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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양은 매우 큰 도시이다. 시내 곳곳에는 매우 높은 빌딩들이 숲을 이루어 있고 아파트도 매우 많다. 쉬저우를 출발해 지금까지 보아온 중국은 도시와 농촌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지역이 개발되고 있었다. 땅은 파헤쳐졌고 건물은 하늘로 치솟고 결과적으로 모든 화장실은 수세식일 수밖에 없다.

시골에서 간간이 보아온 그들의 화장실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지저분했지만 점차 재래식은 사라지고 대부분 수세식으로 바뀔 것이다. 그 많은 사람이 살 집이 모두 수세식으로 바뀐다면 화장실에서만 이용하는 물의 양조차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그 많은 물을 어디서 공급할까? 화학비료의 공급으로 인분의 재활용은 축소되어 버려지는 그 많은 인분을 다시 정화하기 위해서 필요한 물과 화학물질을 생각하면, 비록 우리나라가 아니라 하더라도 엄청나게 큰 이웃한 나라임을 생각할 때 매우 걱정되는 일이다.

이념을 초월한 이종인역사박물관

난양에서 라오허커우(老河口)까지의 거리는 예상보다 훨씬 짧았다. 내가 받아 본 자료에 따르면 도중에 하루를 묵어야 할 정도로 먼 거리였으나 실제 거리는 120km 정도였다. 차이가 나는 이유를 생각해보니 내가 받은 자료는 보통 차로 이동하다 보니 멀리 돌아가는 고속도로를 경유해 가는 거리로 산정한 것 같았다. 우리는 지도를 보며 가장 짧은 길을 택해 갔더니 근 50km나 줄었다.

배낭 뒤에 자전거 여행의 목적을 알리는 막을 달았다.
 배낭 뒤에 자전거 여행의 목적을 알리는 막을 달았다.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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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오전 7시에 난양을 출발해서 오후 3시쯤 후베이(湖北)성 라오허커우에 도착했다. 우한(武漢)이 성도인 후베이성은 1911년 청나라를 무너뜨린 신해혁명이 일어난 곳이다. 라오허커우에는 장준하 일행에게 큰 도움을 준 이종인(李宗仁)이 이끄는 중국군 제5전구 사령부가 있었다. 또한 라오허커우는 조선의용대의 활동무대였고 조선의용대가 광복군과 통합한 후에는 광복군 제1지대 제1구대가 활동했던 곳이다.

우리가 방문하고자 하는 곳은 이종인역사박물관과 부민(福音)병원이었다. 부민병원은 수십 차례 연속적으로 이루어진 연극 공연으로 피로가 누적돼 쓰러진 장준하가 치료 받고 회복된 곳이다. 의외로 쉽게 이 두 곳을 찾았다. 우리가 가는 도로가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종인역사박물관은 북경로 288번지이고 부민병원은 이 박물관 근처 시위원회 건물 안에 있었다.

북경로 288번지의 이종인역사박물관. 2002년 건립됐다.
 북경로 288번지의 이종인역사박물관. 2002년 건립됐다.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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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인 사령관은 국민당 정부의 중앙군 소속이었다. 그러나 국민당을 몰아낸 공산당 정부인 중국은 이념과 상관없이 중국의 독립을 위해 일제와 싸운 그를 기리는 박물관을 세웠다. 비록 2002년이라는 좀 늦은 시기였지만 말이다. 우리와 비교하자면 북한이 우익 성향의 독립군 군부 지도자를 위한 박물관을 세운 것이나 남한이 좌익 성향의 독립군 군부지도자에 대한 박물관을 세운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북한은 잘 모르겠으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대한민국에서조차 그러한 박물관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나라를 되찾겠다는 독립군의 뜻에 반하여 나라의 독립을 막고 일제를 찬양한 친일파를 위한 동상이나 건물 그리고 기념회는 전국에 산재해 있다.

이종인역사박물관에 전시된 한민족과 연합했다는 사진
 이종인역사박물관에 전시된 한민족과 연합했다는 사진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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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폭죽 터트리는 소리와 같은 팽이 때리는 소리

박물관 건너편 호텔에서 묵었는데 바로 앞이 공원이었다. 대낮임에도 폭죽 터트리는 소리가 간간이 났다. '아니, 훤한 대낮에 웬 폭죽을 터트리나?' 나중 공원에 가보았더니 폭죽이 아니라 큰 팽이 돌리는 소리였다. 나이가 지긋이 든 남자 어른들 서넛이 각자 여기저기서 큰 팽이를 가죽 채찍으로 때리고 있는 소리였다. 한 번씩 팽이를 때릴 때마다 나는 그 소리가 마치 폭죽 터트리는 소리와 너무 닮았다.

팽이를 돌리는 것을 보니 어릴 때 기억이 난다. 우리가 돌렸던 그 팽이와 모습이 똑같았다. 단 그 크기가 스무 배는 더했다. 그래서인지 팽이를 때리는 채찍도 그만큼 컸다. 한 번 내려 칠 때마다 힘이 들어가니 운동 삼아 팽이를 돌리는 것 같았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내가 어렸을 적에는 주로 추운 겨울에 얼음 위에서 팽이를 돌렸다. 그런데 중국은 지금도 사시사철 가리지 않고, 그것도 어른이 공원에서 운동하는 겸해서 팽이를 돌리고 있다. 아무도 시끄럽다고 시비 거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그뿐 아니라 저녁이 되니 공원에 수백 명이 모여 군무를 추는 데 별로 틀리는 사람이 없이 잘 맞춘다. 하루 이틀 해본 솜씨가 아니다.

반일 연극을 순회공연하다

난양을 떠난 지 사흘 만에 라오허커우에 도착한 장준하 일행은 이곳에서 25일간이나 생활하게 된다. 그들을 맞이해준 광복군은 그들이 기대했던 광복군 파견대가 아니라 조선민족혁명당 관련 광복군 제1지대 분견대 세 명뿐이었다.

라오허커우에 도착한 첫 날부터 사흘 내내 일본군 비행기가 시내를 폭격해 피해야 했다. 충칭으로 갈 날만 기다리며 할 일 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는데, 광복군 분견대장은 충칭으로 가려는 장준하 일행을 도와주기는커녕 린취안 한광반의 김학규처럼 그들의 충칭 행을 만류했다. 그러나 이들의 설득에 흔들리지 않고 계속 충칭으로 가기로 결의했다. 하지만 문제는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파촉령이라 불리는 높은 산을 넘어 충칭으로 가는 데 필요한 노자와 식량이었다.

광복군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직접 중국군 이종인 부대와 접촉하려는 중에 이종인 부대에서 연락이 왔다. 이미 린취안 군관학교로부터 장준하 일행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이종인 부대에서는 이들의 반일 연극 공연을 장개석의 '15만 학도 종군운동'을 지원하는 정훈공작에 이용하고자 했다. 장준하 일행은 이 요청을 받아 들여 시내 15개의 중고등학교를 돌아다니며 순회공연을 했다. 공연은 대단히 환영 받았고 매우 성공적이었다. 여러 학교에서 성금을 많이 모아주었다.

학교를 돌아다니는 순회공연을 모두 마치자 이종인 부대에서는 시민을 위해 한 번만 더 공연을 부탁하였다. 할 수 없이 피로를 무릅쓰고 마지막으로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시민회관에서 공연을 했다. 공연은 여러 관객들을 울릴 정도로 성공리에 끝냈다. 그러나 연출을 담당한 장준하는 과로로 쓰러지고 말았다. 인력거를 타고 여러 곳의 병원을 찾아 갔으나 의사가 없거나 치료를 모두 거부하는 바람에 스웨덴 사람이 경영하는 부민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다음 날 깨어났다.

장준하를 치료한 부민병원 전경
 장준하를 치료한 부민병원 전경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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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군 이종인 부대에서 여비를 대주다

연극 공연으로 충분한 노자를 확보한 이들은 생활필수품도 구입하고 수입은 공평히 나누었다. 광복군 분견대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장준하 일행이 계속 충칭 행을 고집하자 처음엔 충칭 행 비행기를 알아봐주겠다고 한 분견대는 비행기를 알아봐주기는커녕 오히려 일행들을 갈라놓으려고 이간공작을 벌였다. 그 결과 연극 공연에 참가하지 않은 많은 동지들이 무료하게 지내다 이들의 분열 공작에 말려들면서 불만이 터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시민들이 모아준 성금도 푼푼히 써버려 줄어들자 김준엽을 대표로 이종인 사령부와 충칭으로 가는 문제를 협의했다. 그러자 사령부에서는 중국군 소위의 봉급을 기준으로 계산해 라오허커우에서 충칭까지 가는 경비에 사용하라고 50여 명분을 후하게 지급해주었다. 공금 일부를 떼고 나머지를 전원에게 균일하게 공동으로 나누어 배분했다. 그러나 일부는 이 돈을 거의 사용해 나중에 싱산에서 바동까지 그 엄청나게 높은 산을 또 넘어야 했다. 돈을 아껴 쓴 사람들은 배를 타고 편히 갔는데...

장준하 일행은 비행기를 타고 간다는 허황된 꿈을 버리고 충칭을 향해 다시 걷기로 했다. 이제 평지는 끝나고 제비도 날아서 넘지 못하고 말도 지나가지 못한다는 파촉령의 험한 준령이 그들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한국문화신문 얼레빗에도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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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통해 사회를 분석한 <수학의 창을 통해 보다>, 역사가 담긴 자전거기행문 <미안해요! 베트남>, <체게바를 따라 무작정 쿠바횡단>, <장준하 구국장정6천리 따라 자전거기행> 출간. 현 배재대 교수이며 전 대전환경운동연합 의장. 피리와 클라리넷 연주자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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