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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 섬은 찰스 다윈이 머물면서 그 섬에 서식하는 생물종들을 통해 진화론이라는 미증유의 과학과 사상에 영감을 얻은 곳이다. 신승철은 이 갈라파고스를 철학자로서 만났다. 그러나 신승철이 만난 갈라파고스는 갈라파고스 섬 자체가 아니며 그에 대한 언급도 없다. 다만 상징이 있을 뿐이다. 즉, 다윈이 갈라파고스를 통해 진화론을 세웠듯이, 철학자 신승철은 생명 위기의 시대에 갈라파고스에서 녹색철학을 세우고 싶은 것이다. 이 철학적 사유들을 담은 책이 <갈라파고스로 간 철학자>이다.

철학, 세상을 들락거리는 작은 뒷문

신승철의 <갈라파고스로 간 철학자> 데카르트에서 들뢰즈 가타리까지, 철학 속 생태 읽기
▲ 신승철의 <갈라파고스로 간 철학자> 데카르트에서 들뢰즈 가타리까지, 철학 속 생태 읽기
ⓒ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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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승철을 우리 시대의 매우 뛰어난 철학자라고 본다. 그가 생태주의, 또는 녹색철학의 기조를 펼쳐나가기 위해 오늘날 생명의 위기를 불러온 철학자들의 사유 체계와 새로운 시대, 대안적 세계를 제시하는 철학자들의 사유 체계를 다시 불러내어, 철학과 문명의 인과 관계를 설파하는 문장은 매우 뛰어나다. 사상의 정수를 추려내어서 현실과 연결시키는 솜씨가 놀라웠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머리말에서 '철학, 세상을 관조하는 창문이 아니라, 세상을 들락날락하는 작은 뒷문이 되기를'이라는 아주 따뜻한 아포리즘으로 자신의 철학을 규정하였듯이, 저자의 이 철학 에세이는 464쪽에 달하는 꽤 두툼한 분량인데도, 세상의 작은 뒷문이 되어 우리들을 수시로 드나들게 하며 매우 흥미진진하게 철학을 만날 수 있게 한다.

철학을 창문 밖의 난해하고 먼 대상이 아니라 우리 삶의 뒷마당처럼 가깝고 정겹게 열어놓았다.

이 책에서 저자가 흘려보내는 생각의 물줄기는 크게 세 가지이다. 저자는 프랑스 철학자 팰릭스 가타리의 '에코소피' 사상에 큰 영감을 얻었다면서 '생명, 생태, 생활'이라는 범주를 정하여 그 이 세 개의 범주에 맞추어 많은 철학자들을 호출한다.

세부적으로는 생명의 영역에서 실험동물과 공장식 축산업 그리고 동물권을 다루고, 생태의 영역에서는 마음생태, 자연생태, 사회생태 등 세 가지 생태학을 비교하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생활 영역에서는 TV, 자동차, 아파트, 육식으로 대표되는 삶의 방식을 점검하고 에너지 문제에 대해서도 철학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플라톤과 데카르트 그리고 동물실험과 공장식 축산업

저자는 수많은 동물실험과 공장식 축산업의 이면에 플라톤과 데카르트의 철학 사상이 숨어 있다는 매우 도발적인 발언을 한다. 서양 철학계의 원류이며 거두인 두 철학자의 사상과 동물 학대는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을까.

거칠게 말해서 플라톤의 사상은 변화하지 않고 고정되어 있는 진리가 존재(실재)하는데, 이를 이데아라고 했고, 반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세계는 그 이데아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상이 아닌가. 이런 사상적 입장에서는 생명이 움직이고 진화하며 생성되는 모든 과정도 실재가 아니다. 가장 보편적인 형상(이데아)만이 실재이기 때문에 개체들의 특성이나 속성은 무시되고 배제될 수밖에 없다.

데카르트의 '자동기계' 개념 역시 그러하다. 데카르트에게 이성은 인식하는 주체이고, 신체나 동물은 인식하는 대상으로 엄격히 구분하여, 인식되는 대상인 신체와 동물은 기계장치와 같이 이성에 의해 설계될 수 있다는 것이 '자동기계' 개념이다. 이와 같은 인식 구조가 인간에게 내면화되면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생길 수밖에 없다.

저자는 현재 지구상의 한 해 실험동물 숫자는 5억 마리이고, 우리나라에서도 한 해 실험동물은 약 400만 마리라고 한다. 인간 생명을 살리기 위한 동물실험은 감내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생명 살림과 상관없는 동물실험도 있다.

예를 들어 여성들의 립스틱, 로션, 파우더가 만들어지기까지 한 제품당 수천 마리의 토끼가 눈꺼풀에 고정 장치를 하고 묶인 상태에서 화장품 원료를 각막에 투여 받는 실험을 당한다고 하는데, 화장품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의 뒤에는 수많은 토끼들의 고통이 숨어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육식을 감당하기 위해서 엄청난 수의 동물들을 길러내는 공장식 축산은 저자의 표현대로 하면 '21세기 동물들의 아비지옥'이다. 동물들의 생리적이고 본성적인 속성은 완전히 배체된 채, 좁고 폐쇄적인 공간에서 가혹하게 사육되고 있으며, 면역체계가 망가져 항생제에 의존하다가 도살되는 곳이 공장식 축산의 현장모습이다.

인권을 넘어서 생명권으로

어찌하여 인간은 이리도 가혹하고 잔인한가. 저자는 신체보다는 정신을, 욕망보다 이성을, 무의식보다 의식을 강조하게 되면,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나 교감은 사라지게 된다고 하였으며, 이는 플라톤을 비롯한 데카르트의 이성주의 철학의 기조라는 것. 이러한 사상의 기조가 동물을 생명이 아니라, 고기를 만드는 기계로 보는 인식의 바탕을 이룬다 할 수 있다. 나아가 이렇게 동물을 비하하는 인식은 자연히 인간의 신체와 노동에 대한 천시와 비하로 이어진다.

왜냐하면 데카르트가 말한 '자동기계' 개념처럼, 자본주의 역시 똑딱거리는 노동을 '자동적'으로 수행할 노동자를 원하지, 생산이나 관리, 또는 정치에 참여하는 '자율적'인 노동자를 원하지 않는다. 자율보다 자동을 원하는 문명 속에서 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곧 노동자, 민중, 소수자에 대한 태도로 직결된다. 전태일 열사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친 것은 바로 데카르트에 대한 항변과도 같은 것이다.

저자는 이어서 라이프니츠나 피터 싱어 그리고 들뢰즈, 가타리 등의 철학자들이 보여준 사상을 통해 동물권, 동물해방론, 동물복지론을 짚어본다. 인간에게 부여되는 권리를 동물에게도 부여하여 '인권'을 넘어서 '생명권'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생명권 논의는 뭇 생명의 고통은 인간의 고통이 되며, 지구의 고통이 됨을 인식하고, 저자의 표현대로 동물과 인간의 교감과 사랑이 인간 사회에 전파되어 '색다른 사랑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

동물권은 하나의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인간중심주의에서 생명중심주의로 이행은 기존의 육식 문명, 그리고 동물을 이용, 착취, 학대하는 문명과 완전히 결별하기 위해 단호한 선을 긋는 시도이다.(본문 78쪽)

이렇게 '생명' 영역에서 다루었던 육식 문명과 생명의 문제는 다시 '생활' 영역에서도 풍부하게 다루어낸다. 그만큼 이 주제는 저자가 공을 들여 밀고 나가는 주제이다. 저자는 함께 사는 고양이의 생명력과 교감하는 모습을 책 속에서 슬쩍슬쩍 보여주며 책에 온기를 불어넣기도 하고, 자신도 낮은 단계의 채식을 실천하고 있다고 했다.

아파트, 자동차, TV, 육식 문명을 넘어서

'서울 마포의 어느 아파트 단지에서 6개월 동안 자살로 숨진 사람이 24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아파트 난간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저자는 이런 슬픈 현실을 생활의 영역에서 다룰 주제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보여준다.

저자가 분석한 한국 사회, 아니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얼개는 아파트에서 각기 독립적인 삶을 유지하며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TV에 많은 시간을 의존하고, 육식을 즐기는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방식은 끊임없이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배출해내는 '탄소중독적 문명'이라고 정의한다.

저자가 아파트 문명과 관련하여 호출한 철학자는 토마스 홉스이다. 홉스는 <리바이어던>이나 <시민론>에서 절대국가를 옹호하였는데, 그 생각의 바탕에는 시민들이란 자율적으로 관계망을 구성하는 능력이 전혀 없고, 오로지 이기주의에 의해서만 움직인다는 선입견이 있다. 그래서 그대로 두면 서로 싸우고 전쟁을 일으키니까 강력한 국가가 있어서 통제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시민이란 공동체를 이루지 못하고 오직 개체로만 이기적으로 존재한다는 홉스의 사상에서 개체로 분리된 삶을 사는 아파트를 떠올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시민들의 자율적인 공동체 형성을 두려워했던 부도덕한 독재 권력은 아파트를 선호하지 않을 수 없겠다는 생각에 이른다.

아파트의 배치는 주체성을 무력하게 만들고 달콤한 TV 화음에 의존하게 하고, 자동차를 타고 움직이며 소비생활을 즐기는 통속적인 삶을 구성한다. 이렇듯 아파트의 배치가 사람들을 이기적인 개인으로 잘게 분해하기 때문에, 공동체적 관계망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대신 국가 권력의 통합력에 환상을 갖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본문 200쪽)

이밖에 저자는 철학자 폴 비릴리오의 사상을 통해 자동차 문명의 속도주의를 비판하며, 이제 '시간의 바리케이드'를 쌓자고 제안한다. 생명과 자연에게는 정지와 느림이 도리어 지속이며 창조적 진화의 출발점이므로. 그리고 기 드보르의 사상과 연결 지어, TV는 자본주의가 가장 안락하고 행복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통로라고 지적한다.

또한 막스 호르크하이머의 <도구적 이성 비판>이라는 저작을 통해 육식 문명 전반을 성찰한다. 인간의 이성은 생명조차 도구화하면서 육식 문명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것이라고.

그럼 육식을 하지 말자고? 누군가 물을 것이다. 그렇다! 생명의 도구화는 인간과 동물, 자연 간의 공동체를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그럼 육식을 권장하는 영양학이라는 학문은 뭐지? 저자는 영양학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영양학계는 다국적 공장식 축산기업들에게 연구 펀드를 가장 많이 받은 학문 분과라고. 우리는 이미 그들의 기획에 포획되어 있다고.

핵에너지와 니체의 초인 사상

끝으로 핵에너지는 현대 속도 문명의 최종적인 결과물이며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은 성장주의의 산물임을 밝히고 있는데, 내가 너무나 놀랐던 것은 교양 있는 시민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철학자 니체의 초인사상이 나치의 핵개발 시도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 니체는 약자와 여성, 장애인, 이주민을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으며,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히틀러 지배 당시 독일인에게 가장 많이 읽혔고, 히틀러는 니체의 책을 독일의 자랑이라고 할 정도였다. 물론 히틀러의 반유대주의나 국가주의와 니체의 입장과는 거리가 멀겠지만, 초인의 설정이 역사적 왜곡의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저자의 논리를 보자.

나치의 핵개발 시도는 니체의 초인 사상이 사실상 핵을 통해 완결될 수 있다는 점을 직관적으로 응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주 국지적이고 부분적인 영역에서 원자들의 충돌이 연쇄반응으로 전체 사회를 파괴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원자폭탄의 원리는, 사실은 가치 창조자이자 가치 파괴자인 초인 사상의 궤적을 따른다. 핵에너지는 생명과 생태계의 원리와 무관하게 색다른 움직임이 창조될 수 있다는, 양자 수준의 가치 창조자인 초인의 다른 모습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핵에너지는 파시즘의 숨결을 갖고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본문 309쪽)

물론 저자는 이러한 삶의 방식을 극복할 수 있는 철학자들의 사상과 저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풍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 책이 매우 끔찍한 물질문명의 어두운 일면을 철학적으로 파헤치고 있으면서도 생동감을 잃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저자 자신의 생명 철학, 녹색 철학의 신념과 미래 전망이 자연스럽게 배어나왔기 때문이다.

저자는 현재 동국대에서 강의하고 있지만, 그의 녹색철학은 강단 철학이 아니다. 그는 동물보호 무크지 '숨'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했고, 2012년 녹색당 총선 시기 생명권 초안을 썼으며, 성미산 마을 기초연구조사 사업에도 참여하였고, '철학공방 별난' 공동대표, 각종 동물보호와 생명 윤리와 관련된 모임에 관여하고 있는 활동가이다. 그의 이런 진정성 있는 활동과 연구 노력이 철학의 '작은 뒷문'을 자주 드나들게 하였다고 믿는다.

덧붙이는 글 | <갈라파고스로 간 철학자>, 신승철, 서해문집, 2013년 10월 15일, 1만 7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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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을 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