 250w 용량의 태양광 발전기 15개를 달아준 것입니다(가로 1.6m, 세로 1m, 250w(와트) 용량의 태양광전지판 하나의 무게는 약20kg. 이 한 모듈에서 생산되는 전기량은 한 달에 약 22kWh 정도).

그날은 1월 16일, 지난 2012년 용역들의 폭력에 맞서다 분을 참지 못하고 자결하신 한 어르신의 기일이었습니다. 밀양 송전탑 어르신들이라면 다들 마음이 착잡해지는 날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날 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이 주관하고, 밀양 765kV 송전탑반대대책위, 서울시민발전협동조합연합회(준), 경남햇빛발전협동조합, 한살림생산자연합회 등 10여 개 단체가 주최한 밀양햇빛버스가 도착했습니다.

마을마다 있는 농성장에 태양광 모듈과 무겁디 무거운 배터리를 낑낑대며 옮겨서는 삽질을 하고 케이블을 연결해서 뚝딱뚝딱 태양광 발전기들이 달렸습니다. 주민들은 처음에는 좀 시큰둥하기도 했습니다. 애들 소꿉장난 아니겠느냐, 약간의 오해도 있었습니다. 축전식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시던 터라, 흐리거나 비오는 날에는 무용지물이고 겨울철에는 햇빛이 약해서 전깃불이 흐리다더라, 이렇게 알고 계신 분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견물생심이라고 막상 설치되는 날 어르신들 얼굴에 함박웃음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여분이 있으면 우리 마을에 하나라도 더 가져가려는 눈치 작전도 볼 만했습니다. 이날 설치한 전지판으로는 기껏해야 농성장에서 휴대폰을 충전하거나 형광등을 밝혀주거나, 커피포트에서 물을 데우는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농성장으로 끌어온 전기 코드 중 하나를 뽑아 태양광 모듈에 연결된 코드에 꽂는다는 사실이 주는 기꺼움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전기를 만들어 쓸 수 있다는 데 대한 만족, 그게 전부는 아니었을 겁니다. 어른들이 가장 아프게 생각했던 것. 얼마 되지도 않는 한전 전기를 쓰면서 '니들은 전기 안 쓰냐?'는 등의 온갖 욕설들에 시달려야 했던 그 마음 고생을 씻기라도 한 듯, 시원한 마음이 어르신들의 함박웃음에 서려 있었던 것입니다.

에너지자립마을 밀양으로 내쳐 달려갑니다

단장면 동화전 마을 농성장에도 우리집햇빛발전기가 설치됐다. 이계삼 사무국장은 마치 시골에 처음 전기가 들어왔을 때의 기분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단장면 동화전 마을 농성장에도 우리집햇빛발전기가 설치됐다. 이계삼 사무국장은 마치 시골에 처음 전기가 들어왔을 때의 기분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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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장에 설치된 열다섯 개 태양광 발전기는 아직까지 고장 없이 쌩쌩 잘 돌아갑니다. 전부 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고장 신고가 접수된 적도 없습니다. 이제는 농성장의 한 식구로 아주 당당하게 자리잡았습니다. 어르신들도 슬슬 욕심들이 생기시는지 하나 더 달아서 태양광으로 전기장판이라도 써 봤으면 하는 바람들을 숨기지 않습니다.

한전에서 착착 틀어주는 전기가 아니면 다 장난감 같고 쇼 같았는데, 태양광으로 전구를 밝히고, 커피를 끓여먹고, 휴대폰을 충전하고 라디오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만들어준 믿음이란, 저들이 강요한 삶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내는 다른 삶도 있다는 희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밀양 송전탑 싸움은 여러 모로 우리 사회에 많은 화두를 던져주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쓰는 이 전기, 아무런 불편 없이 넉넉하게 썼던 이 전기가 실은 많은 시골 노인들의 목숨줄을 끊어놓고 우리의 일상 속으로 들어왔다는 윤리적인 자각이 가장 앞선 것이겠죠. 그 자각을 말로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으로 드러내 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물론 밀양송전탑 농성장에 설치된 태양광 모듈은 상징적인 공간에 상징적으로 설치된 작은 사물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상징이 구체적인 현실이 되는 과정을 저는 낙관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에너지전환 운동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서가 아니라, 후쿠시마 사태를 포함하여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 결국은 이 길로 가지 않을 수 없게끔 우리 삶을 인도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밀양은 에너지자립마을로까지 내쳐 달려볼 작정입니다. 쉽지 않은 줄은 알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송전탑이 설령 들어서더라도 어르신들은 살아가야 할 것이며, 이 싸움에서 각성된 의식들이 이 지점을 향해 점점 모여들고 있습니다.

벌써부터 구체적인 방향을 논의하는 분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충분히 가능할 것입니다. 밀양 농성장에 태양광 발전기를 달기 위해 애쓰셨던 많은 분들, 마음을 모아주신 분들께 이 지면을 빌려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햇빛도시 개척단원 신청하러 가기

덧붙이는 글 | 이계삼 기자는 밀양송전탑반대주민대책위 사무국장입니다.



태그:#밀양 송전탑, #햇빛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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