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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가 고엽제 후유증을 겪고 있는 참전 군인들이 미국 고엽제 제조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일부 피해자들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지난 1999년 9월 서울중앙지법에 고엽제 소송이 제소된 지 무려 15년 만의 확정 판결이다. 하지만 고엽제 후유증 질병 인정 범위는 대법원이 원심보다 좁게 인정해 피해배상을 받는 참전 군인들은 소수에 불과해 아쉬움으로 남게 됐다.

고엽제 소송 손해배상 책임 인정... 15년 만의 확정 판결

대법원 제3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12일 베트남 참전군인들 1만6579명이 고엽제 제조사인 미국 다우 케미컬 컴퍼니와 몬산토 컴퍼니를 상대로 낸 3건의 고엽제 피해 손해배상청구 사건에서, 원심에서 일부 승소한 5227명 중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은 염소성여드름 피해자 39명에 대해서만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다.

나머지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패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원심이 고엽제 피해자 5227명을 인정해 1인당 600만 원에서 많게는 46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것에 비하면 손해배상 인정 대상이 크게 줄어들어든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고엽제 소송에서 법원의 판결에 의해 고엽제 제조회사의 책임을 일부라도 인정돼 확정된 것은 세계적으로 이번이 첫 사례"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우리나라는 베트남 정부와 미국의 전투병 파병 요청에 따라 1965년 10월부터 1973년 3월 월남에서 철수할 때까지 약 32만명의 장병을 베트남전에 파병했다.

이들 장병 중 1만6579명은 "베트남 전쟁 동안 살포된 고엽제의 다이옥신 성분(TCDD)에 노출돼 당뇨병, 암, 염소성여드름 등 각종 질병이 생겼다"며 미국 고엽제 제조회사인 다우 케미컬 컴퍼니와 몬산토 컴퍼니를 상대로 제조물책임을 묻는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심 재판부는 "월남전 참전 군인들이 앓고 있는 질병과 고엽제 간에 일반적인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아, 앓고 있는 후유증 및 후유의증들이 월남에서 살포된 고엽제로 인해 발생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고, 또 손해배상 소멸시효도 지났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말초신경병, 버거병 환자를 제외한 고엽제 후유증 환자들에 대해서는 고엽제와 역학적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이에 고엽제 피해자 5227명에게 1인당 600만 원에서 최대 46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또 "피고 제조회사들이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 행사에 대해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해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복잡했던 소송 과정, 한국에 재판할 권리 있나? 대법원 판단은...

사실 이번 고엽제 소송은 복잡했다. 왜냐하면 먼저 대한민국 법원이 고엽제 소송을 재판할 국제재판관할권이 있는지, 적용할 준거법이 한국 법인지 미국 법인지가 쟁점이 됐다.

제조물인 고엽제에 설계상의 결함이 있는지 여부와 베트남 참전 군인들에게 발병한 질병과 고엽제 노출 사이의 인과관계 유무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고, 소멸시효 항변 문제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호주 등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이 고엽제 제조회사들을 상대로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가 고엽제의 다이옥신 성분에 노출된 것과 참전 군인들의 보유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수차 패소 판결이 내려졌다.

때문에 우리나라 참전 군인들이 고엽제 소송을 걸자, 미국의 고엽제 제조회사들은 소송의 국제재판관할권은 미국 법원에 있고, 적용돼야 할 법률 역시 미국법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대한민국 참전 군인들이 고엽제 노출로 인한 피해자이고 실제 손해가 발생한 장소도 한국이며, 고엽제 제조사들도 고엽제에 노출된 참전 군인들이 한국에 귀국한 이후에 손해가 발생할 수 있음을 예상할 수 있었다"며 "따라서 대한민국 법원이 그 피해배상 여부에 대해 재판할 정당한 이익을 갖고 있고, 대한민국 법원에 국제재판관할권이 있다고 보고, 이 사건에 적용돼야 할 준거법도 대한민국 법"이라고 판단했다.

제조물인 고엽제에 설계상의 결함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피고들이 베트남전 당시 최고의 기술 수준으로 고엽제에 포함된 독성물질인 다이옥신의 인체 유해 가능성과 고엽제의 안전성을 철저히 검증하고 조사·연구를 통해 발생 가능성 있는 위험을 제거·최소화하는 한편, 안전성이 충분히 확보될 정도로 위험이 제거·최소화됐다고 확인되기 전에는 고엽제를 유통시키지 말아야 할 고도의 위험방지의무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에 "이러한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은 채 고엽제를 제조해 유통시켰으므로, 피고들이 베트남전 동안 제조·판매한 고엽제에는 인체의 안전을 위한 고도의 위험방지의무를 위반함으로써 사회통념상 통상적으로 기대되는 안전성을 결여한 설계상의 결함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베트남 참전 군인들에게 발병한 질병과 고엽제 노출 사이의 인과관계 유무에 대해 대법원은 "염소성여드름은 고엽제에 함유된 다이옥신 성분에 노출될 경우 발병되는 특이성 질환이고 다른 원인에 의해 발병되지 않으므로, 베트남 참전 군인들에게서 발병한 염소성여드름은 베트남에서 살포된 고엽제에 노출돼 발병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원심과 같이 판단했다.

"39명 외 참전 군인의 고엽제 인과관계는 인정할 만한 증거 없어"

대법원은 그러나 "당뇨병, 폐암, 후두암, 기관암, 전립선암, 비호지킨임파선암, 연조직육종암, 만발성피부포르피린증, 호지킨병, 다발성골수종 등 각종 질병들은 고엽제와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들 질병은 발생원인 등이 복잡다기하고, 유전·체질 등의 선천적 요인, 음주, 흡연, 연령, 식생활습관, 직업적·환경적 요인 등 후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비특이성 질환'이므로, 베트남 참전 군인들에게서 생긴 위 각종 질병이 베트남전에 살포된 고엽제에 노출된 것 때문에 발병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원심의 판단과 다른 부분이다.

대법원은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으로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에게 이런 질병들이 발병할 확률이 다른 일반집단에서 발병할 확률보다 상당히 높고, 또한 각 참전 군인 개인이 고엽제의 다이옥신에 노출된 시기와 노출 정도, 발병시기, 위험인자에 노출되기 전의 건강상태, 생활습관, 질병 상태의 변화, 가족력 등이 증명돼 비특이성 질환이 고엽제에 노출돼 발병했을 개연성이 높다는 점이 인정돼야 하는데,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들이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그러면서 "그런데도 원심은 베트남전 복무 당시 고엽제 노출로 인해 비특이성 질환에 걸렸을 개연성이 인정돼 손해를 입게 됐다고 판단한 것은 역학적 인과관계와 개연성에 관한 법리 및 증명책임의 소재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며 파기환송했다.

아울러 "'고엽제후유의증환자 지원 등에 관한 법률'상 고엽제 후유의증 질병이나 고엽제 후유증 질병 중 말초신경병과 버거병은 고엽제 노출과 인과관계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며 "베트남전 참전 군인으로부터 출생한 자녀들이 선친이 베트남전에 참전해 고엽제에 노출됐기 때문에 2세들에게 말초신경병이 발병했다는 주장도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해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소멸시효 항변에 대해 대법원은 "베트남 참전 군인들이 고엽제 후유증환자로 판정받아 등록을 마치기 전까지는 자신들의 질병이 염소성여드름이라는 것과 그것이 고엽제에 노출돼 발병한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으므로 객관적으로 그 등록일부터 손해배상청구권의 존재를 인식하고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됐다"며 고엽제 제조회사들의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등록일로부터 3년이 지나기 전에 가압류를 하거나 소를 제기한 경우에 손해배상청구권이 시효로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편, 이번 소송에 대해 대법원은 "이번에 소송을 제기한 1만6579명의 베트남 참전군인 중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은 염소성여드름 환자 39명에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사안으로, 고엽제의 제조물로서의 결함을 인정하고 그와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손해에 한하여 고엽제 제조회사들에게 법적 책임을 물음으로써, 고엽제소송과 관련한 오랜 법적 공방을 일단락한 데 의의가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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