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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길어졌다. 지난해 이맘 때 서울은 너무 추웠고 눈도 많이 내렸다. 도시에서 마지막 겨울을 보내던 때를 떠올려본다. 30대 초반까지도 입지 않았던 내복을 샀고, 외출 시 스타킹은 두 겹을 신었으며, 하이힐을 버리고 털이 달린 단화를 택했다. 그리고 답답해 보이는 두툼한 외투에 장갑과 귀마개까지 하고나서야 밖으로 나갔다. 누가 봐도 내 모습은 에스키모인을 떠오르게 했다. 모든 창문에는 바람이 통하지 않게 비닐을 씌우는 일까지 했으니, 매우 추웠던 것이다. 매일 밤 여름을 상상하며 잠을 청했었다.

시골에서도 월동준비를 했다. 아니, 아직도 하고 있다. 시골로 내려오면서 추위를 즐기리라 마음먹었지만, 이번 겨울은 더 춥게만 느껴졌다.

이 집은 200년이 넘은 터라 사방에 미세한 구멍이 나 있었다. 자리에 누워 위를 올려다보면 천장에 매달린 거미줄이 이리저리 춤을 추는 것을 볼 수 있다. 곳곳에 바람구멍이 있으니 내복에 따뜻한 옷을 입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집안에서도 두꺼운 외투를 입고 있어야 한다.

시골에는 기름보일러를 사용하고 있어 공기가 훈훈할 정도로 방의 온도를 높일 수는 없다. 수입이 없는 터라 옷을 더 껴입고 방의 온도를 낮추는 방법을 택했다. 이것으로 월동준비가 끝이라면 좋겠지만 아직 월동 준비는 끝나지 않았다.

봄부터 시작한 월동 준비

월동 준비는 이른 봄부터 시작됐다. 내가 이곳으로 내려온 4월 초에는 고사리를 채취하러 뒷산으로 갔었다. 고사리를 먹을 줄만 알았지 직접 채취한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주인장을 따라 뒷산으로 올라갔더니 고사리가 군집해 있었다. 그 주위로 꼬인 얼굴을 내밀며 올라오는 연둣빛 고사리를 볼 수 있었다.

고사리를 데쳐 말리면 겨울에 좋은 식량이 된다는 말을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틈만 나면 고사리를 꺾기 위해 이산 저산을 오르내렸다. 고사리를 정말 많이 채취해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부모님께 보내고도 많은 양의 고사리를 말렸다. 

말린 호박과 고사리 고사리는 봄에 말려서 요즘 먹기 시작했다. 호박은 초가을에 말려서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걸어두었다.
▲ 말린 호박과 고사리 고사리는 봄에 말려서 요즘 먹기 시작했다. 호박은 초가을에 말려서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걸어두었다.
ⓒ 김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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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말에는 죽순을 찾아 나섰다. 죽순은 대나무의 새싹이다. 죽순을 꺾지 않으면 우리가 자주 보는 곧은 대나무가 되는 것이다. 채취할 때를 놓치면 부드러운 죽순을 먹을 수 없고, 다시 늦봄이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봄에 채취한 죽순은 먹을 수 있는 부분까지 잘라 뜨거운 물에 데쳐서 먹기 좋게 자른다. 이것을 오징어와 무쳐 먹어도 되고 죽순 그대로의 맛을 느끼려면 소금으로만 간을 해 나물을 해먹어도 좋다. 이 맛을 겨울에도 느끼고 싶다면 냉동실에 보관하면 된다. 그래서 겨울의 끝자락인 3월 초, 김장 김치가 떨어져 가고 반찬거리가 없을 때, 죽순으로 나물을 해먹거나 국에 넣어서 먹으면 된다. 지난 겨울 이곳으로 답사를 왔을 때 주인장에게 죽순으로 만든 요리를 대접 받아 그 맛을 기억하고 있었다.

제철에 나는 나물들을 데쳐 말리거나 냉동실에 넣어두고 싶으나 주인장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봄에는 지천에 깔린 것이 봄나물들이라 죽순까지 시기에 맞추어 먹을 수 없어 냉동 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먹는 것도 때가 있제. 제철에 날 때 실컷 먹어두소."

고구마밥에 말린 고구마 간식

11월이면 배추와 무가 먹기 좋게 자랐다. 김장철에 맞춰 그것들을 수확하지만 올해는 배추도 무도 제가 자란 땅을 벗어나지 못하고, 썩어가는 것을 많이 봤다. 배추와 무 가격이 폭락했기 때문이다. 주인장이 배추와 무를 심지 않았다면 그것들을 가져가 요긴하게 사용했을 테지만 마당 한 쪽에 배추와 무가 씩씩하게 자라고 있어 그럴 수 없었다.

11월 중순이 지나자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고구마를 캤다. 양이 별로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두 자루나 나왔다. 고구마 스무 개 정도를 썰어서 말렸다. 겨울에 고구마밥을 해 먹기 위해서다. 나머지는 잘 보관했다가 겨울 내내 간식으로 구워 먹을 생각이다.

고구마 말리기 고구마의 수확도 좋았다. 겨울에 고구마밥을 해먹기 위해 채썬 고구마를 말리는 중이다.
▲ 고구마 말리기 고구마의 수확도 좋았다. 겨울에 고구마밥을 해먹기 위해 채썬 고구마를 말리는 중이다.
ⓒ 김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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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초, 김장을 하고도 배추는 남았다. 주인장은 배추를 그냥 버릴 수 없다며 지붕 아래에 있는 꽃밭에 미니 비닐하우스를 설치해 화분에 심어진 배추들의 집을 만들어줬다.

나는 주인장이 더 많은 무를 심길 바랐다. 그러면 내가 좋아하는 무말랭이를 실컷 먹을 수 있다는 계산에서였다. 매년 겨울만 되면 엄마가 무말랭이 무침을 해서 서울로 보내주셨다. 무말랭이 무침을 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동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이때까지 몰랐다. 

"이것쯤이야. 무를 썰어 말리는 일인데 뭐. 한 포대는 만들어야지."

매일 무를 세 개씩 썰어 말리기로 했다. 매일 칼질을 하니 팔이 아프고 요령이 없어 손바닥에 물집이 잡혔다. 썰고 또 썰어도 자루에 담긴 무는 줄어들지 않았다. 더 많은 무를 심기를 바랐던 게 잘못이었다. 어떤 날은 주인장이 무를 너무 많이 심어서 내가 이 고생을 한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손에 물집 잡히면서 무 썰었습니다

무청과 무 말리기는 손이 정말 많이 갔다. 무는 햇살에 말리는 것보다 그늘에 천천히 말리는 것이 좋다는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방 한가운데 천을 깔고 무를 가지런히 널었다. 방을 오가다 줄지어 널려 있는 무 조각들을 보며 흐뭇했고 이 일을 하고 있는 나를 칭찬하기도 했다. 더 이상 방에 널 공간이 없어 바구니에 담아 밖에 널어뒀다.

어느 날 내 방으로 들어온 주인장이 놀랬다. 썬 무 또한 상하좌우의 간격을 맞추어 가지런히 배열해뒀다. 그 광경을 보고 주인장은 사진을 찍어댔다. 놀라운 일이라며. 

시작은 매우 좋았으나 보름을 넘기지 못하고 무 말리는 일에서 손을 뗐다. 지쳐버렸고, 더디게 마르는 무를 기다리는 것도 힘들었다. 그로 인해 뽑아둔 무는 자루 속에서 그대로 말라갔다. 나의 게으름 탓도 있지만 너무 적은 양의 무말랭이를 얻게됐다. 많은 양을 말렸다고 생각했는데 마르면서 양이 절반으로 줄었다. 

무 말리기 방에는 자리가 없어 밖에서 무를 말렸다. 많은 양을 말렸다고 생각했는데 모았더니 요것밖에 안 된다.
▲ 무 말리기 방에는 자리가 없어 밖에서 무를 말렸다. 많은 양을 말렸다고 생각했는데 모았더니 요것밖에 안 된다.
ⓒ 김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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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청도 겨울 식량으로 제격이다. 우거짓국의 재료로 쓰이기도 하고 몸에 좋다는 소문이 돌아 사람들이 많이 찾기도 했다.

나는 무청의 반은 데쳐 말리고, 반은 그대로 말리기로 했다. 일단, 무에서 분리한 무청을 난로에 올려놓은 솥에다 삶았다. 무청이 두껍고 질겨서 오래도록 삶아야 했다. 그리고 찬물에 여러 번 행군 뒤 볕이 좋은 날 철망에 널어 말렸다. 무청의 양도 너무 많아 빨래 건조대까지 동원됐다. 무청은 해가 지기 전에 다시 거뒀다. 서리가 내려 말라가던 무청이 다시 촉촉한 상태로 되돌아갔기 때문이다.

에고, 이제 월동 준비 끝났네

우거지 말리기 겨울 햇살에 우거지가 쉽게 마르지 않아 건조대 위에 빨래처럼 늘어놓았다.
▲ 우거지 말리기 겨울 햇살에 우거지가 쉽게 마르지 않아 건조대 위에 빨래처럼 늘어놓았다.
ⓒ 김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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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를 맞아도 무방하지만 말렸을 때 색깔도 예쁘지 않고 건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래서 아침에 널었다 해지기 전에 거둬들이는 수고를 해야 했다. 그런데 겨울 햇살은 강하지 않아 먹기 좋게 말려지기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기 며칠 전까지 이 일들을 반복했으니 정말 오래 걸렸다.

긴 시간동안 말린 우거지를 망에 담아 바깥벽에 걸어뒀다. 지나가다 이것들을 보면 배가 절로 불러왔다. 거친 추위가 찾아와도 잘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겨울에 먹을 우거지와 고구마 줄기 말린 우거지와 고구마 줄기를 벽에 걸어두었다. 그 아래에 보이는 비닐 하우스에는 김장을 하고 남은 배추를 넣어두었다.
▲ 겨울에 먹을 우거지와 고구마 줄기 말린 우거지와 고구마 줄기를 벽에 걸어두었다. 그 아래에 보이는 비닐 하우스에는 김장을 하고 남은 배추를 넣어두었다.
ⓒ 김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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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쌓이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 이것들을 요리해 맛나게 먹을 생각이다. 고사리와 고구마 줄기를 넣은 육개장을 만들고, 고사리 들깨 무침(고사리에 마늘·소금·들깻가루만 넣으면 된다, 어떤 조미료도 필요하지 않다)도 할 것이다.

무말랭이 무침에도 도전해야겠다. 엄마에게 전화해 무말랭이 무침 요리에 대한 강의를 듣거나, 래시피를 보면 맛난 무말랭이 무침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요리를 하는 상상은 침이 절로 고이게 한다. 이 긴 겨울을 나기 위해서 4월부터 12월까지 얼마나 많이 준비했던가.

"야, 이제 월동 준비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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